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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Mar 09. 2020

코로나는 진라면 순한 맛도 먹게 만든다.

진라면 순한 맛을 누가 먹어?

 

 나는 상당한 안전불감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겪어본 가장 큰 재해가  태풍 정도다. 예전에는 나름 예의상 창문에 신문지를 붙이곤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 안 한다.


뭐... 생각보다 창문이 튼튼하더라고.


 그다음으로는 신종플루가 엄청나게 성행했다. 친언니가 신종플루에 걸려 일주일을 꼬박 앓았고 결국 나도 옮았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무증상자였다. 그저 어린 마음에 학교를 2주 쉬어서 기뻤을 뿐이다.

 

 이런 나에게도 코로나는 굉장히 심각하게 와 닿는다. 매일 확진자가 몇백 명씩 생기고, 회사도 3주째 재택근무 중이다. 와 이거 보통이 아닌데? 슬슬 집 밖 외출이 겁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집 바로 옆 병원이 확진자 수용 병원이 된 이후로, 병원 앞의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문득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태풍, 해일, 혹은 좀비 바이러스 기타 등등 각종 재난들. 목숨 걸고 집 밖으로 음식을 구하러 가는 그들을 생각하며 벌떡 일어났다. 당장 비상식량을 쟁여야겠어!


 나는 재난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물론 얼굴은 마스크로 꽁꽁 싸맨 채였다. 도착한 마트에서 첫 번째로 라면 코너 앞에 섰다.


진라면... 매운맛. 진라면... 매운맛??!


 세상에, 진라면 매운맛이 없다! 세상이 멸망하려는 징조인가. 텅 빈자리 옆 진라면 순한 맛만이 본인의 구역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 딴에는 부지런하다고 자부하며 왔으나, 항상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 나가 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진라면 순한 맛을 사들고 돌아왔다. 바로 끓여 먹어본 라면은 밍밍한 게 꼭 채식 라면 같았다.


 이게 재난의 맛인가.

 

다섯 개 들이 진라면 순한 맛은 아직 네 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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