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
얼마 전, 오랜만에 익선동에 다녀왔다. 한창 을지로와 익선동이 핫할 때 들르곤 피곤해서 요즘엔 간 적이 없었는데, 여전히 사람은 많고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했다. 근대 가옥의 내부를 수리해 연 가게들은 멋있긴 했지만, 좁고 불편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요즘 편한 카페를 간 적이 손에 꼽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을지로의 간판 없는 카페들을 비롯해 지역별 핫한 곳들을 재작년과 작년 연재로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대구 삼덕동이나 광주 동명동이나 어디를 가도 힙카페들은 다 불편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우리 동네에도 꽤 유명한 힙카페들이 많은데, 낮은 테이블과 등받이 없이 애매한 높이의 딱딱한 의자, 좁은 테이블 간격 같은 건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기왕 놀러 간 건데, 체인점에 가는 건 아쉽기도 하고 그래도 커피는 맛이 있으려나 싶어서 들어가도 커피맛까지 손꼽게 좋았던 곳은 거의 없었다. 공간이 풍겨내는 분위기만으로 6-8000원을 쓰기엔 역시 이제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도 잘 나오고, 음료도 나쁘지 않았지만 가격에 비해서는 별로인 게 분명한 카페. ‘로컬’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아닌 것 같은 골목 속 숨어 있는 힙카페들이 이젠 모두 억지로 연출된 #갬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더 이상 아쉽지가 않게 됐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내가 이렇게 잘 먹었다, 나 오늘 여기 갔다를 넘어 #갬성 넘치는 자아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것과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한 컷을 업로드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나는 몇 개의 편견을 갖고 있다. 어떤 여행지를 좋아하는지, 어떤 여행 스타일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마음대로 추측하곤 한다. 뉴욕을 좋아하는 사람과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 볼리비아를 좋아하는 사람과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 러시아를 좋아하는 사람과 세부나 보라카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성향이 같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직장인이 되고 나면 여행지를 택하는 기준이 온전히 내 취향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며칠이나 연차와 휴가를 쓸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하고, 예상 여행경비도 어느 정도 맞춰야 한다. 떠나는 때, 여행지의 날씨나 상황 같은 것도 고려해 고르고 고른다. 이런 옵션들을 하나둘 제치다 보면 당연히 취향과 관계없이 가까운 거리 중에, 가성비 넘치는 여행지를 골라잡는 것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어떤 선택이든 거기엔 몇 % 라도 분명히 취향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행이라면 결국 선택의 기준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취향 아닐까? 기껏 해서 시간과 돈을 쓰러 나가는 건데, 취향도 아닌 곳을 가느니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테니까.
소비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비사회에서 여행은 당연하게 여행 이상의 메시지를 던진다. 여행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다못해 여행지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것을 보러 갔는지도 취향의 전시다.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은 건축 여행을, 음악을 좋아하면 공연을 보러 갔을 수도 있다. 그림을 좋아하면 드디어 실제로 마주하게 된 작품 사진을 업로드하겠지? 며칠이 될 수도, 1년이 넘는 아주 장기간의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기간과 상관없이 여행지는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무언가를 표출할 수 있다. 홍콩 드래곤스백 트레킹 사진을 올리며, 트레킹 하는 삶을 꿈꾼다고 말할 수도 있고, 서핑과 일광욕하며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매일같이 뮤지컬을 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말할 수 있기도 하고, 빠이 같은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한 장의 사진으로 드러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로. 내 취향이 전시되어 있는 SNS 속에 여행도 추가되는 것이다.
작년 7월 익스피디아가 2050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SNS에서 본 여행지에 관심이 생긴다는 응답자는 1위인 방송에 이어 두 번째로 응답자의 64.3%를 차지했다. (중복응답 허용) 관심이 실제 여행까지 이어지는 확률은 절반에 해당하는 31.5%였고, 응답자의 28.8%는 여행지를 고를 때 SNS에 업로드 하기 적합한 곳인지 고려한다고 답했다.
SNS에 업로드 하기 적합한 곳인지 그 기준이 뭘까?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줄 때 ‘그럴듯한’ 여행지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지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되어 확장된 내 일상과 취향, 이상을 보여주는 공간이니까 말이다. 인간의 모든 사회 활동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SNS도 마찬가지다. 물론 SNS는 정체성을 만들어간다기보다는 정체성을 ‘전시하는 공간’에 가깝다. 그리고 전시엔 어떻든 감상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여행 불매 운동의 성과가 큰 지도.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1일 발표한 10월 해외여행 수요 통계 결과에 따르면 일본 여행 상품 판매 수는 전년 대비 최대 91.9% 포인트(p) 떨어졌다. 사람들은 일본 여행 불매 성황의 이유로 ‘인스타그램’을 꼽았다. 기껏 돈 써서 여행 가서 자랑도 못하는데 ‘왜 가냐’는 거다. 여행이 여행만으로 목적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했다는 것’이 소비된다는 걸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아는 거다.
아무래도 여행은 이제 새로운 장식품이 되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여행지가 나의 감성과 취향을 대표한다. 마치 내가 쓰는 물건이 나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여행은 이제 나를 꾸며주는 일종의 장식품 중에 하나다. 내가 소비한 것의 전시장이 SNS라면, 사진을 업로드했고, ‘좋아요’를 받은 순간 이 공간과 나의 추억에도 효용이 매겨진 걸까? 하트수만큼의 수치로? 보드리야르가 소비사회를 이야기할 때, 여행도 그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단순한 제품 구매만으로는 특정한 주제나 사연, 독특한 체험이 부족한 시대에서 여행은 나만의 정체성을 풍겨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냥 모든 것이 다 피로해진다. 나의 재미난 일상! 여행도 잘 가고 재미있는 나의 삶! 이런 ‘브랜딩’의 일종으로 여행마저 소비되고 싶지가 않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나를 전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나의 피로감. 아마도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은 이게 아닐까? 여행과 운동, 명상 등 내게 쏟는 일조차 나를 ‘브랜딩’ 하고, 전시하는 일에 번아웃을 느끼게 되는 것 말이다.
다음 편은 좀 더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SNS와 번아웃에 대해서 빼놓을 수 없기에. 그리고 여행은 결국 일과 일 사이에 있기에. 밀레니얼 시대의 번아웃이 왜 여행마저 감흥 없게 만드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한병철의 <투명사회>를 다시 읽었더니 “디지털 시대는 한가로움의 시대가 아니라 성과의 시대다”, “휴식도 일의 시간 속에 있는 하나의 국면”이라는 말이 꼭 밀레니얼 시대의 번아웃과 결이 같더라고요. 보드리야르의 책까지 다시 읽고 잘 정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