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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이렇게 ‘상사’ 복이 넘치다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축복

"OO대리,
부러진 신발 줘봐,
내가 고쳐다 줄게!"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부장님이며 다른 동료들의 눈들이 휘둥그레진다. 그 소리에 나는 지점장님실로 뛰어 들어갔다. "네? 지점장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제 구두 수선해다 주신다고요? 제 거를요? 왜요? 왜 지점장님께서....?"라고 반문하는 내게 지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 이 동네 구두수선 집 내가 잘 아니깐. 내가 늘 맡기는 곳에 가서 수선해다 줄게. 나 이따가 그 근처에 볼일도 있거든!"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한 지점의 수장에게 대리 나부랭이가 신발 수선을 맡길 수가 있나... 내가 "아녜요~ 제가 이따가 집에 가는 길에 할게요!" 그랬더니 지점장님께서 또 말씀하신다. "이따가는 아들 데리러 가야 하잖아. 진짜야, 줘!" 나는 슬그머니 탕비실로 가서 쇼핑백에 굽이 댕강 떨어져 나간 내 오른쪽 부츠를 담은 뒤 지점장님께 전달했다. "진짜 감사해서 어쩌죠..."라는 내 말에 지점장님이 말씀하셨다. "나중에 커피 한 잔 쏴!"




"괜찮아요? 아가씨 괜찮아요?"
"어머어머, 아프겠다!!!!"


우당탕탕탕.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망연자실했다. 계단 저 밑에 내 까만 핸드백이 초라하게 누워있고, 핸드백 사이로 튀어나온 나의 온갖 물건들이 계단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다. 점심에 먹을 나의 도시락통이며 지갑이며 화장품이며 손소독제, 아들이 아침에 가방에 넣어준 귤 2개까지 민망하기 그지없다. 옆에서는 아저씨 2명이 주섬주섬 내 물건들을 주워 내 핸드백에 다시 넣어주고 있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계속 옆에 붙어서 "아가씨,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아이고, 얼마나 놀랐어~"라며 쉼 없이 말씀하시면서 내 순에 무언가를 쥐어주신다. 가만히 바라보다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수능날이면 으레 그랬듯이 춥다는 일기예보에 베이지색 가죽부츠를 신고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에 쥐어준 건 내 부츠 '굽' 하나였다. 그제야 나는 내 신발을 바라본다. 엥? 오른쪽 신발이 굽이 떨어져 있다, 초라하다. 정말.


수능날이면 은행의 영업시간도 달라진다. 원래는 9시부터 16시까지 영업시간이지만 한 시간씩 늦춰져서 10시부터 17시까지 은행 문을 연다. 지난 10월에 이사를 하는 바람에 회사까지 나의 출퇴근 거리는 상당하다. 기존에 편도 30분이면 해결되었던 출근시간이 편도 1시간 10분은 족히 걸린다. 늘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내게 오늘처럼 한 시간 늦은 출근은 그야말로 세상 행복한 일이다. 그 덕에 이사 후에는 출근길에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아들과 아침인사도 나누고 아들이 외쳐주는 '파이팅' 소리에 새 힘도 가득 얻었다.




"엄마, 잠깐잠깐!
아직 가지 마~"


내가 현관문을 나서려는 찰나, 아들 녀석이 갑자기 귤 2개를 가져오더니 내 핸드백에 넣어준다. 그러더니 말한다. "엄마, 1개는 이따가 어린이집에 데리러 올 때 나 주고 또 1개는 엄마 회사 가서 먹어. 먹고 힘내!"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 대한 이 녀석의 사랑은 바닥이 있기는 한 걸까, 하염없는 무한대의 사랑에 무척 감동하며 감사하게 시작한 하루였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한 아침이었는데 지하철 역으로 다다다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는 그만 내 핸드백 끈에 발이 걸렸고 나는 그대로 계단에서 나뒹굴었다. 평지였다면 다이아몬드 스텝이라도 밟아가면서 재빠르게 운동신경을 발휘했을 텐데 계단이었고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상황에 함께 놀라 사방에서 사람들의 내뱉는 말소리들에 너무 부끄러웠다. 계단에서 넘어져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나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 오랜만이다. 민망하고 난처한 이 상황에 내 얼굴과 귀는 새빨개졌고 난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도와주신 덕분에 나뒹굴고 있는 내 소지품을 잘 챙겨 다시 핸드백을 들고 한 손에는 떨어진 구두굽 하나를 들고 재빠르게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마음은 이미 백 미터 달리기 중인데 구두굽 한쪽이 없는 내 발걸음은 절뚝거리느라 내 마음을 못 따라온다. 아휴, 속 터져. 절뚝절뚝, 플랫폼에 서 있는 동안 생각했다. '굽이 아주 높지가 않아 정말 다행이다, 5cm쯤이야 뭐 운동하는 셈 치고 맞출 수 있지.' 그러면서 신발 굽이 떨어져 나간 내 오른발의 발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다.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에 탑승하고 아무렇지 않게 평온한 표정을 지어본다.




그러나 비운은 계속되었다. 오늘따라 내가 선 자리의 앞에 앉은 사람들은 엉덩이에 순간접착제라도 붙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고 기미도 없어 보인다. 13년째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름 관상(?)을 보고 서 있을 자리를 고르는데, 오늘 나는 뭐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오른발의 발꿈치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는 것도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혹여나 뒷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나를 보고 비웃을까 봐 티내지 않고 망부석처럼 있는다. 환승을 해서도 내 비운은 나를 계속 따라왔다. 거의 한 시간을 서서, 그것도 높이도 안 맞는 양쪽 발을 온몸으로 보듬으면서 힘들게 출근을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최종 목적지역에 도착한 나는 카드지갑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개찰구 앞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망진창인 핸드백의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찾아도 없다, 진짜 카드지갑이 사라졌다. 다행히 지갑은 있는데 출근길에 개찰했던 카드가 꽂힌 카드지갑이 없다. 하, 나 오늘 진짜.... 무슨 이렇게 험난한 아침이란 말인가. 진짜 속상한 마음을 이끌고 지하철 역 호출벨을 누르고 사정을 말했다. 주절주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어쨌든 나는 지하철 밖으로 나와 급히 지점으로 들어갔다.


먼저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부장님과 몇몇의 직원들을 보자마자 나는 속사포랩으로 아침에 일어난 어마어마한 사건에 대해 쭉 풀었다. 내 얘기를 들은 직원들 모두 "아니, 굽이 댕강 부러질 정도인데 안 다쳤어? 다친 데는 없는 거야? 아휴, 진짜 고생했네. 이렇게 출근을 해 줘서 고맙다!"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아니, 근데 카드지갑은 어딜 간 거야? 집에 갈 카드는 있어? 어디선가 도와주러 왔다는 아저씨들이 사실 나쁜 마음먹은 건 아니겠지?"라는 동료들에 말에 정말 그런 건가 싶어 기분이 급 안 좋아졌다. 오늘 안 그래도 차장님은 딸내미가 수능시험을 치르느라 휴가를 냈고, 또 다른 대리 한 명도 휴가인 상황이라 나까지 어디라도 다쳐서 출근을 못 했다면 지점이 엉망이 됐을 텐데 아침부터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출근을 했으니 그걸로 감사하며 위안을 삼아 본다.


우리 지점으로 발령난지 이제 겨우 2주가 된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따가 집에는 어떻게 가? 이 동네 구둣방이 있나? 나는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영 모르겠네." 그 말에 나는 그냥 웃으면서 "퇴근길에 여의도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돼요. 거기에 구두 수선가게가 종종 보이더라고요. 여의도역에서 어린이집 가는 지하철 타니깐 거기가 딱이에요."라며 말했다. 그런데 그때, 안에 계시던 지점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가 내게 말했다. "OO대리, 부러진 신발 줘봐, 내가 고쳐다 줄게!"라고 말이다.




오후 4시가 되었지만 내려가야 할 은행 셔터문은 아직도 하늘에 매달려 있다. 그래도 뜸하게 계속 들어오는 고객들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 좀 오지, 하는 마음을 가져보며 한가한 틈을 타서 옆 직원과 수다도 간혹 떨어본다. 그런데 갑자기, 지점장님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났다. "OO대리, 내가 신발 가져올 테니깐 걱정 말어!"라고 말씀하시면서 허허허허 웃으신다. 또 귀를 의심했다. "아니에요! 수선 맡기신 곳이 어디인지 위치를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가 볼게요."라고 말하는 내게 괜찮다시며 걱정말라 하신다.


"지점장님,
이런 지점장님은 두 번 다시없을 거예요.
제 인생에 처음이에요!"


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옆의 여자 동료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진짜요, 지점장님! 지점장님 완전 자상해요. 누가 딸 둘 아빠 아니랄까 봐, 지점장님 진짜 최고예요!" 그 사이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켰고 청원경찰이 은행 셔터문을 내린다. 모두 다 재빠르게 마감 업무를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지점 단톡 방에 사진 하나가 뜬다. 붕어빵 가게 앞에서 줄을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은 지점장님의 사진이다. 지점 근처에 맛있는 붕어빵 가게에서 우리가 먹을 간식을 사기 위해 10분 동안 줄 서 계시다는 멘트와 함께. 직원들은 또 말했다. "진짜, 우리 지점장님도 참 대단해. 이 추위에, 아빠 같다니깐!"




우리 지점에는 나보다 위에 지점장님 포함 4명의 상사가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권위적이지 않다. 아래 직원들을 대할 때 존중하고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다. 실적 퍼포먼스를 위한 대책회의가 있을 때도 본인들이 우선 솔선수범한다. 대리급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리 지점 전 직원들은 매일같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점심을 먹을 때 상사 욕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우리 지점은 진짜 상사 욕을 하는 사람이 없다. 아니, 있으래야 있을 수가 없는 게 할만한 게 별로 없다.


물론 사람이 어떻게 100% 좋은 점만 있을까. 간혹 발생되는 불평들이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지점의 상사들은 모두 좋다- 이렇게 결론 난다. 모든 사람이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 지점은 서로가 서로의 장점만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사실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다. 그래서 내게 있어 직장 내의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0이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은행원으로서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고충들이다. 사람을 대하는 스트레스, 게다가 내가 속한 지점은 어르신들이 많은 지점이라 마스크를 끼고 유리벽을 두고 대화하는 요즘 목이 성할 날이 없다.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듣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종종 있어 말을 하다 보면 옛날 가족오락관 게임이 생각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지내다 보니 내가 참 인복이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실, 이사 후 출퇴근 거리가 너무 길고 힘이 들어 집 근처로 발령이 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나인데, 지점 사람들만 두고 본다면 일 년이고 이년이고 이 멤버와는 더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받은 큰 복 중에 나에게는 인복이 있다. 특히, 상사복이 있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많이 든다. 직장 동료들은 그나마 수평적인 관계로 이야기를 털어놓기 쉬운데 명령하달의 관계로 있는 상사와 트러블이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가.




아마 이런 사람과의 축복에는 우리 엄마의 기도가 10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나를 위해 끝없이 기도해 준 우리 엄마의 기도 덕분에 지금 내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나는 믿음의 3대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엄마의 찬송과 기도소리 안에서 자랐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이 새벽예배를 다녔던 엄마의 모습이다. 학창 시절에도 새벽예배를 다녀온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곤히 자고 있는 내 이마에 두 손을 얹고 늘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곤히 잠들어 있는 시간에는 엄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가끔씩 기상 시간 즈음이 될 때는 정신이 살짝 깨어 엄마의 기도소리를 가만히 듣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는 엄마의 기도소리를 외워서 마음속으로 함께 그 기도를 하는 날도 있었다. 자녀를 위한 엄마의 축복 기도에는 늘 빠지지 않고 인생의 만남의 축복이 있었다.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 좋은 동료들 등등, 나를 위한 엄마의 기도는 내가 서른 살이 되어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는 그 날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믿는다. 지금의 나는 우리 엄마의 기도가 만들었다고. 그래서 지금의 내 행복도 기쁨도 엄마의 기도로 인한 복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아들에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늘 마음이 촉박하고 분주한 출근길이지만 짧게라도 엄마가 내게 했듯이 나 또한 우리 아들에게 축복기도를 한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되는 것을 온전히 믿는 나는 기도의 힘과 능력을 알고 있다. 비록 내가 아침부터 계단에서 나뒹구는 민망한 일이 있더라도 여전히 내 삶은 축복으로 가득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했듯이 우리 아들을 장가보내는 그 날까지 나 또한 엄마처럼 살리라.




어느 순간, 다시 지점으로 돌아오신 지점장님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나셨다. 그러고는 아침에 내가 지점장님께 드렸던 쇼핑백을 내게 다시 건네주셨다. 쇼핑백을 열어보니 망가졌던 내 부츠가 다시 완전한 모습이 되어 아름다운 자태로 누워있다. "지점장님, 정말 감사해요!"라고 감동하며 말하는 내게 말씀하신다. "집에 갈 때는 조심해!" 그 덕에 나는 무사히 아들을 만났고 아들과 함께 무사히 집으로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잘거렸다.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말했다. "그래서 엄마 다쳤어?" 아들의 포커스는 오로지 나이다. 아직 사회생활의 희로애락에 대해 알리 없는 아들의 관심은 오로지 엄마가 어딘가 다쳤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러면서 녀석은 말한다. "엄마, 치료가 필요해? 내가 집에 가서 약 발라주고 밴드 붙여줄게!"


그런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나는 운전을 하면서 힐끔힐끔 백미러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기도했다. 우리 아들도 마음이 따뜻하고 위치와 상관없이 겸손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말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자기보다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혼자 눈빛으로 아들에게 하트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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