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헤어지는 사랑은 없다
*<헤어질 결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차거나, 차이거나, 합의 하에 좋게 헤어지든 어쩌든, 모든 연인에게는 ‘이별의 날’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날이 있다고 한들, 진정으로 상대를 마음 속에서 지우는 진짜 헤어짐의 날은 서로 다른 법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날이 제 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의 영화를 보고 신기했던 것은, 인물들에 대해 미쳤네, 불쌍해, 쌤통이다 같은 가치 판단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찾기 좋아하는 나는 오히려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을 멀리서 연극 보듯 관조했다.
이것은 감독의 의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보여주는 연출적 재미가 서사적 재미를 삼킬 만큼 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통통 특유의 리듬을 타며 인물의 얼굴로 옮겨가는 카메라 무빙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곱씹어보면 서래의 삶이 슬프긴 하다. 좋지 않은 삶의 시작점에서 벗어나지 못해 좋은 인연과 가닿을 가능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삶. 그래서 서래는 해준의 ‘사랑해’라는 말 없이도 그것은 사랑 고백이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녀가 택한 일관적인 사랑과 죽음의 방식 또한 안타깝게 느껴졌다. 서래는 불같이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바다에 직접 빠지지 않는다. 구덩이 속에서 점점 죽음이 자신을 덮치기만을 기다린다.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매력적으로 구성된 영화를 맘껏 탐미하는 것도 꽤 즐거웠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 리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