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인의 탄생
출처: https://blog.naver.com/fromthegoldenage/222108527305
최후의 숙적은 언제나 최강의 상태로 용사의 길을 가로막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마왕의 유년기를 알지 못하고 디아블로나 메피스토의 유년시절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가장 수준이 높은 글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나타나곤 하는데 우리는 성경에서 사탄의 성장을 읽을 수 없고 심지어 가장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사조인 (실험과 관찰이라는 과정을 가진 전문 과학이 아닌 상상에 기반한) '과학적 세계관' 에서도 모든 살아있는 것의 최고의 적인 '죽음' 은 그 시작이 묘연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찬가'는 '주인공'이 승리하는 일반적인 플롯이어도 위대한 감동이 있을 것이고 '숙적'이 결국 승리하더라도 감동을 이끌어낼 충분한 비장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메가와 롤렉스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후, 이런 식의 글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위대한 선구자 '한스 윌도르프'가 이끄는 롤렉스는 이런 저런 위대한 혁신으로 당시 최강의 제국 (하지만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혁신이 없었던) 오메가를 쓰러트렸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글은 언제나 소소한 영웅적 감동을 보증할테지만, 이미 이러한 종류의 '롤렉스 찬가' 는 시계생활을 하는 내내 꽤나 지겹게 보고 들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대신 저는 어설프게나마 조금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두 거인을 다뤄볼 생각입니다. 삼국지 연의를 감명깊게 읽었다면 정사 삼국지도 궁금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1. 거인의 탄생.
오메가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루이스 브런트' 라는 재기넘치는 젊은이가 1848년 라 쇼드퐁에 조그마한 공방을 열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그렇듯 '루이스 브런트' 역시 이미 젊은 시절에 스위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날렸습니다. 루이스 브런트의 사후 두 아들 '폴 브런트' 와 '세사르 브런트' 가 이 공방을 이어받았지만 아직 위대한 이름 '오메가'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 두 형제는 공방을 베른주의 빌 (Biel) 로 옮겨 마침내 그들의 최초의 시리즈 무브먼트인 'Labrador' 를 제작했습니다. 이 무브먼트는 당시 상당한 진보를 거둔 무브먼트로 이후 이들이 거두어낼 성공의 훌륭한 기초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1892년에 이들은 세계 최초로 손목시계용 미닛리피터를 만들어냈습니다.
1894년 이 두 형제는 시계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낼 성공을 이룹니다. 이 위대한 거인은 이 혁신 하나만으로 이미 위대한 거인이 되어버립니다. 그 혁신은 '산업화' 혹은 '규격화' 입니다. 이들의 회중시계 무브먼트인 '19리뉴 칼리버' 는 최초의 산업화된 무브먼트였으며 세계의 어떤 시계장인이든 파츠를 교체해낼 수 있는 규격화가 이루어진 혁신적인 무브먼트였습니다. 즉, 이제 시계를 만든 공방에서만 수리가 가능한 시계가 아닌, 세계의 모든 숙련된 시계장인이 수리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의 이 거대한 혁신 이전에는 모든 파츠가 규격화되지 않았고 모든 시계는 제작자의 품 안에서 수리받아야 온전한 수리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 변화는 '브레게' 로부터 시작되어 '파텍필립' 으로 대표되는, 또한 수 많은 기존 공방들이 따르던 수공업 방식을 완전히 탈피한 '오메가 웨이' 로서 '제니스', '론진', '롤렉스', 'IWC' 등이 오메가 웨이를 적극적으로 따르던 후발 제작사입니다.
또한 세계 최초는 아니지만, 이 19리뉴를 탑재한 회중시계는 당시에는 생소한 크라운을 돌려 태엽을 감는 방식과 크라운을 돌려 시간을 맞추는 방식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19 리뉴 칼리버' 는 굉장한 정확도와 내구성을 겸비한 무브먼트였습니다. 당시 Louis Brandt & Frere 라고 불리우던 이들의 공방에서 이들은 이 회중시계 무브먼트에 전설적인 이름인 '오메가'를 붙여했고 이들이 부여한 '오메가'라는 이름이 오히려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어 1903년 'Omega Watch Co.' 가 설립되었습니다. 오메가는 이 19리뉴 회중시계 무브먼트로 최초로 뇌샤텔 천문대 경연대회에 참여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둡니다.
1900년대 초, 세계는 급격하게 산업화되기 시작했으며 정확한 시계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오메가는 스위스에서 가장 거대한 공방을 가진 최고 수준의 시계 제작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오메가가 최고의 시계 제작사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단순히 스위스에서 최대의 규모를 가진 시계제작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된 파츠로 만들어진 시계들은 당연히 수리가 쉬웠고 이러한 규격화는 최대 규모의 공방을 가진 오메가가 시계들을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메가의 진정한 힘은 당대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를 만들던 시계제작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메가는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가장 튼튼하며 가장 수리가 쉬운 시계들을 가장 많이 생산해낼 수 있는 시계제작사였습니다.
오메가의 시계들은 '가장 정확한 시계' 가 필요한 모든 곳에 쓰였는데, 특히 1905년, 오메가는 시계의 나라 스위스에서 벌어지는 모든 스포츠의 타임키퍼라는 지위를 얻었으며, 1932년 LA 올림픽부터 올림픽 타임키퍼가 됩니다. (최초의 올림픽 타임키퍼는 호이어사로 1920년, 1924년, 1928년 올림픽은 1/100초까지 계측이 가능했던 Mikrograph Pocket Chronometer 를 사용함) 오메가는 1932년 올림픽 칼리버라고도 불리우는 Cal 1130을 사용한 스톱워치 30대와 시계제작자 1명을 LA로 보내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루어냅니다. 이후 오메가는 현재까지 20여번이 넘는 올림픽이 치뤄지는동안 이 지위를 유지합니다.
오메가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 '정확성'에 있었습니다. 오메가는 1919년 Cal. 21 으로 최초의 천문대 경연대회 우승 이후 엄청난 우승 레이스를 펼칩니다. 22년 최초로 참가한 큐 천문대 테스트에서 3위로 입상한 이후 25년 해당 천문대 테스트에서 Cal. 47.7 으로 100점 만점에 95.9점을 기록하며 율리스 나르딘과 공동 1위를 기록합니다. 이후 30년에 96.3점으로 모바도와 공동 우승을 기록합니다. 1931년 오메가는 제네바 천문대에서 개최된 6번의 테스트에서 6번의 1위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최고로 정확한 시계라는 타이틀을 얻어냅니다. 오메가는 1931년의 천문대 테스트 이후 'Omega - Exact time for life (오메가 - 삶을 위한 정확한 시간)' 을 슬로건으로 내겁니다.
또한 1936년 오메가는 큐 천문대에서 이루어진 테스트에서 무려 97.8점을 기록했으며 이 기록은 65년까지 그 어떤 제작사도 깰 수 없었습니다. 오메가는 총 8번의 천문대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1952년 출시된 이후 언제나 오메가의 플레그쉽이었던 컨스틸레이션의 케이스백에는 이 기록을 상징하는 8개의 별이 달려있습니다. 이렇게 초기의 오메가는 당시 스위스 시계산업내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를 만들어내는 시계 제작사였습니다. 흔히 현재의 오메가의 대표 라인업으로 프로페셔널 라인인 '스피드마스터' 와 '씨마스터' 를 뽑기도 합니다만 오메가의 진정한 헤리티지는 사실 이 '정확성' 의 역사에 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오메가가 '천문대 경연대회' 를 통해 이룩한 엄청난 성과들이 그 증거입니다. 오메가의 헤리티지는 이 '천문대 경연대회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천문대 경연대회를 단 한 회도 빼먹지 않고 참여한 제작사는 오메가와 파텍필립이 유이합니다.
이렇게 오메가는 그 '정확성' 을 필두로 당시 스위스 내에서 가장 위대한 시계제작사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메가의 '정확성' 은 주로 크기가 큰 회중시계에 한정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계시장은 점차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넘어갈 운명이었으며 이러한 예측을 한 젊은 독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1910년대에 시계 제작사 중 누구도 하지 않았던 기행을 벌이는데, 바로 자그마한 손목시계 무브먼트로 거대 회중시계들이나 받던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으려고 시도한 일이었습니다. 이 독일인의 이름은 '한스 윌도르프' 였으며 단순한 크로노미터 인증은 오메가의 회중시계 무브먼트처럼 우승행진을 이어가던 것도 아니었고 단순한 '인증' 에 불과했지만 선구자적 행위임이 확실했습니다. 이 독일인은 1905년, 영국에 입국하여 스위스에서 생산된 정확한 무브먼트를 수입해 영국에서 생산된 케이스에 넣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 젊은이였습니다. 이 독일인이 당대의 거인 오메가를 뛰어넘는 제국을 만들거라 생각한다면 당시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롤렉스의 성장을 주로 다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