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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실루엣 Feb 24. 2021

임현 <고두>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는지는 몰라. 그러니까 아무나 쉽게 비난하고 혐오하고 그게 정의인 줄 아는 거지. 정치인을 혐오하고 가정폭력범과 강간범을 혐오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터넷에 올리고 퍼뜨리고 그걸로 무언가 바로잡는 줄 알아. 그러면서도 정작 그게 자기 모습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거든.

-26p





여기 이 종이 위에 나의 검은색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보여줘서는 안 되는 나의 검은색. 오늘 하루도 지독하게 무언가를 미워했음에도 내 검은색은 정작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가 다 끝나가서야 종이 위에 얹어 놓는다.


세상은 비난할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역겨운 냄새가 여기저기서 난다. 오늘도 누군가는 큰 잘못을 했다. 이러니 비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언제 이 세상이 좋아지겠냐며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한다.


근데

내 검은색이 그렇다고 옅어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난 저 정도까진 아니었어.” 했던 이름 모를 누군가의 검은색도,

관상을 보아하니 딱 그럴 것 같다던 얼굴 모를 누군가의 검은색도.


아무도 옅어지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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