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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무화과 오늘부터 1일. 운영일지 1

이것은 오픈인가 가오픈인가

by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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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드디어 책방 오픈을 했다. 고객 대기실 안에 있던 책장 하나와 급하게 당근해 온 전면 책장 하나를 접수대 앞으로 배치해 첫 주문한 책들을 진열했다! 아무튼 오픈은 했기에 더 이상 창업일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오늘부터 운영일기 1일 차로 적기로 한다. 정식 오픈인지 가오픈인지 갑작스러워 다들 헷갈릴 테지만 내가 제일 헷갈리고 있다. 일단 갑자기 문을 열게 된 스토리는 이렇다.


올해 초, 시아버님께서는 공업사 마당에 카페로 쓸 건물을 짓겠다고 선언하셨고 나는 그 건물의 첫 임차인으로 들어가 북카페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벚꽃이 만개하기도 전 완공하기로 계약한 건물이 차일피일 공사가 미뤄지더니 초가을까지 공사가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껍데기만 지어져 뻥 뚫린 채로 두계절이나 지나온 건물에서는 날이 풀리자 밤새 누군가 자고 가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난생처음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이라는 것을 보냈고, 세 번째 내용증명에는 이번에도 답이 없으면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써서 보냈다.


결국 시공사 사장님으로부터 일주일 만에 공사 마무리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받았고, 나는 급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책들을 주문했다. 그러나 책이 속속 도착하는 동안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주 금요일이 오고야 만 것이다. 대금을 받지 못해 잔뜩 화가 난 수도공사, 전기공사 등을 담당했던 하청업체 사장님들과 시공사 사장님이 공업사 마당에서 만났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언성을 높여 다투는 일까지 생겼다. 한바탕 소란이 마무리되고 드디어 시공사 사장님과 시아버님, 나, 그리고 수도공사 사장님 넷이서 마주 앉은자리에서 대금을 지불하였음에도 왜 이렇게 공사가 늦어지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동안 시아버님께서 모든 일을 해오셨기에 직접 대면한 것도, 질문을 건넨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러게요. 그것 참...'


말 못 할 사연이 가득 담긴 것 같은 말투였지만, 그 뒷사정을 지금에 와서 헤아려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렸기에 나는 준비해 둔 이행서약서를 내밀었고, 9월 말까지 일체의 공사를 끝낼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발생한 모든 손해를 배상할 것임을 약속하는 내용에 싸인과 지장을 요청해 받았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매일 밤 장르도 달리하며 아주 불쾌하고 기발한 악몽들이 이어졌다. 숨겨왔던 나의 창의력이 새삼 놀라웠다.(소스라치며 깨어난 나의 악몽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준 남편은 책으로 쓸 것을 권했다..) 이미 반년 가량을 어겨온 약속을 이제 와서 한번 더 한다고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쉽사리 생기지도 않았거니와, 많은 책을 주문하지도 진열하지도 못하는데 과연 이 큐레이션이 마땅한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 이렇게 얼렁뚱땅 시작해도 되겠는지, 이러다 영원히 건물은 지어지지 않고 영원히 의도치 않게 얼렁뚱땅 책방으로 남진 않을지 등등 온갖 걱정들 불안함들이 들소 떼처럼 몰려왔다.


그래서 다분히 다혈질인 인간으로서 일단 말부터 저질렀다. 일단 SNS에 월요일에 책이라도 꽂겠다 선언하고, 검사소 간판을 달아주셨던 사장님께 급하게 시트지 제작을 요청드렸다. 야심 차게 돌출간판까지 생각했지만, 간판 사장님과의 논의 끝에 새 건물 공사를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미리 준비해 뒀던 책장은 고객대기실에 두기에는 너무 커서 하루 종일 당근을 들여다보며 예산과 모양이 마땅한 책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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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일요일. 둘째와 셋째가 참가하는 대회가 있어 새벽부터 지방으로 출발했다가 저녁밥을 먹고 집에 들어온 시간 저녁 9시. 저녁밥 먹은 것도 단단히 체한 데다 주말 내내 쉬지 못해 기절할 듯한 상태로 기절한 듯이 앉아 있는 남편을 보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보 미안해. 나 공장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남편은 내 눈물에 놀랐다 픽 웃더니 같이 공장에 가주었다. 무거운 책장과 책들을 옮기고 재배치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조언과 금쪽같은 농담도 얹어주었다. 책 진열을 마치고 나니 체했던 것이 꾀병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피곤이 싹 가셨다. 나보다 더 피곤할 텐데도 남편은 나를 웃게 하려 노력해 줬다. 아이들은 엄마아빠 없이도 스스로 할 일을 척척척!!... 해두지는 않았지만!! 밤늦게 자리를 비운 우리를 이해해 주고 책 진열 사진을 보며 기쁨으로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집에 오니 한결 더 기운이 나서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밀린 설거지까지 끝냈다. 그러고도 피곤이 심하지 않아 [세이버앤페이버]에서 구입했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꺼내 읽었고, 그건 그날의 마무리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순식간에 한수희 작가의 다정한 글 그리고 서평화 작가의 평온한 그림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악몽을 꾸지 않고 달콤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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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월요일 아침, 기운차게 일어나 책 판매한다는 안내문을 작성하고 오픈했음을 SNS상에 갑작스레 공표하게 된 것이다! 지인들이 작은 책방을 보러 기꺼이 와주었고, 멀리서도 주문을 해주었고, 꼭 방문하겠노라는 감사한 말들도 전해주었다. 생각할수록 구멍 많은 얼렁뚱땅 오픈이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


좋은 건 언제나 늦게 온다.


한수희 작가의 말이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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