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밥

글을 둘 짓다

by 프로기

식사가 끝났다. 잔반이 꽤 담긴 식판을 가져 나온다. 역시 맛없기로 소문난 밥답다. ‘병원밥’. 병원밥은 맛이 지지리도 없다. 환자도 보호자도 그리고 방문객마저 만족하지 못한다. 식판을 카트에 올려놓으며 본다. 잔반이 없는 식판이 없다.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은 것들도 있다.


병원밥에는 5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있다. 오늘의 반찬으로는 몸에 좋은 생선인 조기 구이, 단백질이 들어있는 소고기 뭇국, 뽀빠이의 원천 시금치, 한국인의 김치, 삼삼한 애호박무침이 나왔다. 그리고 흑미가 듬성해 보이는 흑미밥이 차려졌다. 이렇게만 매일 제시간에 챙겨먹으면 무병 장수할 것만 같다.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밥상이다. 그 건강한 밥상들은 환자들에게로 간다.


침대에 앉아계신 우리 외할머니 앞에 밥상을 차린다. 할머닌 의무감으로 뚜껑을 열어젖힌다. 옆 침대, 건너편 침대의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이거야. 아우 짜. 아이고 텁텁해. 안 먹으련다. 치워라. 냉정한 평가들이 이어진다. 영양소를 고루 갖춘 식단표가 무안해진다. 밥은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에너지지만 온전치 못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병원밥은 생기를 불어넣어주지 못한다.


글쎄. 할머니가 댁에서 차려주시는 밥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혀가 둔해지셔서인지 매년 짠맛을 더해가는 소고기 뭇국. 고기 기름을 쫙 뺀 나물로 가득한 찬들. 할머니 밥상이랑 똑같네, 많이 드세요.라고 한 수 거들고 싶지만 가만히 있는다. 대신에, 할머니 얼른 퇴원해서 집 가서 맛있는 밥 드셔야죠.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어쨌든 오늘도 병원밥은 시원찮다. 저마다 맛있게 해보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병원밥을 살려보려고 여기저기 비닐봉지가 열리고, 냉장고 문이 바빠진다. 저마다 당신들의 반찬을 찾는다. 할머니 밥상에는 삶은 양배추와 사돈 친척이 담가 보낸 된장이 올라왔다. 밥상에 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들의 취향, 입맛, 조금 부풀리면 삶의 일부가 각기 다른 밥상을 만든다. 그제야 병원밥은 그나마 밥다워진다.


나 역시 병원밥의 밥맛을 돋우는 조미료가 되었다. ‘사람’이라는 조미료만큼 병상의 밥맛을 돋우는 것이 없나 보다. 오늘 우리 할머닌 큰 딸, 큰 사위, 셋째 딸 손녀와 앉아있는데 병실 내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신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 할머니 기세가 등등하시다. 혼자 앉아 식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말도 괜히 더 거시고, 반찬도 좀 나누시고, 과일도 잘라 나눠주신다. 할머니의 밥맛이 그나마 좋다.


그럼에도 병원밥을 다 먹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반 정도 드셨을까, 남기신다. 생기 없는 병원밥을 밥답게 하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이 정도면 많이 드셨다. 잔반이 담긴 식판을 상에서 치운다. 카트에 차곡차곡 잔반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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