쓸개 빠진 몸과 쓸개 있는 마음

몸이 먼저 말하던 그 봄의 기록

by from퐁당

2021년 3월, 이때를 기점으로 나의 삶은 변화하고 격동했다.

물론, 그 이전의 삶이라고 평탄했을 리 없지만, 확실히 몸도 마음도 삶도 명확하게 달라지기 시작한 건 이 무렵부터였다.


주말마다 망가지는 몸

당시 나는 이상하리만치 주말만 되면 침대 시트가 흠뻑 젖을 만큼 격렬한 위경련에 시달렸다.

응급실을 몇 번씩 찾았고, 위경련 처방을 받고 수액을 맞으면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그렇게 주말을 고되게 보내고 나면 월요일에는 거짓말처럼 말짱하게 일어나 출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일엔 긴장으로 버티다 긴장이 풀리는 주말에는 망가진 몸이 아우성을 치던 것이었을 텐데 신경성 위염이 귀찮게 한다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몸은 그렇게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만 듣지 못했다.


얼굴이 이상하다고요?

한 번은 공익캠페인 촬영차 들른 포토스튜디오에서 사진 실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화장을 안 하신 거죠?”

“아뇨. 했는데요? 왜요?”

“아니.... 얼굴이... 너무 노래요.”

“네?”

본 촬영 전 전체 스케치를 잡던 그가 모니터 속 우연히 찍힌 내 사진을 보여줬다.

확연히 노란 낯선 얼굴, 화장이 지워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구급차에 실리면서도 ‘출근해야 한다’고 한 사람

나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A 선배는 자동차 전문 기자였다. 선배의 글맛과 성품 때문에 늘 존경하는 선배다.

아, 그 이전에 이 선배와의 인연은 10여 년도 더 전으로 올라간다. 고교시절 자동차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자동차를 좋아했기에 선배가 몸담고 있던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고 싶었다. 결국 발행인의 이해 불가 사유로 불발되었지만, 당시 편집장이었던 선배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 아쉬움에 대해 토로했었다. 이 이야기는 추후 기회가 되면 담아보겠다.


이후 선배는 모 자동차 회사로 이직했고 정말 많이 바빠 보였다.

종종 안부를 묻기는 했지만 아주 오랜 시간 직접 만날 일은 별로 없었다.

선배네 브랜드가 프로모션이나 이벤트를 할 때 초청해 주셔서 현장에서 만나는 정도였다.


하루는 선배가 우리 회사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며 티타임 요청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살이 조금 빠져 있었지만, 혈색은 매우 좋았다.

“회사 관뒀어. 다시 글쟁이 하려고.”

출근길에 쓰러졌고, 들것에 실리는 와중에도 “저 출근해야 해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벼락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당신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없어. 당장 그만둬!!”


“선배, 언니말이 백번 천 번 옳아요. 건강 잃으면 회사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이에요. 아프면 내 손해예요. 너무너무 잘하셨어요.”

그래, 나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해놓고도 여전히 나를 회사보다 뒤에 두고 있었다.




나 죽을 거 같아 택시 좀

월요일 아침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월요일 아침이니 말짱해야 했는데 그날은 계속해서 위와 등이 아팠다.

약을 먹고 식은땀을 흘리며 출근해 강의 내용을 정리하면서도 우리 팀 차장에게 몸이 너무 안 좋아 서서 할 수 없을 것 같다 양해를 구하고 앉아서 하겠다고 했다.


살면서 아파서 조퇴를 해 본 적도 없고 병가를 내 본 적도 없었다.

안 아파서가 아니라 못 내는 거였다.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

20대 때 국장 선배가 야근 중인 나에게 한 말이 있다.

“퐁당아 소처럼 일하지 좀 마라. 젊은 놈이 무슨 소냐? 회사 지박령이야?”

그래 미련하다. 미련해.


꾸역꾸역 1시간 30분 강의를 마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차장님 나 택시 좀. 택시 좀 잡아줘요. 나 죽을 것 같아요”라며 나는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았다.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어차피 회사 동료가 같이 가도 입장이 불가능할 테니 나는 택시에 기어 올라 홀로 병원으로 향했다.

진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기사님이 힐끔힐끔 바라보며 “조금만 참아라. 최대한 빨리 가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