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들어가도 푹 못 자요. 자꾸 일어나서 이불 한 번씩 덮어주고 오게 돼요.”
큰아이 6개월 무렵, 코바늘 뜨개 모임의 학부형이 내게 말했다. 그때에는 설마 그럴까 했는데, 초4, 초1을 자녀로 둔 학부형이 되고 나니 과연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그땐 푸욱 잘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얹혀 생긴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은 아직까지 모두 한 침대서 잔다. 첫째, 둘째는 자신들 방에 각자 침대가 있어 슬금슬금 잠자리 독립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다 함께 자는 날이 더 많다. 잘 때엔 삼 남매 모두 엄마 옆에 자겠다며 투닥거린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셋 중 하나도 제 편 못 만들었냐고 면박 아닌 면박도 줬었는데 요즘 막내가 부쩍 커서 아빠 옆에서 자겠다고 먼저 나설 때도 많아졌다. 조그만 게 그래도 남자끼리는 뭐가 통하나부다 생각하니 우습다.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 먼저 잠들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두 개뿐인 내 옆구리 때문에 투닥거리다 속상히 잠드는 밤들이 많다. 신속한 취침을 위해 아직 설득이 불가능한 셋째는 예외로 두고 첫째, 둘째가 번갈아가며 옆에 눕는 그런 규칙도 세웠더랬다. 그렇게 규칙을 세워도 엄마 옆구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의 서러움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럴 때엔 내가 벌떡 일어나 아예 아이들 발치에 누워서 잘 때도 있다. “엄마는 누구의 옆에도 안 누울 거야. 엄마 혼자 잘 거야.” 토라진 표정하고 아이들이 눕고도 한참 남은 침대 아랫단에 몸을 가로로 누이면 아이들 저마다 발가락 하나라도 엄마 몸에 대고 자려고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온다. 내가 이렇게 귀한 몸이었나. 웃음이 난다.
혹여나 내가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잠들지 못할 때엔 하나 둘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고선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 이따가 꼭 내 옆에서 자야 해. 꼬옥.” 응, 그러마하고 그렇게 약속 세 개를 하고 나면 침대에 들어가서 첫째 둘째 사이에서 자다가 중간에 잠이 깰 때 이불 한 번씩 봐주고 자리를 옮겨 남편과 셋째 사이에서 자는 식으로 지킨다. 잠잘 때에도 스케줄이 있는 나는 우리 집에서만큼은 슈퍼스타 못지않다.
어렸을 적, 나는 악몽을 꿀 때면 내 방에서 자다가도 큰 방으로 가서 엄마 옆에 붙어서 잤다. “엄마 나 악몽 꿨어.”하고 엄마 품속으로 파고들면 엄마는 별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러면 그다음 잠부터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 잘 몰랐다. 잠자리에서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오랜 자취 생활이 그 사실을 알게 해 줬다.
고요한 밤, 모두가 사라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가족의 훈기는 혼자의 막연한 불안을 가라앉혀준다. 아이들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 나의 구석이라도 차지하려 한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새롭게 알게 됐다.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넘겨줘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타이틀의 무게는 무겁고도 감사해서 나의 삶을 허투루 살지 못하도록 한다. 힘든 일상에도 나를 다독이며 일어나게 만든다. 그래서 발가락 하나, 손가락 하나라도 꼭 잡아주고 옆구리에 붙여준다. 고것들이 얄밉게 살금살금 뻗쳐오는 이유를 알기에,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이리저리 들어오는 고사리 손발이 밉지가 않고 반갑다.
하루의 사건들에 치이고 피곤할 때에는 내가 먼저 찔러볼 때도 있다. 잠든 아이들 옆에 누워 볼을 가만히 눌러보고 손은 조물조물해본다. 고 말랑말랑함에 따뜻함에 가만히 마음이 채워진다. 내가 그러고 있으면 아이들은 모른 채 쿨쿨 자거나, 휙 돌아눕는데, 운이 좋으면 자면서도 실실 웃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 웃음소리를 킥킥하고 내는데, 무슨 꿈을 꾸는지, 꿈속에서도 그 소릴 다 듣는지 아이도 더 낄낄 웃어댄다. 어떨 때는 작고 통통한 팔을 뻗어 내 목을 더듬어 꼭 안아줄 때도 있다. 가까이 닿은 곤히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우리 집 냄새가 반갑게 난다. 나도 아이를 꼭 안아준다.
대학생 시절 외할머니랑 방에 가만히 둘이 누워있던 밤을 떠올려본다. 할머니는 엄마와 이모들, 외삼촌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스웠던 이야기, 걱정스러웠던 이야기, 힘드셨던 이야기. 그 시절 이런저런 이야기 다 하시고선 ‘그때가 참 좋았지.’하시고선 또다시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고 ‘그때가 참 좋았지.’ 하시고 또다시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던 그날 밤이 떠오른다. 몇 년 후 외할머니는 급작스레 돌아가셨고 나 역시 급작스레 엄마가 되었다. 그날 밤 그 이야기들은 그 시절은 아마 외할머니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소중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엄마가 되고 나서 짐작해보았다.
종종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아이들이 수풀 속으로 햇빛을 맞으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뛰어갈 때, 정수리 따끈따끈 열 오른 줄도 모르고 개울가에서 무섭도록 집중해서 놀고 있을 때. 그 뒷모습을 보며, 어두운 밤 잠자리에 누워 이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 입술이 쪼글쪼글해진 백발의 나를 상상한다. 언젠가는 내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세 아이들의 투닥거림이, 나를 불편하게 쿡쿡 찌르는 고사리 같은 손발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얼른 달려가 땀에 젖은 아이들을 와락 한 번 더 안아준다. 아이들이 “엄마, 왜 그래?”하면 “그냥, 네가 너무 좋아서. 예뻐서.”하고 대답해준다. 그럼 아이들도 씩 웃으며 나를 꼭 안아준다.
곧 아이들이 크면 엄마 옆에 안 눕겠다 하는 날도 오겠지. 엄마랑 와락 안고 하는 볼 뽀뽀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성가시던 와글와글함이 이내 허전함으로 바뀌기도 하겠지. 쪼글쪼글 해진 입술로 통통하지 않은 아이들의 볼에도 입 맞출 수 있기를, 그때에도 기쁜 마음으로 서로 꼭 껴안을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나의 숙면에 대한 권리를 잠시 내려놓는다.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엄마들은 잠자리를 자꾸 설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