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하나 짓다
집에 들어갔다.
새해가 막 지나 쌀쌀한 날이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가는 길이었다. 이국적인 풍경이 예뻐 SNS용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 또한 인생 사진을 건지러 갔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때. 자주색 전동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대낮에 벌건 얼굴을 하시곤 노숙자나 진배없는 행색이었다.
“ 이봐..ㅇ..! 야 이.. 나 옮겨. 옮겨..! “
무례한 부름을 무시해봤지만 길에 사람이라곤 아저씨와 나와 친구 셋 뿐이었다. 얽혀든 일이라고 체념했다. 가까이 다가갔다. 귀를 바짝 대고 할아버지의 술취한 말을 가까스로 이해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앞이 집인데 그곳에 데려다 놓아라. 그 전에 오줌이 마려우니 날 부축해라. 두 가지를 부탁받았다. 그의 축 쳐진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켰다. 보풀이 잔뜩 일어난 회색 바지가 엉덩이 반쯤 내려와있었다.
“나.. 나 잠시.. 푸... 오주..움..!!”
당신 앞에 이십대 여자가 서있는 걸 아시긴 하시는지. 바지를 추슬러드릴 틈도 없이 오줌을 누셨다. 갈겼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리킨 집의 대문을 두들기자 깡마른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할머닌 버선 발로, 아니 양말 발로 나오셨다.
“이 영감이, 뭐하는 짓이래. (철썩) 하이고, 꼴사납다. (철썩, 퍽) 아가씨들 미안혀. 아이고 미쳤는갑네. 원래 이렇게는 안 허는디. 한 번 마셨다 하면 꼬락서니가 이래 사나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콧물을 보곤 쌀 포대자루 하나를 집어 드셨다. 그리고 얼굴을 아무렇게나 닦아내셨다. 거친 씨실과 날실이 할아버지 얼굴을 무자비하게 훑었다. 질질 끌다시피 할아버지를 빌라 입구로 모셨다. 입구에서 일 층 왼쪽 집까지 계단 여섯칸. 그 짧은 길에 삼십 분이 족히 걸렸다. 머리채도 잡히고 굴러간 신발도 주워왔다. 마음 속으로 수십 번은 후회했다. 모른 체 할 걸, 지나칠 걸.
마침내. 집에 들어갔다. 술에 절여진 몸뚱이를 침대까지 모셨다. 아, 끝났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할아버지의 콧물이 범벅된 손이 찝찝했다. 그러다 고개를 든 순간 잠시 모든 것이 멈춘듯 했다.
보랏빛 침대보 위에 할아버지가 누운 듯 앉아있었고, 머리 위엔 반듯한 직사각형 액자가 있었다. 액자 속엔 40~50대는 되어보이는 총명한 눈매에 건강한 구릿빛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다시, 그 밑엔 손발도 가누지 못하는 초라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피어나서 지는 한 인간의 일생 전체를 찰나에 마주했고,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아이고, 내가 속이 다 녹아들어가. 여기.. 여기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다 녹아서 없어.”
할머니의 한탄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정말 그 안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비쩍 마른 가슴이었다. 몸 꼭 챙기시라고, 건강하시라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말밖에 드릴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줄 것이 없다며 따듯한 물 한 잔을 주셨다. 그 공간, 그 시간, 그 모습들을 한 잔에 삼켜마셨다.
계획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배다리 마을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친구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기대했던대로 마을은 예뻤다. 우리는 정직한 사진을 찍었다. 습관처럼 꺼냈던 어리고 예쁘게 보정해주는 프로그램은 켜지 않았다. 찰칵. 사진 속에 담긴 그대로도 예뻐 눈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