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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K May 24. 2021

안녕, 소파

시간을 머금은 사물들에게 전하는 편지

어젯밤 소파를 버렸다. 소파가 있던 자리에 거실 구석에 있던 테이블을 가져다 놓았다. 앞으로는 이 테이블은 우리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공간도.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가구 하나 없이 휑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간 강의를 하면서 조금씩 아껴둔 돈으로 하나씩 하나씩 가구를 들였다. 침대에서 잠들 수 있고, 소파를 놓을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소파가 놓일 벽에는 예전부터 칠해보고 싶었던 칠판 색 페인트를 칠했다. 그리고 무슨 색이 어울릴까 한참 고민하다 밝은 갈색 소파를 들였다. 우리를 바닥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준 소파가 들어오던 날도 기억난다. 아저씨 두 분이서 소파를 열심히 조립해 주시던 모습. 그것도 참 감사했다.


우리 가족의 세 번째 집에는 소파 놓을 자리가 없어 신혼으로 장만했던 소파를 버려야 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소파였기에 꾸역꾸역 가지고 있다가 한참 뒤에 버렸다. 슬펐다. 그러곤 네 번째 집에 와서 한풀이하듯이 가장 먼저 소파를 샀다. 소파가 들어오고 나는 정말 행복했다. 소파 위에는 좋아하는 거울을 걸고, 소파와 어울리는 스탠드도 놓았다. 그렇게 소파는 우리 가족의 포토존, 영화관, 아이들을 재운 뒤의 데이트 장소, 침대 위 굴러다니는 삼 남매의 발길에 손길에 치여 잠을 설친 남편의 침대가 되어주었다.


이사 온 지 반년 후, 운영하던 작은도서관을 정리하고 도서관에 있던 책장 대부분을 집으로 가져왔다. 거실의 TV는 안방으로 옮겨지고 대신 책장 두 개가 놓였다. TV가 사라지니 소파의 역할도 바뀌었다. 아이들의 트램펄린, 빨래가 산을 쌓는 곳, 막내가 예술 정신을 발휘하는 곳으로. 소파 등받이는 아이들이 열심히 뛰어다닌 덕에 가죽을 열고 속을 내보였고, 스툴은 막내의 섬세한 손길로 알록달록 구멍이 송송 난 자태를 선보이게 되었다. 어린이날, 할머니로부터 트램펄린이 도착하고, 나는 빨래 개기를 유예시켜줄 빨래 바구니를 구입하고, 막내가 책상에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게 되자 소파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어젯밤 비를 뚫고 소파를 밖에 내놓았다. 우리 집에서는 그 부피가 거대했는데, 분해되어 길거리에 강정마냥 쌓여있는 소파는 참 작더라. 주민센터에서 그랬다. 가구를 버리려면 이제 온라인으로 접수해야 한다고. 어디로 가야하더라. 검색을 해본다. 대형 폐기물 신고. 그래, 이젠 폐기물이지. 접수를 하고 나면 폐기물에 접수번호를 적어야 한다. 번호를 적으러 다시 나간다. 비를 맞으며 집에서 대충 집어온 보라색 매직으로 소파 옆구리에 일련번호를 적는데 그제서야 마음이 아파왔다. 방금까지 살을 맞대고 있었는데 아무리 이제 헤어지기로 한 사이라도 아, 이건 도의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우리 사이는 거실과 도로가만큼 멀어졌는데. 


멀어지려고 마음먹으면 멀어질 핑곗거리가 수도 없이 늘어진다. 다리가 너무 낮아서 아래를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둥, 부피에 비해서 앉을 수 있는 공간은 너무 좁다는 둥, 대신 새 가구를 들일 게 아니니 낭비는 아니잖아, 처음부터 소파 말고 책상을 놓고 싶었잖아 같은 합리화들. 이별에 별별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미련들을 털어낸다.


소파를 떠나보낸 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권이 생겼다. 좋아하는 거울 밑에는 6인용 테이블을 넉넉히 넣고 피아노 앞에 의자도 놓았다. 새벽같이 일어난 막내가 잠결에 거실로 나와 낯설은 공백에 살짝 당황하더니 늘 이렇게 해왔다는 듯 점토를 가지고 와 테이블에 앉는다. 뒤이어 일어난 아빠도 마주 보고 앉아 함께 놀이를 한다. 일직선으로 앉아 한 곳을 바라보던 공간에서 우리는 이제 마주 앉는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야깃거리들을 발굴해낼 것이다. 함께 시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아침부터 바깥에서 들려오는 육중한 기계 소리는 소파를 실어 가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안녕, 소파. 너를 보내고 나는 또다른 삶을 시작해. 어쩌면 네가 없어도 괜찮은 그런 삶. 여러 해 동안 우리에게 네 몸을 기꺼이 내어주어서, 소파가 놓인 집을 꿈꾸던 나의 마음을 채워줘서, 그동안 참 고마웠어. 안녕. 안녕, 우리의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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