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멸의 칼날 시즌1
청소년 문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고 묻는다면 청소년에게 닥치는 시련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거였다. 주제의 경중을 떠나 한 캐릭터가 사건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태도, 성향은 어떤 인물을 그리느냐에 따라 가벼운 사건도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윤리적인 갈등을 지니고 있는 사건도 가볍게 보일 수 있다. 교훈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청소년 문학의 가장 두드러지고 뻔한 기법이라면, 반드시 다수에 해당하는, 금기가 아닌 사건만을 다루라는 법은 없다. 이를테면 주인공 ‘나’가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고, 마약에 빠져 있을 수도 있으며,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청소년 문학계에서 자극적인 소재야 말로 관심을 많이 받아왔다. 이제 영어덜트로 분류되는 청소년 문학을 더 이상 ‘순수성’이라는 키워드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사건이 필요하고, 사건은 갈등에 의해 움직인다. 인물들은 갈등을 통해 사건을 만들어내거나 극복하고, 때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한다. <귀멸의 칼날>은 여타의 다른 모험기들과 비슷한 구조의 플롯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인물은 자신이 사랑하는 인물을 위해 희생정신으로 모험을 떠난다. 또한 이 인물의 모험의 끝엔 뜻을 이룰 수(있다는 심리적 전제가 있지만 인물 본인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간절함이랄까 하는 다짐이 있다. 둘째, 개인의 사소한 불안이 사회 전체를 향한 분노로 뒤바뀐 악인이 있는데, 이는 곧 어느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순수한 인물을 향한 열등감으로도 표출된다. (세계를 뒤흔드는 악인이 한 명을 죽이지 못해 안달복달한다는 얘기다) 셋째, 주인공은 쉽게 자신의 결핍에 매몰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고, 이는 타인보다는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할 때에 해결이 된다. (그러나 곧 더 높은 강도의 시련을 만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인물이 행하는 것에는 모두 인과가 있다. 작품의 주요 인물인 탄지로의 경우가 그렇다. ‘귀멸의 칼날’은 결국 ‘되찾기’를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는 서유기의 원형을 쪼개어 빌려온 듯하다. ‘탄지로’가 모험을 떠나는 이유가 하나 남은 동생인 네즈코가 혈귀로 변한 것(=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면 이는 탄지로를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갈등이 되고, ‘혈귀’라는 존재를 믿지 않았었기에 당연히 검술에도 능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시즌 초반에 등장했던 바위를 베는 일 따위의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는 탄지로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들을 극복한다는 의미의 복선이기도, 그리고 희생된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해낸다는 의미에서는 이미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어른들(=우노노키)의 우려와 신념을 깨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험기로 보이지만 실은 주인공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이야기. 즉, 성장하며 당연히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을 알아가는 이야기로도 그려진다. 시즌 중반과 후반에 이어 등장했던 혈귀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은 모두 가족 또는 친구와 같은 관계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형을 잃었거나, 가족을 직접 죽였거나, 가족을 꾸며내는 일들은 앞으로 펼쳐질 큰 대결구도가 될 탄지로-키무츠지의 캐릭터성과 입체적인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암시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탄지로가 가족, 친구 간에 진정한 신의를 지니고 있다면 키무츠지는 공포, 그리고 보여주기식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 서브플롯인 젠이츠, 이노스케의, 그리고 시즌 후반에 등장했던 다른 주들의 상처 역시 모두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혈귀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 후회를 하거나 과거를 그리워하는데 이들 역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무참하게 인간을 살해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구간, 탄지로의 시선은 어쩌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영영 되찾지 못한 혈귀들(=어른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탄지로> (주인공, 메인플롯)
- ‘사랑’의 본질을 아는 인물, 그것을 재능으로 사건과 갈등을 풀어내는 이야기 구성
- 타고난 재능 외에 후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은 ‘조력자’를 잘 만났다는 것. 조력자를 잘 만난 것일까 함께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조력자로 만든 것일까.
- 현대극으로 입체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 자신보다 뛰어난 친구를 동경하거나 질투할 줄 알고, 좌절할 시기에는 쉽게 좌절하기도 함(공감요소가 많음)
- 선과 악이 명확함. 적어도 시즌1에서는 윤리적으로 위배되는 일에는 가담하지 않음. (혈귀를 죽여야 한다는 규칙성을 깬다는 점에서는 이미 금기를 깬 인물인가?
- 간절히 원하는 것이 생기면 무섭게 노력하고 성장하는 인물. 시즌1 말미에 숨을 크게 내쉬어 호리병을 파열시키는 건 굉장히 독한 인물이라는 의미
<젠이츠> (주요 인물, 서브플롯)
- 주요 인물인 탄지로 곁의 2번째 주요 인물
- 지켜야 하는 존재나 목표가 없음
- 주인공과 비슷한 환경이나 주인공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조력하는 인물
-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재미 요소가 추가되어 있음(온화해 보이나 가장 본능적인 인물일지도?
- 상당히 겁이 많은 캐릭터이나 신념은 강한 인물
- 아마도 가족이 없는 젠이츠에게 ‘탄지로’와 ‘이노스케’는 ‘네즈코’ 그 자체의 포지션이 되는 서브플롯이 되지 않을까?
- 아마도 자신이 태어난 이유 자체에 의문을 품는 철학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인물일 것 같음
<이노스케> (주요 인물, 서브플롯)
- 주요 인물인 탄지로 곁의 3번째 주요 인물
- 젠이츠와는 완전 반대의 캐릭터.
- 젠이츠가 겁이 많다면 이노스케는 겁이 없는 대신 콤플렉스가 큼
- 자신의 신념을 쉽게 의심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인물(열등감, 자격지심, 자존감 낮음)의 대명사가 되지 않을까?
- ... 젠이츠와 다르게 배경이 크게 나오지는 않은 걸로 봐서 시즌2에서 풀리거나 아마 애니메이션 작업하면서 분량이 적어졌나? (원작이 매우 궁금)
- 어쩌면 탄지로보다 강한 인물이지 않을까 싶고,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는 예민한 성정인 탓에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을까? (가면은 사회적 가면을 가리키는 의미일지도?)
시즌의 전체적인 주제 ‘주체성’은 결국 마지막화에 와서야 분명한 메시지로 표출되는데, 그동안 인물들이 모험을 떠나며 무엇을 결정하고, 판단할 때에는 조력자가 있어온 듯하다. 가야 할 방향을 잃었을 때에는 새가 날아와 말을 건다. 그 길의 끝에 검을 가져다준 사람, 검을 휘두르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앞으로 탄지로가 떠나야 하는 일들은 스스로 맞다고 여기고 시련을 겪어 내 극복해야 하는 일들로 보인다. 카나오의 경우가 그렇다.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거나 행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카나오에게 그의 조력자인 ‘카나에’는 동전 던지기를 제안한다. 이는 다듬어지지 않은 인간에게 지도를 건네 동전의 방향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언뜻 보면 운에 자신을 맡기는 ‘순응의 삶’으로 보이지만 표주박이 파열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만 무엇을 시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탄지로에게 이것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동전을 던진다, 즉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결론, 시즌 초반에 등장했던 바위를 부수는 일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성장함에 있어 조력자의 도움을 받거나 이전의 역사를 학습하며 따라가는 일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해진 길을 밟기보다 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귀멸의 칼날>의 핵심 메시지이고, 남은 시즌도 결국은 인물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새로운 자신을 쌓아가는 것이 아닌 아주 오래전에 가지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자신을 스스로 되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요 인물들인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만 해도 자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혈귀’를 사냥한다는 명목하에 스스로를 찾아가는 모험, 여정을 떠나는데 이 작품의 팬들은 아마도 쪼개진 면면들이 닮은 자신을 생각하며 공감해오지 않았을까 싶다.
<캠프>의 주인공 ‘서진’은 부모의 이혼이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닌 예측하지 못한 ‘사고’라고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서진의 성격은 변수 앞에 자유롭거나 너그럽지 못한 편이고, 제법 규칙적이고 강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서진에게 가족의 분열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긴 것, 남들과 다르게 시작부터 완벽할 수 없는 것, 이라는 그릇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개인의 자유나 장래희망과도 연결되는데, 혹여 잠깐의 여유나 즐거움을 누리는 사이 또다시 무력해지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에게 혹독한 시련을 남기기도 한다. 다른 친구들에게 서진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서진 스스로는 본인을 마음의 지옥 속에 가두고 있다.
‘이제’는 그런 면에서 서진과는 상반된 성격을 지닌 인물이지만 이제 역시 부모의 무계획 속에 태어난 자녀라는 사실을 아주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인물이다. 나이가 많은 부모는 주변인들에게 이제를 소개할 때마다 ‘어쩌다 보니 늦둥이’라는 수식어를 어김없이 갖다 붙이는데, 이제 본인에게는 어릴 때부터 상당히 스트레스이며,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질식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이후로 인생은 완벽할 수 없으며, 무엇을 애쓰기보단 앞으로 다가오는 일들을 무력하게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서진과 이제는 서로가 단짝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리고 서로가 너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관념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준오’는 어떤가. 두 사람 사이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러브라인의 주인공. ‘준오’는 서진과 쌍방의 관계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이제’ 그리고 세화고등학교에서 인기가 좋은 친구다. 그가 인기가 좋은 이유는 잦은 전학으로 인해 교우관계를 맺는 것에 불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함께 조를 꾸릴 수 없었을 때의 트라우마는 준오에게 고등학교 때까지 인관관계에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즉 편하지 못하고 애써야 하는 관계로 인식되어 있는데 이는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성인에게도 공감되는 설정이기도 하다. 준오는 유일하게 서진에게만큼은 솔직한 면면들을 내보이는데 이는 ‘서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큰 실망을 느끼며 인간관계 전체에 애쓰지 않음, 노력하지 않음의 태도로 준오를 먼저 대했기 때문이다. 서진이 살아있는 생물에게 영원한 것이 없음을 믿고, 살아있지 않는 물성에게 마음을 붙인다면, 준오는 반대의 성정을 가지고 있으나 서진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이야 말로 자신에게 자극점을 내어주고 자유의 한숨을 트게 해주는 존재가 되어 준다.
이들은 하루 동안 캠프를 하며 서로의 결핍을 학교 구석구석에 남겨둔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마음속에 품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흐느끼듯 뱉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캠프가 끝난 뒤에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핍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채워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력은 하되, 성장은 스스로 해내며 조금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변화해 가는 것이 각 캐릭터들이 지닌 매력이자 쓰고자 하는 소설의 목표다. <귀멸의 칼날> 속 탄지로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해내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인과는 환경이 아닌 스스로 택하는 법이다. 동전의 앞면을 던지는 것도, 앞면이 나오면 결심한 것을 이루려는 태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