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히사시, <연애시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스물두 살 신부가 생각하는 행복이라야 뻔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 바에 앉아 열심히 생각했다. 이윽고 새벽 한 시경에 도달한 결론은 너무나 단순해서, 그때까지 혼자 ‘행복론’을 전개하고 앉아 있었던 내 자신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리이치로를 믿을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하야세 리이치로한테 나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무력하다. 결혼은 경마나 경륜과 같은 도박이다. 나는 딱 한 번 슬롯머신을 해봤을 뿐 도박에는 무지한 사람이지만, ‘하야세 리이치로에게 2000점!’을 거는 인생을 즐겨야 한다. 지고 싶지는 않지만, 이기려는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본전이면 충분하다. 본전이면 나도 리이치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사고 회로를 거친 끝에 나온 결론이었던 것 같다. (p.233)
열두 개의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만났다. 내게는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좀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그 속에 있었다. 새벽까지 베개를 품에 안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던 누군가는 여행을 하며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았다. 사람을 경계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달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우리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끝은 사랑으로 향했다. 그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몇 차례의 사랑을 막 끝내고 왔노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상대는 결혼을 앞둔 사람이었다고 한다. 연인이 있는 상황에서 그녀를 만난 것인지, 아니면 시점이 정말로 엇갈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가 구체적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을 망설이는 모양이더라고, 어쩌면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결혼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데다 결혼을 너무나 원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여자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충격을 받았지만 곧바로 그의 앞에서 자신이 오래 좋아해 왔던 남자의 결혼을 응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와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그렇게 반년째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와 나는 입을 모아 그 남자를 비난했다. 짝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여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점이라던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꼴이란. 게다가 운명처럼 들려주었던 첫인상은 어느새 피해야 하는 1순위 타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연애시대>는 몇 년 전에 사두고 몇 번이고 실패했던 소설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도 않고, 이혼한 부부가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모습이며, 그들의 유머코드가 내게는 전혀 웃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어째서 스스로 상처 입을 만큼 실패하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해 너그러워지지 못하는 걸까? 인간은 정작 너그러워져야 될 시기를 항상 놓치고 만다니까.” (p.701)
“새롭게 얻는 것보다 잃어버린 쪽이 항상 크게 느껴지는 법이야. 영원히 그럴 거야. 그래서 인간은 까다로운 존재인가봐. 둘이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란 앨범을 넘기는 일이 아니야. 둘이서 옛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즐거운 일이 앞으로도 많이 일어날 거라고 꿈꾸는 일이야. 그래서... 필요한 거야. 하얀 캔버스 같은 인생이.” (p.117)
책을 읽는 동안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떠올려보았다. 결혼한 지 1년 3개월 만에 이혼을 선택한 하루와 리이치로. 두 사람의 이혼의 결정적인 계기는 유산한 아이 때문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서로가 마주한 상처를 회피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생활습관이나 성격, 관심사 어느 것 하나 맞는 구석이 없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이라고 하기엔 벼락 맞을 확률로 만나게 된 셈이다.
서점에서 근무하는 리이치로와 스포츠센터 강사인 하루. 설정만 봐도 두 사람의 캐릭터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슬픔을 마주했을 때 리이치로가 그것을 감추는 편이라면 하루는 조금 더 상처의 가까이에 다가가 어루만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이 결별의 사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두 사람이, 그리고 아마도 많은 커플에게 이별의 사유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거나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욕심이 많다는 건 관대하지 못한 기준이 있는 것이고, 이는 곧 너그러워지지 못해 차이 앞에 너그러워지지 못하는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건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관념에만 기대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선택’이라는 가치는 너무나도 양면적이어서 얻는 만큼 푹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하루가 자신의 기준에서만 리이치로를 바라보았다면, 리이치로 역시 하루를 자신의 사고관점에서만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는 모든 가치에 대해서도.
이름은 친척 아저씨들한테서 빌렸다. 일곱 번째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당신이 첫 남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이 필요했을까?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그랬다면 귀엽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략) 사랑하면서 상대보다 우위에 서기를 바라는 이상한 경쟁의식이 있었다. 그런 방식이 아니고는 사랑에 뛰어들 수 없었던 나는 구제 불능의 어린애였다. (p.137)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다툴 일이 생기면, 나의 설교 투나 완벽주의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쏘아붙였다. 욕실에 걸려 있는 타월 두 장의 길이가 똑같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나의 성격을 완벽주의라며 부풀려 말했다. 설교 투인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첫 데이트 때부터 젓가락질에 대한 설교가 가능한 남자였기 때문에 좋아한 거였다. 연애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서로의 단점이 점차 눈에 들어왔다. 결혼 생활이란 그런 거다. (p.140)
오랜 기간 ‘운동’이라는 대결구도에 놓여 있었던 하루는 인정욕구에 목말라 있는 인물로 보인다. 예민한 성정인 그녀에게 리이치로는 섬세한 성정인 것이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성격이랄까. 그래서 첫 아이가 산달을 채운 채로 유산되었을 때 남몰래 밤새 영안실을 지키며 슬픔을 삼켰다는 것을 하루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루는 막 출산을 끝낸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는 상처를 안은 채로 결혼의 남은 생활을 이어간다. 그뿐인가, 하루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하루는 결혼 후 급격히 애정이 식은 것 같고, 방치된 것 같은 기분에 외로움을 느끼다 못해 리이치로를 의심하는 지경까지 가는데 리이치로는 하루에게 충분한 대화를 하기보단 숨이 막힌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서로의 결혼상대를 찾아주겠다는 기세로 시작된 이야기는 정말로 서로에게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여정을 그린다. 리이치로가 하루의 맞선을 주도한다면, 하루 역시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는데 소개해주는 시점부터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고, 그래서 상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응원까지 하는데 독자에게는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를 증명하는 셈인 것이다. 리이치로는 심지어 다른 여성과 결혼식까지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하루를 향한 사랑을 내보이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의 사랑은 도대체 몇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걸까 싶은 즈음에 이야기는 두 사람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결국 ‘변심 이야기’. 리이치로와 하루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계절처럼 관조하는 작품이다. 사랑만으로 시작해서, 사랑이 결핍된 지점을 발견하고,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하루의 어리숙한 첫사랑이 무르익어가는 지점을 관찰하는 것도 즐겁지만, 하루를 다소 과잉보호했던(?) 리이치로의 인간성에 신선한 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실은 하루와 리이치로가 잘 어울리는 사이일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동안 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과거였다면 꼭 두 사람이 아니었어도 누구였어도 두 사람은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이라거나 동반자라거나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 꼭 맞는 상대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상대의 시선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나, 더 가져다줄 수 있는 안정감. 사람들은 그런 것들 덕분에 혼자이지 않는 삶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아주 작은 홀씨처럼 약간의 권태로움과 지겨움이 있어주어서 사랑을, 관계를, 그리고 다음을 기다리게 된다. 반복될 수 있는 것만큼 안전한 감각이 어디 있을까? 가치를 매기지 않는 가장 순수하게 건네지는 당연함이야 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내 곁의 모든 관계들을 꽉 붙잡고 싶다.
엄마는 있지, 행복이라는 건 계속 졸린 게 아닐까 하고 요즘 와서 생각해. 평범한 슬픔이며 괴로움을 담고 살아가는 특별할 것 없는 생활, 솔직히 말하면, 이런 정도의 행복을 갖고 싶어서 아빠와 엄마는 그렇게 멀리 돌아온 건가 하고 기막힐 때도 있어. 연애 시절이 멀리 가버렸다는 것에 한숨이 절로 나올 때도 있고. 그래도 말이지. 졸립다는 건 엄마의 지금 인생에서 무척 소중한 것이라고 느껴진단다. (p.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