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는 마음

임선우,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by 곽민주


최근에 몹시 친근했던 두 가지 물건을 잃었다. 첫째는 좋아하는 유리컵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고, 두 번째는 오래 써 오던 안경의 테두리가 초록빛으로 녹이 슬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유리컵은 금이 간 것을 발견하자마자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 버렸고, 안경은... 잠시 생각하다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실은 안경에 녹이 슬어 있는 것을 몇 개월 전에도 발견했었다. 그때는 지금의 정도는 아니었는데 왠지 모른 체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구입한) 새 안경을 쓰지 않고 다시 옛 안경을 꾸역꾸역 쓰고 다녔다. 역시나, 나는 과거와 잘 헤어지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인가 보다. 몇 개월 사이 녹이 스는 속도가 빨라졌고, 조금만 세심한 사람이라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동일한 모델의 새것을 구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고, 계속 쓰기엔 주변에서 찌질하게 볼까 봐 망설여졌다. 내내 속상했다. 유리컵은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서 산 것인데 이제는 나오지 않는 제품이고, 안경 역시 그 안경을 통해 본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슬펐다.


그 안경은 아마도 지난 회사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구했을 것이다. 그 안경을 쓰고 많은 것을 보았다. 책도 많이 읽었고, 많이 읽으러 다니려 했고, 12개국 해외여행을 할 때도 그 안경을 쓰고 있었지. 친구들을 만나면 깔깔 거리며 웃기도 했고, 안경에 눈물자국을 여러 번 닦아야 할 정도로 많이 울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만 같아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가장 높은 분께 개인 면담을 신청해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죄송하다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던 시간이다. 물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때가 아마 스물일곱이었던가.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그것이 텃새였다는 것을 알게된 건 나중의 사실이다. 그때는 마음이 지금보다 더 순수하고.. 순수했지. 처음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던 날에도 리셉션룸에서 펑펑 울었는데 그때도 그 안경을 쓰고 있었고, 오 년 정도가 지나 퇴사 의사를 밝히던 회의실에서도 나는 그 층에 있던, 그 복도를 지나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할 정도로 소리 내어 서럽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새롭게 오셨던 분이 나를 안아주면서 참지 말라고, 그러면 몸이 상하기 시작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또 남는다. 생각해 보니 안경을 쓰고 많이 울었네 했는데 울지 않더라도 주로 운동을 하느라 땀을 많이 흘렸겠구나 싶어 동시에 웃음이 났다.


아는 사람이 일본으로 금괴를 옮겨 주면 50만원을 주겠대. 같이 갈래?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영하 언니가 말을 이어 갔다. 2박 3일 비행기랑 호텔까지 예약해 주겠대. 할게요. 내가 대답했다. 정말? 정말 할게요. (p.9)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의 ‘나’는 3년 전까지 축구선수 유망주였으나 현재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선수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영하 언니’는 대학로에서 연기를 꽤 오래 했으나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언니는 헬스장의 인포데스크에서 아르바이트를, 나는 같은 건물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어쩌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실제 친밀감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런 언니가 ‘나’에게 금괴를 밀수하자는 제안을 해오고,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승낙한다. 임선우의 소설 답게 중대한 갈등을 너무나 대책 없이 승낙해서 또 웃었다.


금괴를 밀수하러 가는 곳은 오사카. 오사카는 ‘나’에게 3년 전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언니도, 나도 공통점이 있다면 과거에 무엇을 원했고, 지금은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조금은 받아들인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성인이 되어 일종의 세상의 굴레라던가 법칙 같은 것은 조금 꿰기 시작한 것이다. 3년 사이 ‘나’에게 오사카는 기대의 도시에서 불안의 도시로 변해있다. 또한 현재의 ‘나’가 그 일을 승낙한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허무함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계 자체가 가짜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CCTV가 유일하게 없다는 공항의 기도실에서 ‘나’는 영하 언니와 함께 면세점 직원이자 금괴를 수령받을 여자의 남자친구를 만나 절연 테이프에 둘둘 감은 금괴를 받는다. 편지도 받는다. 편지에는 풀칠이 되어 있는데, 대책 없는 두 여자는 또다시 그 편지를 몰래 열어본다.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편지 속에는 ‘오키나와에 눈이 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메다에서 함께 영화를 보자는 티켓이 들려있다. 그것이 무언가를 확인하는 신호인지, 아니면 데이트를 신청하는 낭만적인 고백인지는 진실로 알지 못한다.


언니는 낮에 뭐 하고 지내요? 누워 있어. 누워서 뭐 하는데요? 나는 다시 물었다. 진짜로 말해 줘? 아니면 거짓말로? 진짜로요. 그러자 영하 언니는 맥주를 들이켠다음 말했다. 저주해. 온 마음을 다해서. (...) 너도 싫어하는 사람 있으면 해 봐. 나는 저주할 만큼 싫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안 돼. 영하 언니가 말했다. 남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대. (p.20)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폭발적인 기대와 변화를 전해줄 것 같은 일이 ‘오키나와의 눈’으로 상징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축구선수로 살아갈 것 같았던, 배우로 살아갈 것 같았던 두 사람 역시 ‘오키나와의 눈’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사히 금괴를 전해주고 돈도 받은 ‘나’와 영하 언니는 함께 쓰는 숙소에서 잠들지 못해 멍한 얼굴로 잠깐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축구선수 유망주이던 때에 한일전에서 우승하고 심었던 나무가 있는 학교의 운동장을 찾아보지만 나무는커녕 새 건물이 들어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죽은 친구를 잠깐 떠올린다.


백화점에서 왜 그랬어요? 내가 물었다.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서. 한 번도 입어 본 적 없는 옷을 입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던 거지. 영하 언니가 대답했다. 나는 옷들이 언니에게 전부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영하 언니가 말했다. 나는 내가 나인 걸 잊지 못해. 그래서 연기도 망한 거야. (p.27)


영하 언니 역시 나와 함께 갔던 백화점의 명품관에서 이리저리 살 수 없는 옷들을 입어보고 직원의 눈총을 받는다. 나 역시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니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걸 보고 나는 묻고, 연기 따위 감독이든 동료 배우든 남을 탓하고 저주하며 당차게 살아가는 언니가 실은 연기에 재능이 없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두 사람은 도톤보리의 인공수로를 지나가며 모든 가짜 같고 거짓말 같은 시간들을 생각한다. 친구의 죽음은 거짓말처럼 영광스러운 날의 다음날에 이루어졌다.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거짓말처럼 어느 날 이루어졌을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숙소에서 발견한 죽어가는 사마귀 한 마리를 보살피는데 처음부터 한쪽 다리가 시원찮던 그것은 끝내 죽어버린다. 기적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마음속에서 폭죽처럼 좌절감이 터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시작에 있었던 단 한 가지. 금괴를 밀수하는, 말도 안 되는 이 일을 실제로 해냈다는 사실이다. 해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엔 너무 좋지 못하지만 허망한 마음으로, 너무 거짓말 같은 기대로 시작했던 오사카행이 결국 오키나와의 눈을 내리게 만든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가짜들이 어렵게 수놓은 단 한 가지 진짜의 사건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일 것이고, 이들에게 다음으로 나갈 작별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금괴 밀수를 가장한 오사카의 짧은 여행이 끝나는 동안 두 사람은 어쩌면 마음속에 안고 있던 작별들을 또다시 꺼냈다가 다시 마음속에 꽁꽁 싸매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 기쁜 일이든, 마음에 상처가 남는 일이든, 그런 것들은 쉽게 작별할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제고 곁에 둘 수는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니까. 대체로 상처가 남는 일들은 좋고 기대에 찰 수 있었던 순간을 동반하는 모양이다. 내게 안경이 그랬으니까.


우리는 사마귀 무덤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작고 평평한 무덤 앞에서 영하 언니는 나에게 좋은 것들은 왜 금방 끝나버리는 걸까, 하고 물었다. 언니에게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언니가 나에게 너무나 좋은 것이어서, 그래서 금방 끝나버렸다는 말을 끝까지 전하지 못했다. (p.33)


소설을 읽고 난 뒤, 더 이상 안경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회사에 온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새로운 사람들, 달라진 동네, 분위기,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이 앞으로도 흐를 것이니까. 이틀 전에는 두해 전에 관계를 끊었던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직접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그런 사이가 되지 못하게 되어 그것이 아쉬웠고, 마음이 좋지 못했다. 내가 너무 일만 좇았던 과거에, 내 속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번에 너무 많은 친구들을 잃은 것 같아서 속이 상했고, 모든 게 다 나 때문인 것만 같았고, 내가 좋은 사람인가? 의심하는 한 주를 보냈다. 당시에 그 친구와도 쉽게 작별하지 못했지.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더 많은 작별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키나와에 눈이 내릴 것 같은 예측하지 못한 일들도 많을 것이다. 대체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담담하고 침착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그들이 완전히 떠난 다음에 나는 앞에 앉은 영하 언니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다 마신 영하 언니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영하 언니는 이제 그만 일어날까? 하고 물었다. 내리던 눈은 어느덧 그쳐 있었고,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자 까끌까끌한 맥주 병뚜껑이 집혔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굴리다가 대답했다. 그래요. (p.35)





#003 임선우,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고스트프레스>
매거진의 이전글무엇이라고 부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