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K May 24. 2021

육아의 기쁨과 슬픔

저녁밥을 짓고 있는데 자꾸 셋째가 쪼르르 달려와 말을 붙인다. 이런 경우는 잘 없다. 대개는 누나들이랑 노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큰누나는 책 읽느라 평소에도 바쁘니 작은누나가 안 놀아주는 거다.  뭘 하고 있어 그럴까? 종이가 필요하다길래 그림을 그리나보다 했다. 나무젓가락을 달라기에 건네주며 동생이랑 같이 좀 놀아달라 했다. 


다들 재우고 다시 거실로 나와 책상 위를 정리하며 발견한 둘째의 흔적들. 둘째는 엄마가 저녁밥 짓는 동안 혼자서 한글 공부도 하고, 생각나는 것도 이것저것 그리다가 동생과 놀아달라는 말에 동생 손바닥도 그려주고 이름도 써주고 막대도 붙여 같이 놀았다.  


아이들의 일과는 어떻게 이리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흔적에서 잘 읽히는 걸까? 귀엽다. 그리고 참 고맙다. 애써 공 부하라 하지 않아도, 동생 좀 챙기라 하지 않아도 혼자 끼적이고 알아서 껴주는 그 예쁜 마음이.  


그래서 등굣길에 참지 못하고 귀에 몰래 속삭여줬다. "우리 딸 정말 천사님 같아." 그럼 둘째가 눈썹 한껏 올리고 씩 웃으며 거드름을 피운다. 그럴 때 참 엄마로서 짜릿하다. 


아이를 왜 낳아야 하냐고 물으면 참, 막상 할 말이 없다. 나 역시 내가 아이를 셋이나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산부인과 검사 때, 이렇게 젊고 건강한 엄마는 셋은 낳아야 한다던 원장 선생님의 말을 듣고 기뻐하던 남편에게 소리 없는 레이저를 쏘았던 나다. 결국 원장 선생님의 말은 실현되고 말았다. 


첫째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는, 걱정된 마음에 한밤중 몇 번이나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일어나 불안한 마음을 눈물로 풀어냈었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내가 아이를 낳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그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깊은 밤 중 일어나 아무도 없는 공원을 함께 걸어주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많은 공원과 시간을 함께 걸었지만, 지금도 내가 좋은 엄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다만, 엄마의 일상에는 이런 짜릿한 순간들이 적으면 하루 걸러 하루는 있고, 많게는 하루에도 십 수 번씩 있다. 그 순간들에는 나를 향한, 또 내가 주고 있는 순수한 믿음과 사랑들이 잔잔히 서려있다. 고 작은 몸에서 아무 조건 없이 쏟아지는 무한대의 믿음과 사랑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내 삶은 유래 없이 충만해진다. 그런 생각들은 꼭 한밤중 아이가 잠잘 때 떠올라 낮에 속 썩이고 말썽 피웠던 것들은 싸악 잊게 만들고서, 잠든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고 고마워,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하고 속삭이게 만든다.


예전에는 몰랐던 많은 이들의 속사정과 마음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다. 아이를 낳으면서 참 자연스럽게 마음을 더 열게 되어왔다. 배를 보고 무작정 말을 걸어오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무척 낯설고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안다. 비록 육아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나 같은 동지로서의 반가운 마음과 돕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대화라는 것을. 훤히 보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20대의 애쓴 도도함처럼, 배 모양만 봐도 아들인지 딸인지 확실히 안다며 말을 걸어오시는 할머니들의 오답도 미워할 수가 없다.


지금은 나도 말을 거는 아주머니가 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탄 임신부에게 서성일 틈을 주지 않고 양보를 하고, 혼자서 갓난아이를 보느라 땀 뻘뻘 흘리고 있는 새내기 엄마를 보면 은근슬쩍 다가가 도와줘도 괜찮을지 묻는다. 나 역시 'ㅇㅇ개월이에요?'라고 질문할 수 있는 레벨의 엄마가 된 것이다. 알게 모르게 쌓인 타인과의 대화는 묘하게 세상에 대한 신뢰를 쌓게 해서 엄마가 아닌 이들에게도 말 붙일 용기를 자아낸다. 그렇게 첫 출산으로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을 뒤돌아보니 나의 빽빽하던 가시들은 어느새 듬성듬성 해져있다. 돌아보니 아웅다웅하며 살았지만, 나도 아이들도 물론 남편도 새로운 가족에 맞춰 자신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모두의 노력한 마음에 꽃목걸이를 둘러주고 싶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심신이 고되고 예산도 만만치 않아 힘들다. 경험자로서 정말 힘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과 신, 어느 쪽이 더 고된가 하고 물으면 아마 마음 쪽일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 자괴감이 들 때도 많다.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스스로 톺아보고 반성해야 하는 뼈아픈 시간들도 많다. 그래서 타인에게 권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왜 낳느냐고 하면 낳으면 뭐가 좋냐고 하면 이 글을 쓴 기억으로 답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