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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무화과 창업 일기 34

동네 책방 '프로그램' 탐방 : 독서관(서울 마포구) & 남섬 작가님

by 도라

해는 거의 다 저물어 문 닫은 건물이며 도로는 짙은 파랑으로 물드는데, 골목 초입에 노란 등을 밝히고 있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독서관이었다. 채 10평도 안되어 보이는 좁은 공간이지만 꽤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벽을 따라 진열되어 있는 책장을 마주 보고서 서로에게는 등을 지고서 조용히 책을 들추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입구부터 책을 하나씩 들춰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모두들처럼 책장을 한 바퀴 빙 돌며 구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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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관은 100% 독립출판물로 이루어진 책방이다. 책마다 도서관 바코드가 붙어있는 책이 있는데, 대여가 가능한 책이다! 독서관의 회원이 되면 이 책들을 빌려볼 수 있다. 독립출판물로만 이루어져 있는 도서관, 아니 독서관인 것이다. 입고 기준 없이 입고를 신청한 모든 독립출판물을 위탁 판매한다. 누군가의 사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책장 위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독서관은 언제나 "아직, 쓰이지 않은 당신만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요즘 '현웃' 터지게 하는 책에 관심이 많아서 [드립의 정석]을 데려왔다. 자기 전에 애들한테 읽어줬다가(으른 농담이 많아 필터링이 필요하다) 같이 웃느라 잠을 못 잤을 정도로 재미난 책이다. 그 외에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나 [엉망진창인 채로 40대, 오히려 좋아]처럼 내 연령대에 공감이 되는 책들도 많아 반가웠다.


사실 독서관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섬 작가님의 [평범한 기적의 순간을 되짚어 미니북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작은도서관 프로그램만 방문해 본 터라 동네책방의 프로그램 진행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신청해 본 것이었다. 최근의 그림책에 대해선 면밀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남섬 작가님의 [말려드립니다] 그림책은 예전에 재밌게 읽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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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평범한 기적]이라는 책을 내셨고, 이번 프로그램은 그 책을 바탕으로 한 수업이었다. 최근에 나에게 일어난 평범한 기적의 순간들을 되짚어 보며 책을 한 권 만들어 내는 것이다. [평범한 기적]은 작가님을 닮은 책이다. 형광빛 카디건 차림의 작가님은 특유의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로 수업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늦은 밤 어른 여럿이 책방에 모여 자신에게 일어났던 작은 기적적인 일들을 떠올리며 모아 책을 만든다. 사실을 나열해보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홍대까지 나와서 늦은 시간까지 놀았던 그날 하루의 이야기로 한 권을 채워보았다. 아침 출근부터 독서관에 앉아 있던 순간까지 너무나도 정신없고 바쁜 하루였는데도, 쓰고 그리다 보니 특별한 하루가 된다. 마음의 태도, 시선의 태도는 그렇게나 중요하다.


독서관의 의미와 시스템도, 작가님의 에너지도 너무나 좋은 하루였다. 나는 어떤 에너지로 방문객들을 맞을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시간을 충분히 내어 쓰지 않으면 다 담지 못할 것 같아 아끼고 아끼다 보니 다녀온 지 한 달 가까이 지나버렸지만 그래도 괜히 힘 빠지는 날에 꺼내 적을 수 있는 빛나는 순간이 있어 다행이다.


두 달 가까이 기록해 가는 일기의 글들이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 주는 요즘이다. 완공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니 일단 다음 주부터는 고객 대기실 내에서라도 책 판매를 시작해야겠다. 일단! 말 질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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