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테이션 2010년 8월 정리분

쿼테이션

2010.8.9.정리분

백년동안의 고독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여전히 졸리워하는 그녀를 안고 왔다. 그들이 레메디오스에게 정말로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칭얼거리며 잠을 자고 싶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며 옛생각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죽어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솟아올랐으며,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가장 미워하던 원수에 대해서조차 애정을 갖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오늘이 어제처럼 월요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하늘을 좀 보렴. 저 벽이나 베고니아를 좀 봐. 오늘은 역시 월요일이기도 한 거야.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오직 하나, 바로 폭력이다.”


그러나 그는 나약하고 수줍음이 많은데다 마음씨가 선해 정치보다는 전쟁이 더 적합한 인물이었다.


페르난다는 자기가 너무 노쇠하여 인생의 황금기에서 멀리 떠나왔음을 깨닫고는, 지난 삶 중에 가장 힘들고 불행했던 시절조차 그리움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했다. 바람따라 향기가 퍼지던 복도의 난초며 해질녘의 장미 향기와 많은 타인들의 짐승 같은 행동조차 그리운 추억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고독한 사랑과 사랑의 고독에 잠겨, 불개미들이 들끓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집에 갇혀 있으면서도 어쨌거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어!


고독한 두 연인들은 환멸과 망각의 사막으로 굴러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아서밀러-불도그

피아노를 연주하며 소년은 자신 안에 무엇인가 매여 있던 것이 풀렸거나 통째로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년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비어 있거나 투명하지 않았고, 실제로 누군가에게 말한 것도 있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것도 있는 비밀과 거짓말로 묵직해져 있었다.


존 업다이크-죽음을 향한 여정

깨진 흑판에는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시에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적혀 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충고를 해 줄 수 없다. 태초부터 영원한 것은 없다. 죽음의 시간은 숨어 있다. 삶의 시간은 명료하다.”


마틴은 그 화가네 꼭대기 층 아파트와 그 시끄러운 무리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며 알린이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떠올리며 심술궂은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는 거야?


“그렇지만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마틴, 여자는 거미 같아. 다 거미줄을 치지. 거미줄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싶어해.”


산 사람이 죽어 가는 사람보다 바쁘잖아.

많은 가련한 유령들이 비인간적인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포위했다.


수잔 손탁-편지 장면들

당신은 전날 경찰관이 발급한 속도위반 딱지를 낚아채 찢어 버린 죄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명랑하게 늘어놓으며 자리에 앉아 레몬 셔벗을 주문했지요. 그런 당신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면 인생을 헛되이 사는 거라고. 그렇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어요. 그 대신 편지를 씁니다. 가장 우유부단한 방법.


내 편지들은 일기장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인생을 예금하는 셈이다.


때때로 편지는 누군가와 거리를 두기 위한 방법이 된다. 편지를 보내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 살이 닿지 않아도 된다. 내 혀가 당신의 살갗에 닿지 않아도 된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마르케스

그런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다만 내가 평생 동안 읽어온 수많은 것들로부터 세상에 빛이 될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열네 살이에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대도 상관없소, 라고 농담을 했다. 댁이 곤란해질 거라는 뜻이 아녜요. 누가 나 대신 삼 년을 감옥에서 썩을 거냐는 거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내 얼굴은 뜨거운 돌풍을 쐰 듯이 시뻘게졌다. 이런 빌어먹을, 얼굴이 마음을 폭로하며 배신을 하다니!


기나긴 생애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빌어먹을 황당한 말을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제때 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대답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소나기는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집 안에 홀로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이 잊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일들이 마치 일어났던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


나의 강박관념은 질서 정연한 정신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내가 근본적으로 무질서하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또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도 미덕이 아니라 게으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야박한 심성을 숨기기 위해 인자한 척하고, 그릇된 판단을 숨기기 위해 신중한 척하고, 쌓인 분노가 폭발할까 봐 화해를 청하며, 타인의 시간에는 무관심하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시간을 엄수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당신은 아직 쓸 만하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요.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하다오, 하고 말했다.


사랑과 다른 악마들-마르케스

델라우라는 시에르바 마리아에게 격정적인 목소리로 가르실라소의 시를 읊어 주었다.

“그대 때문에 태어났고, 그대 때문에 살아가고, 그대 때문에 죽을 것이며, 그대 때문에 죽어 가노라.”


사랑의 단상-롤랑 바르트

사랑의 정념은 정신착란이다. 그러나 정신착란은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착란에 대해 말하며, 그리하여 이제 길들여졌다. 불가사의한 것은 오히려 정신착란의 상실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들어갈 것인가.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은 자주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자신의 손을 쳐다본다고 한다. 물건 자체는 쳐다보지 않은 채.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나는 두 종류의 밤을, 하나는 좋은 것이고 하나는 나쁜 그런 밤을 차례로 체험한다. 232p


문학에 의해 진부해진, 저 슬기롭고도 관례적인, 신중하고도 길들여진 그런 정신착락에 나는 만족한다.


나는 결코 내가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욕망하는 것을 환각한다. 하지만 정신착란이란 거기서 깨어날 때야만 존재하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회고적이다. 나는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실은 사랑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때 하늘은 얼마나 푸르렀던가”

만남은 찬연히 빛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랑하는 사람은 추억 속에서 사랑의 행로의 세 순간을 단 하나의 순간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만 “사랑의 눈부신 터널”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_마르케스

어느 기분 좋은 밤, 다 쓴 편지 이로 잉크병이 엎질러지자 그녀는 편지를 찢어 버리는 대신 다음과 같은 추신을 썼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의 증표로 내 눈물을 보냅니다.” 이따금 울다 지친 그녀는 자신의 광기를 조롱하기도 했다.


“제게 편견 하나를 주소서. 그러면 제가 세상을 움직이리다.”





Quotations: Francoise Sagan’s

2009년 2월 정리분

슬픔이여 안녕

그 나른함과 감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미지의 감정을 슬픔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인지 나는 망설인다.

아버지와 나는 떠난다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으므로 무슨 일이든 이의를 내세울 겨를도 없었다.

나는 모래위에 뒹굴기도 하고 또 모래를 손에 움켜쥐고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황색의 한가닥 실처럼 그것을 뿌려보았다. 나는 그것이 시간의 흐름처럼 흘러 지나가 버린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안이한 느낌이었다. 안이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유쾌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여름인데 어때…

하늘엔 별이 은가루를 끼얹은 듯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나의 귀여운 공범자.

나는 사랑의 갖가지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 몇 번인가의 데이트, 키스, 그리고 권태따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안느의 도착과 더불어 완전한 휴식이란 것이 불가능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안느는 매사를 명확하게 만들고 언어 속에 아버지나 나라면 일부러 모른 체하는 그런 뜻을 부여하는 여인이었다.

그 눈은 나의 말이 가져다 준 몇갠가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가씨가 말하는 <지성의 틀>이란 요컨대 지성의 연령을 가리키는 것일거야." 그녀의 간결하면서도 단정적인 표현이 나를 매혹시켰다. 어떤 표현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감탄케하고 어떤 이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느끼게 했었다. 이 우회적인 표현은 나에게 조그만 노트와 연필을 갖고 싶은 심정을 일으켰다.

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가 내 성격의 오직 하나의 일관된 면을 나타내주고 있다.

"정말 매혹적인 광경이야. 태양에 그을은 두 아가씨가 버터빵을 의논하고 있으니."

"아가씨는 한 사람밖에 없어요. 유감스럽게도."

시릴르의 입이 내 입을 찾았을 때, 나는 시릴르와 마찬가지로 쾌락에 떨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키스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다만 깊은 쾌락의 추적이 이따금 속삭임에 끊기었다. 나는 그에게서 빠져나와 기슭에서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해 헤엄쳤다. 나는 얼굴빛을 고치고 열을 식히려고 얼굴을 물속에 틀어박았다. 물은 녹색이었다. 나는 행복과 완전한 안도감에 자신이 덮여가는 것을 느꼈다.

엘자는 가엾게도 비참한 상태로 온 몸뚱이를 기름으로 뒤범벅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엘자에게 싫증을 느끼기에는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

나는 바다 밑에서 보라색과 장미색의 예쁜 조개껍데기를 발견했다. 나는 그것들을 갖기 위해서 물속을 기어다녔으며 점심식사때까지 우아하게 닳아빠진 조개껍데기를 손 안에 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행복의 마스코트로, 여름내 이것을 놏치지 않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어째서 이 조개껍데기를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무엇이든지 잃어버리고 마는 내가 말이다. 오늘, 이 조개껍데기는 도화색으로 따뜻하게 내 손 안에 남아 있어서 나를 울게한다.

아버지는 그러한 심술궂은 조롱엔 곧 싫증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안느를 딸의 두번째 어머니가 될 대단히 존경할만한 부인으로서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모두 그랬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얼굴이며 행동, 키스했을때의 갑작스러운 감동… 아무 관련이 없는 활짝 핀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은 다만 이런 것 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예요. 그것은 어떤 사람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는 것"

하긴 나는 한달 후에는 같은 일에 다른 의견을 갖기 쉽고 나의 신념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둘 다 꾸물대고 우리를 기다리게 하니까, 늙은 류마티스 환자인 아빠와 함께 춤이나 추자."

"나에게 부기우기를 가르쳐 주려무나."

"아버지는 햇볕에 약한 붉은 머리의 여자를 바다로 데리고 와서 허물이 전부 벗겨지면 버리는 거죠? 너무해요. 너무해요." "나는요. 나는 엘자에게 아버지는 함께 자는 다른 여자를 만났으니 이 다음에 다시 와주세요 하고 말하겠어요. 알겠어요?"

그런 상세한 설명이 진실을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나 자신은 여져졌지만 엘자는 조용히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날씨라든가 모드 이외에는 결코 얘기한 적이 없었지만 오랜 친구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별안간 홱 돌아서서 자동차 있는 데로 뛰어갔다.

나는 안느를 뚫어져라 쳐다본 다음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그의 누짓을 기대했다. 나를 화나게 하는 동시에 안심시키는 그 신호를. 아버지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디었다.

나의 귀여운 작은 고양이. 이쪽으로 오렴 작은 고양이.

나도 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안느를 약간 겁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필요없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때문에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웃음과 그 우람함, 신뢰감을 느끼게 하는 늠름한 팔뚝과 그 생활력과 그 열정 때문에. 마혼 살, 고독에의 두려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관능의 실습…

사랑이 빚어낸 일종의 완만함과 행복한 듯 싶은 방종한 동작을. 그리고 나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키스는 지치고만다.

나는 아직껏 허덕이듯 숨결을 몰아쉬는, 그러면서도 농도가 옅은 키스를, 모래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일치된 내 심장에 겹친 시릴르의 고동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하나, 둘, 셋 심장의 고동과 다정한 모래의 파도소리. 하나, 둘, 셋. 하나 그는 숨결을 다시 가누고 그 입맞춤은 정확해지며 친밀해졌다. 나는 벌써 바다의 술렁거림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귀 안에 소용돌이치는 피가 거칠게 고동치는 울림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세실, 이런 따위의 장난이 대개는 병원에서 끝난다는 걸 알아야해요."

그녀는 우뚝 선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으므로 나는 몹시 어색했다. 그녀는 꼿꼿이 서서 꼼짝않고 지껄일 수 있는 여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나에겐 소파라든가 무심코 잡을 물건이라든가 담배, 또 다리를 흔들흔들하거나 흔들거리고 있는 다리를 쳐다보거나 할 필요가 있었다.

"시릴르와 키스했을 뿐이예요. 그것이 병원신세까지는 지지않겠죠?"

"세실은 <숲속의 처녀> 역을 <착한 학생> 역으로 바꾸는 거예요. 겨우 한달동안. 그게 어렵지 않겠죠?"

나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행복을 위해서, 친절을 위해서, 평안을 위해서 태어났는데, 나는 그녀 덕분으로 비난과 양심의 가책세계로 들어간다. 도대체가 내성적인 것 따위와는 관계가 먼 나는 어리둥절하며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청춘이 누리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명랑함과 대화라고 아는데…"

그들 앞에는 사랑의 어둠이 있고, 나에게는 베르그송이 있다. 나는 울려고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왜냐하면 이미 안느야말로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녀를 이겨낼 자신이 있는 것처럼.

"안느, 이 오줌싸개를 좀 봐요. 아주 빼빼 말랐어. 만일 공부탓이라면 그만두라고 해야겠는걸."

아버지는 멀리 가버렸다. 아버지는 이러한 따위의 말대꾸가 몹시 싫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내 손을 쥔채 그대로 꼭 잡고 있었다. 그 손은 나의 최초의 실연을 위로해주고 또한 조용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순간에 내 손을 잡아 주던 손이다. 그리고 함께 음모한 장난과 떠들썩한 웃음속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손이다. 자동차의 핸들 위에서 밤에 장난치며 열쇠구멍을 찾던 내 손위에 겹쳐졌던 이 손, 여인의 어깨 위와 담배상자 위에서의 이 손, 이 손을 이미 나는 어찌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엘자, 아버지를 지켜주어야만 해요. 아버지는 커다란 어린애에 불과해요. 커다란 어린애."

"뻔뻔스런 암여우 같으니."

그녀는 내 머리카락과 목덜미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나는 꼼짝도 안했다. 나는 밀려가는 파도에 내 발밑의 모래가 쓸려 나갈때와 같은 느낌을 맛보았다. 다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덮어씌웠다. 어떠한 감정도, 노여움도, 또 욕망도 이처럼 세게 나를 잡아끈 적은 없었다. 연극을 집어치우고 내 일생을 죽을 때까지 안느의 손아귀에 맡기자. 나는 지금까지 뿌리채 뽑힌 듯한, 이처럼 여린 나약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안느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말했던가? 나는 안느의 친절함이 그 세련된 지성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혹은 단순한 무관심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적당한 언어와 몸짓을 지니고 있었다.

"무슨 장난을 하고 있는 거지?" "요가예요. 하지만 이것은 장난이 아니예요. 인도의 철학인걸요."

위험한 일이기에 나는 시릴르에게 바래다주지 말기를 부탁했다. 나는 나의 얼굴에서…눈자위의 그림자나 입 언저리의 떨림 속에서 명쾌한 쾌락의 자취를 들키지 않을까 겁났던 것이다. 이따금 시릴르의 육체의 추억이, 어떤 순간순간에 대한 추억이 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안느의 두 손이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나는 겁먹은 내 눈초리를 안느가 보지 못하도록 눈을 꽉 감았다. 나는 피로의, 걷잡을 수 없는 꾸밀줄 모르는 쾌락의 눈물이 뻗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안느는 모든 질문을 체념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침착하게 두손으로 가볍게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나를 놓았다. 그런 다음 담배에 불을 붙여서 내 입에 물리더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따.

나는 그런 행동에 상징적인 의미를 불어놓어 주었다. 나는 그런 행동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성냥을 잘못 켜대면 나는 이 이상한 순간을 다시 추억하게 된다. 나의 행동과 나와의 사이의 이 간격을, 안느의 시선의 중압가믈, 그리고 주위의 공허를, 그 공허함의 강박감을.

"나는 안느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안느의 생활은 우리들의 생활보다 훨씬 훌륭해요. 훨씬. 훨씬 깊고 고상한 맛을 알고 있어요. 앞으로 한달이나 두달 후면 우리는 안느의 생각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릴거예요. 우리들 사이엔 이제 어리석은 말다툼도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다만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겠죠."

내 육체는 시릴르를 반기고 싱싱하게 깨어나고 그의 육체를 향해서 꽃피고 열렸다. 나는 정열적으로 키스했다. 시릴르를 아프게 하려고 생각하고, 자국을 내어 밤새도록 한시도 나를 잊지 않도록 하면서 밤엔 내 꿈을 꾸도록 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시릴르가 없는, 나를 마주보는 그가 없는, 그 능란함이 없는, 그리고 그 급격한 사나움과 오랜 애무가 없는 밤은 견딜 수 없이 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 가져다 준 육체적이며 현실적인 쾌락 이외에도 그것을 사랑하는 일종의 지적인 쾌락을 경험했다. <관계를 한다>라는 단어는 그 자체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미와 분리되어 매우 동사적인 것이다.

시릴르는 나에게 어린애가 생길까봐 겁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문제는 시릴르에게 맡기겠다고 말했고, 그도 그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그에게 몸을 내맡기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책임이 있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며, 만일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만이 나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지 못하는 책임을 시릴르가 홀로 갖게 되어 있었다.

파리에는 시릴르가 있을 것이고, 안느는 그곳에서까지 내가 시릴르를 사랑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므로 내가 시릴르와 만나는 것을 어쩌지 못하리라. 시릴르는 파리의 어머니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방을 하나 갖고 있었다.

나는 벌써 보랏빛과 장미빛의 하늘, 파리의 이상한 하늘을 향해서 열린 창문을, 창문 손잡이 위의 비둘기 목소리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좁은 침대 위에 시릴르와 나를…

"여보게. 안느와 나는 10월 5일에 결혼한다네." "그거 굉장한 아이디어군. 마담, 당신이 이 따위 불량자의 시중을 드신다니, 부인은 참으로 숭고하시군요. "

"누구지? 저 여드름투성이의 애송이는?"

그러나 나는 조금 취해 있었다. 안느의 향수,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닷바람, 우리들이 사랑했을 때의 시릴르가 내어 준 내 어깨 위의 작은 상처… 나에겐 행복을 느끼고 잠자코 있을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햇살은 부드럽고 따듯해서 살갗 속까지 스미어 뼈를 펴주는 것 같았고, 나를 따듯하게 해주기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꼼짝 않고 이렇게 오전을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장래의 일 같은 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죠? 그렇죠? 그것이 바로 청춘의 특권이예요."

"넌 자신에게 싫증을 내고 있는 거냐?"

아버지는 어떠한 것에도 위안을 받았기 때문에 그처럼 자신을 위로하리라고 나도 알고는 있었다. 아버지로선 정돈된 생활을 보내느니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와 헤어지는 것이 참기 쉬웠으리라. 아버지는 나 자신이 그런 것처럼 오직 습관이나 정해진 것에 의해서 정말로 상처를 입고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나는 이것을 때로는 아름다운 유목민이라 여겼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순수하고 비참한 빈털터리의 향락자들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 사랑하는 그대여. 하루만 봐줘요. 그 계집애한테 가서 내가 늙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겠소. 평온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그 육체의 피로를 맛보아야 한단 말이오."

그것들은 모두가 많은 이중인격과 침묵이 요구되었지만, 노력과 거짓말은 아주 조금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나는 이 기간에 대해선 빨리 지나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분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찍어누르게 하는 추억 속에 다시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해 여름, 운명은 엘자의 얼굴을 선택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매우 아름다운 얼굴, 아니 오히려 이끌리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또한 황홀한 웃음을 갖고 있었다. 두뇌가 조금 나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상대방에게 통하는 완전한 웃음을… 이 웃음의 효과를 나보다 아버지가 먼저 찾아냈다.

시릴르는 아무 말 않고 나를 포옹하여 데리고 갔다. 그의 곁에선 무슨 일이든지 쉽사리 변해갔다. 격렬함과 쾌락에 넘치면서…

나는 아무런 고통이 없이 그리고 일종의 쾌적한 체념과 함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안느의 상의, 안느의 꽃, 안느의 방, 안느의 향기가 있었다. 아버지가 덧문을 닫았다. 냉장고 속에서 술병을 하나 꺼내고 컵을 두 개 내놓았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가능한 유일한 치료약이었다. 우리들의 사죄의 편지가 아직도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 어리석고도 무서운 사건을 한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나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에게도 아버지밖에 없어요. 우리들은 두 사람뿐이라 불행한 거예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처음으로 옳았다. 이 눈물은 매우 유쾌한 눈물이었다. 내가 병원의, 베니스의 석판화 앞에서 느꼈던 견딜 수 없었던 공허함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것이었다.

"생각나지! 바로 그날 말이야." 우리들은 조심스럽게 눈길을 피하면서 얘기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든가 두 사람 중의 어느 편인가가 감정을 폭발시켜서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겁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로의 주의와 다정함은 끝내 보람이 있었다. 얼마쯤 지나, 우리들은 보통 어조로 안느에 대해서 얘기할 수가 있게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있으면 같이 웃고, 서로의 사랑의 모험을 이야기했다.

다만 내가 침대 속에 있을 때, 자동차 소리만이 울리는 파리의 새벽녘이면, 나의 기억이 이따금 나를 배신한다. 여름이 다시 다가온다. 그 추억과 더불어.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되풀이해본다. 그러자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솟아나고, 나는 눈을 감은 채 그것을 그 이름으로 맞아들인다. 슬픔이여 안녕!


------------

라 샤마드

바람이 결심이나 한듯이 갑작스레 침실로 들어왔다.

새벽녘의 시골… 테라스 위의 플라타너스 네 그루, 하얀 하늘에 또렷하게 떠오르는 그 나무 잎새들, 개발에 밟히는 자갈 소리- 영원한 유년시대.

그녀는 그에게 왈칵 사랑을 느꼈다. 마음도 착하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 어째서 이렇게 불행할까.

그녀는 문화라고 하는 것을, 몸에 배어드는 기억을 통해서만 사랑했다. "이 곡은 여러 번 들었어. 그때 나는 불행해서 이 음악이 마치 복사한 것처럼 괴로움에 눌러 붙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들던 기억이 생생해." 이미 그녀는 그 괴로움이 누구 때문이었는지조차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전화가 걸려와서 고속도로에 짙은 블루 칼라의 오픈카가 뒤집어져 있는데, 그 밑에 깔린 여성의 신분증은… 하고 말을 걸어 온다면…

또 겨울이라면, 피로하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스키장인 메제브에 기분전환 삼아 보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여자들과의 관계를 끝내는 고별의 종이 되어 훌륭한 이별의 선물이 되기도 했는데, 대개는 뭔 때문에 헤어졌는지 다른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사원에게 월급을 짜게 주기 위해 죄악이라고 자칭은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 그런 류의 신문사였다.

"대화는 결국 두세마디였는데 그동안 우리들은 두번이나 사과의 말을 주고 받았군요." "우리들은 끝에서 시작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 되었군요." "남녀란 모두 언제나 사랑의 종말에 가서 사과하게 되는 법이죠. 적어도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말이죠. '죄송해요. 이젠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라구요."

말다툼이 생기면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를 찧기 시작하기 전 3분 쯤은 다른 엉뚱한 일을 지껄이는게 매너였기 때문이다.

앙뜨완느는 내 것이고 앙뜨완느의 웃음도, 또 앙뜨완느의 슬픔도 내 것이다. 밤에 그가 사라의 꿈을 꾸는 것은 나의 어깨에 기대어서 꾸는 꿈이며, 그가 사라의 추억을 좋아하는 것은 나와 비교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샤를르는 뤼실이 자기 어깨에서 떨어지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녀를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 때 그녀가 알알이 얼굴에 나타내는 어쩌면 단념과도 같은, 생각에 잠긴, 상냥한 표정을 꿰뚫어봤다.

그렇잖으면, 앙뜨완느가 천하게 굴든지 지저분한 소리라도 한마디 지껄여 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되면 즉시 앙뜨완느의 존재 따위는 잊어버릴 수가 있는데.

'어머 이 사람, 공원을 횡단하면서 내 손을 쥐고 있잖아. 뭐 봄인데 뭘. 당황할 것 없어. 내가 16살의 철부지도 아닌 바에야.'

그녀도 그도 마찬가지로 떨고 있음을 알았다.

앙뜨완느는 이내 그녀에게서 몸을 뗐다. 그러나 몸을 떼기가 무섭게 그들은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고통에 의해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요. 나, 그 사람 마음에 들었어요. 만약 그렇게 되면 당신은 괴로우시겠죠?" 돌연한 뤼실의 말이었다. "그렇지 괴로와하겠지. 하지만 왜?" "왜라뇨,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난 당신을 버릴거예요."

"얼굴을 붉히지 않고는 당신을 만날 수 없게 됐군요. 그리고 고통없이 당신과 헤어질 수도."

얼굴을 마주보면서 소리없이 웃으며 비록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와 비슷한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예감했다.

"이봐요. 기껏해야 10미터 정도에서 밖에 내가 안보인다면, 그렇게 노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지 않아요. 귀여운 바보 아저씨."

앙뜨와느는 언제나 이 일에서는 완벽하게 규칙적이었다. 호색과 냉담이 뒤섞인 것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내일 와 주시겠어요? 같은 시간에?" 앙뜨완느가 조급하게 물었다. 또다시 그녀를 끌어안을 시간을 분명히 알기까지는 단 일초라도 편안할 수가 없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썰물처럼 앙뜨완느의 마음은 고요하게 가라앉아갔다.

그는 책을 읽기 위해, 기운차게 황새걸음으로 걷기 위해, 사랑을 하기 위해, 무뚝뚝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는 사내였다.

앙뜨완느와 뤼실의 외모에서 쾌락의 자국을 발견하려 두 사람을 노려봤다. 뤼실은 이 눈치를 알아차리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침대 속에서 내일 사랑의 행위가 끝난 다음의 나른하고 행복한 시간에 그녀가 설명해 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들먹거렸다. 많은 숨겨진 정사는 이런 식으로, 침묵이라든가, 일부러 묻지 않는다든가, 두드러지지 않는 말이라든가, 일부러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말을 나누기 마련인데, 이것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이상하게 들려 사랑의 암호로 간주돼 들통이 나는 법이다.

"그게 재밌단 말이요?" "때로는 재미있는 것 같고, 때로는 감동도 해요. 당신은?"

내가 앙뜨완느와 잠자리를 같이 해도 참아 줄지 모르지만 그와 함께 웃는 것만은 못참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질투가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웃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주에 두세번 밀회를 가졌다. 앙뜨완느는 사무실을 나올 때 핑계를 대느라 있는 상상력을 모두 동원했고, 그들은 언제나 그 작은 방에서 몰래 만나 말을 나눌 짬도 아깝다는 듯이 몸을 떨면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몽유병자처럼 거의 제 정신이 아닌 건성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두 시간도 채 못돼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시간을 손꼽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만이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의 유일한 살아있는 순간이며 유일한 현실이기나 하듯이. 다른 모든 것은 죽어 있었다.

그들은 쾌락이 한창일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었지만, 다른 때는 절대로 이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 미소가 만약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인가를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당신의 미소는 너무 무방비 상태야. 걱정이 된단 말야."

앙뜨완느의 연애를, 헤아릴 수 없는, 뜻하지 않은, 깨지기 쉬운, 멋있는 선물인 양 여겨

"이봐요 앙뜨완느, 나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야. 잘 만났군."

"한 여성의 품에서 벗어나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함께 하려는 판인데 이 여자들은 한패가 돼 나를 놀림감으로 만들고 있군. 잘들 논다."

"당신은 데트레가 화를 냈건 말았건 너무 걱정을 하고 있어요. 그 사람이야 화내는 게 직업일 정도 아녜요? 당신도 뻔히 알면서. 그게 우스웠던 것예요. 그것 뿐이예요."

앙뜨완느는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뤼실은 제 삼자와도 기꺼이 춤을 췄을 거고, 지껄이고, 도망까지 쳤을 거야. 그녀는 즐기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이 어떻게 되건 상관 않겠다는 기분이 돼 있었다.

"나, 좀 과음했나봐."

"그래, 얼굴에 그렇게 나와있어."

"당신도 나만큼은 마실 걸 그랬나봐요. 도무지 재미가 없잖아요."

뤼실은 침대에 쓰러지기가 무섭게 허둥지둥 옷을 벗어 던졌다가 역시 같은 식으로 잽싸게 사라지고 만다. 뤼실은 그가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도둑이며 또 손님이었다.

그녀는 앙뜨완느가 말을 걸어주길 바랬다. 함께 웃어주길 바랐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대충 들려주길 바랐다.

왜냐면 아무리 하찮은 정사라도 언제나 그는 사랑의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일종의 경건한 기분을 가져왔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의 몸에 손을 얹으려면 그전에 1분간의 묵상을 하든가 하는 것 같은.

하늘을 가릴 듯이 커다란 마로니에의 나무들이 장미빛 하늘에 또렷이 윤곽을 그리는 밤이나, 언제나 성급하게 켜지는 가로등을… 가로등은 겨울의 귀중한 길잡이 역에서, 여름의 할일없는 식객 같은 존재-어둠이 늦장을 부리는 긴 해질녘과 금새 하늘 가득히 퍼져가는 새벽녘과의 사이에 끼인 존재-로 옮아갈 때, 모처럼의 직업적인 긍지에 멍이 든다.

지구는 둥글고 인생은 복잡하다.

때로는 고독 속에 완전한 행복의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 추억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사람의 그것보다도 위기가 왔을 때, 사람을 절망으로부터 구하게 된다. 왜냐면 혼자서라도 까닭도 없이 행복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음으로써 완벽하게 즐거웠고 완벽하게 자연스러웠다. 그는 그녀에게 웃고 싶은 기분을,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을, 사랑의 행위를 하고 싶은 기분을 일으키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안겨 줬다. 그래서 그게 오히려 그녀에게 조그마한 두려움을 줬다.

"아침에 당신의 눈, 연노란색이군요. 믿을 수 없어요. 맥주같네요." "굉장한 시인인데"

모레 하룻동안에는 결심을 굳혀야 되겠지. 결심이라 하는 낱말은 프랑스말 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소름끼치게 하는 낱말 중의 하나였다.

* * * 110 page~

“잘있어요.” 그리고는 문에 살짝 부딪혔다가 계단을 내려갔다. 앙뜨완느는 4층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2층까지 내려왔을 때 디안느는 비로소 층계의 눅눅한, 지저분한 벽에 이젠 쓸모없게 된 그 명성있는 얼굴과 고운 손을 갖다 대었다.

“샤를르…” “아니, 당신은 꽤 오랫동안 참아 왔었어. 자 어서 가요.”

“샤를르…”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메르시’라고 말하려 했는지, 아니면 ‘파르동’이라고 말하려 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와 비슷한 뭔가 천한 말을 하려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왜냐면 샤를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로 달아오른 듯, 약하디 약하게 조그마한 손짓으로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 손짓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는 이처럼 천천히 잠을 깰 때의 그 뜸을 들이는 게으름을 좋아했다. 뤼실에 있어서는 아침마다 맨 처음에 하는 세계의 파악은 쾌락,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이 때마다 억지로 하는 정복에 놀랐고 그리고 충족되어 막연한 분노 속에 눈을 뜨는 것이었다. 뤼실은 평소에 눈을 뜰 때 하고 있던 싸움?눈을 뜬다, 다시 눈을 감는다. 태양을 거부한다.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인다, 따위의 안개가 피어나듯 뭉개뭉개 자욱한 조용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이젠 할 수 없게 됐다.

그는 늘 그렇듯이 화난 듯한 모습으로 웃었고, 잠의 어둠에서 이처럼 잽싸게 이 여성을 뺏은 다음, 다음 사랑의 어둠으로 떼밀어 가라 앉히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다.

조오니는 젊은이가 아직 본 일이 없는 향수 띈 얼굴로 이렇게 끊어 말했다. “너는 아직 몰라. 하지만 이제 너무 늦어 버렸어.” 그 대답은 젊은이에게 충분했다. 게다가 무슨 일이건 간에 이해하지 않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쾌락에, 그들의 뒤섞인 땀에, 그들의 피로에 싫증을 낼 줄 몰랐다. 이렇게 해서 그는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그녀가 기껏해야 한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거리에는 비가 한방울 두방울 천천히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는 틀림없이 미지근하겠지, 하고 앙뜨완느는 생각했다. 그리고 뤼실의 눈물처럼 짭짤하기조차한 건 아닐까고. 뤼실은 눈을 뜬 채 볼을 대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구름에게도 이 눈물의 까닭을 물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여름이 끝난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던 것도.

순간, 그녀는 자기의 차가 없는 게 못내 후회스러웠다. 포장 위의 빗소리와 젖은 돌포장길을 조심조심 돌던 커브가 그리웠다. 돈의 참다운 유일한 매력은 기다림과 초조와 쓸데없는 사람들을 피할 수 있다는데 있는 거라고 그녀에게는 여겨졌다.

그녀는 이런 생활을 스무 살 때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서른 살에 못하다니, 그녀는 그런 생각이 싫었다.

그녀는 서슴지 않고 붐비는 사람떼, 버스나 노동하는 사람에게 지워진 지옥 같은 제도에 대해 떠들어 댔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실망하겠지.

“당신더러 보고 오라고 한 내가 옳았다고 시인해봐.”

“시인하죠.” 그녀는 욕실 속에서 오른 손에 타월을 들고 선 채로 그렇게 시인했지만 갑자기 그녀는 거울 속에서 자기가 아직 본 적이 없는 빈정대는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그녀는 아연했지만, 조용히 타월로 거울을 닦았다. 마치 존재해서는 안될 공범자를 지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확고한 의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야심도 없었고 자살할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업을 가질 생각도 없었다.

그것도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는 것만이 취미인 그녀에게 인생은 어수룩한 데도 있는가 보다.

집에 돌아왔을 때 굴 속에 틀어박혀 있는 동물처럼 독서와 사랑말고는 하는 일이 없는 이 여자가 없으면 쓸쓸하긴 하겠지만 막연한 안심감은 있겠지.

그는 어린아이처럼 가계 놀이의 셈을 한 것이다. 장관들이 하듯이 예산을 세웠던 것이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숫자놀이를 한 것이다.

제로옴의 라이벌지가 발행부수를 늘리려 하고 있다는 모든 사람들의 걱정 속에서 아첨, 자만, 엄숙, 범용 따위가 크게 활약했다. 그 중에서 세 사람 만이 어리석은 소리를 제안하지 않았다. 첫 번째 남자는…

날마다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에게 들려줘왔던 몇 천개의 작은 거짓말이 지금 환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녀는 불행했다.

급사는 그녀가 아무것도 안 먹는 것을 보고 그렇게 걱정해준 것이다. 안녕하세요. 잘 있어요. 따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는 앙뜨완느를 속이는 게 그녀로서는 마음이 훨씬 편했다.

마주 않았던 신사는 톨스토이의 말로부터 동시에 인스피레이션을 얻었다고 거짓 신상 이야기를 장중하게 늘어 놓았고 그녀도 예의상 하는 수 없이 스코트 피츠 제럴드씨의 신상 이야기를, 이 또한 그럴듯하게 꾸며댔다.

그렇게 돼서 그 신사는 러시아의 공작이면서 역사가, 그녀는 예외적으로 약간 교양이 있는 미국 부호의 유산 상속인이 되어버렸다. 그들 두 사람은 너무 친숙하게 굴었고 너무나 부유한 자들처럼 굴어, 급사장들은 바쁘게 테이블 주변을 뚸어 돌아다니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그녀가 오랫동안 잃고 있었던 그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고소한 기분을 또다시 찾아냈던 것이다. 더구나 젊은 아가씨로서, 도대체 다른 사람이나, 미래나, 다시 나아가 가끔가끔 자기 자신에게도 한, 길고 얌전한 거짓말의 추억 이상으로 좋은 추억을 남길 수가 어떻게 있겠는가.

그녀의 기분 속에는 무섭도록 단호한 것이 있긴 있었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매사에 신중치 못한 사람들이 갖는 특유한, 언제까지나 꼬리를 끄는 그런 투의 노여움을 폭발시켰다. 피해자보다도 가해자가 더 괴로와 하는 그런 노여움이었다.

침묵이 있었다. 뤼실은 뺨을 맞은 것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분노와 재미가 뒤섞인 그런 기분으로 어떻게 해야될까 궁리하고 있었다.

앙뜨완느는 꼼짝 않고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는 눈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눈을 돌린다는 것은 옛날부터 거짓말의 증거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그녀는 앙뜨완느를 가만히 맞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내가 일하는 걸 기뻐했으니까요. 내가 인생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그래서 그런 체 했을 뿐이예요.”

많은 사람들은 말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침묵이, 뒤틀린 것, 엉뚱한 것, 부조리 등을 의미하는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만약 자기가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겼어요”라고 한마디 하면, 그는 아기의 탄생을 행복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었다. 왜냐면 그 아기는 결정적으로 그녀의 자유를 멀리 밀쳐내 버릴거고 그 결과는 마침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않을 테니까.

“태양과 바다가, 무위, 자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운명지워진 것들이라구요. 앙뜨완느, 이미 우리는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의 머리 속과 몸 속에 배어들어 버린 걸요. 그런 식이예요. 아마도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타락한 인간인 거죠. 하지만 나는 그들을 믿는 체 할 때 이외에는 자기가 타락했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뤼실은 여전히 소녀와 같은 매력과 건성으로 재미있어 하는 태도를 지니고는 있었어도 창백하고 수척했다.

“샤를르에게 전화 한번 해요. 안색이 형편없이 나쁘거든. 클레에르마저 병이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니까. 요즘 한참 암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그것인지도 모르겠고.” 조오니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뤼실의 얼굴이 한층 더 새파래지는 것을 즐거운 듯 보고 있었다.

당신은 어쩌다가 웃을 뿐이지만 영원한 일종의 쾌활함이 있어. 사람들은 언제나 해야 할 일로 가득차 넘치고 있는 인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당신은 인생에서 흘러 넘쳐 나온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말하자면 그런 거지. 별로 표현은 좋지 않지만, 자 레먼을 넣은 과일 아이스크림은 어때요?”

연주자인 노부인은 미소를 멈추고 있었다. 하아프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돼 가기 때문에 느닷없이 뤼실은 자기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는 인간, 즉 샤를르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이 손, 이 따뜻함, 물론 일시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발랄한 따뜻함, 피부의 감촉, 그것은 그녀와 죽음 사이에 놓여진 전부였다.

그녀와 고독, 그녀와 저 멀리서 서로 치고 받으며 얽히고 있는 이들 모든 것에 대한 무서운 기대?모차르트의 곡이 낳고 있는 그 시간에 대한 빛나리만큼 모멸 속에 있으면서 느닷없이 전혀 대등한 존재로 화한 플루트와 하아프, 내성적인 청년과 노부인? 그 사이에 놓여진 모든 것이었다. 샤를르는 뤼실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는 이따금씩 비어있는 다른 손으로 컵을 쥐어 뤼실의 다른 쪽 손에 내밀었다.

물론 샤를르로부터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차 안에서 뤼실이 딱 잘라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샤를르의 유감스러운 듯한 웃음에 놀랐다.

“당신의 말을 믿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겠어. 하지만 술 때문에 그러는 거요.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야.”

오랫 동안 상대방의 쾌락을 좀 더 길게 해주기 위해 쓰였던 지식은 어느 틈엔지 되도록 빨리 마치기 위한 거친 기교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 여름의 일이 앙뜨완느에게 되살아났다. 지난 8월, 뤼실이 그의 어깨 위에서 흘린 눈물의 맛을 회상했다.

비록 제 아무리 자유로운 남녀 사이라도 결정적으로 상처를 입지 않고 헤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는 그녀를 원망했다. 뤼실은 집을 향해, 고독을 향해, 걸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존재라고 하는 낱말에 값하는 모든 존재로부터 영구히 추방됐음을 알고 있었다.

“ ‘라 샤마드’라는 표현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겁니까?” 식탁 건너편에서 영국 청년이 물어왔다.

“리트레 사전에 의하면 패배를 알릴 때 두드리는 북소리라고 합니다.”

“굉장히 시적이군요.”

“친애하는 소옴즈씨, 당신들 영국 사람들이 하기야 더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시(詩)로서는 역시 프랑스가 여왕님이란 것을 시인하세요.”

앙뜨완느와 뤼실은 일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랴 샤마드가 이젠 그들에게 아무 것도 상기시켜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클레에르의 선언도 그들에게 조금도 폭소를 자아내게 하지는 못했다.



슬픔이여 안녕

그 나른함과 감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미지의 감정을 슬픔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인지 나는 망설인다.

아버지와 나는 떠난다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으므로 무슨 일이든 이의를 내세울 겨를도 없었다.

나는 모래위에 뒹굴기도 하고 또 모래를 손에 움켜쥐고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황색의 한가닥 실처럼 그것을 뿌려보았다. 나는 그것이 시간의 흐름처럼 흘러 지나가 버린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안이한 느낌이었다. 안이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유쾌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여름인데 어때…

하늘엔 별이 은가루를 끼얹은 듯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나의 귀여운 공범자.

나는 사랑의 갖가지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 몇 번인가의 데이트, 키스, 그리고 권태따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안느의 도착과 더불어 완전한 휴식이란 것이 불가능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안느는 매사를 명확하게 만들고 언어 속에 아버지나 나라면 일부러 모른 체하는 그런 뜻을 부여하는 여인이었다.

그 눈은 나의 말이 가져다 준 몇갠가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가씨가 말하는 <지성의 틀>이란 요컨대 지성의 연령을 가리키는 것일거야.” 그녀의 간결하면서도 단정적인 표현이 나를 매혹시켰다. 어떤 표현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감탄케하고 어떤 이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느끼게 했었다. 이 우회적인 표현은 나에게 조그만 노트와 연필을 갖고 싶은 심정을 일으켰다.

쾌락과 행복에 대한 기호가 내 성격의 오직 하나의 일관된 면을 나타내주고 있다.

“정말 매혹적인 광경이야. 태양에 그을은 두 아가씨가 버터빵을 의논하고 있으니.”

“아가씨는 한 사람밖에 없어요. 유감스럽게도.”

시릴르의 입이 내 입을 찾았을 때, 나는 시릴르와 마찬가지로 쾌락에 떨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키스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다만 깊은 쾌락의 추적이 이따금 속삭임에 끊기었다. 나는 그에게서 빠져나와 기슭에서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해 헤엄쳤다. 나는 얼굴빛을 고치고 열을 식히려고 얼굴을 물속에 틀어박았다. 물은 녹색이었다. 나는 행복과 완전한 안도감에 자신이 덮여가는 것을 느꼈다.

엘자는 가엾게도 비참한 상태로 온 몸뚱이를 기름으로 뒤범벅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엘자에게 싫증을 느끼기에는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

나는 바다 밑에서 보라색과 장미색의 예쁜 조개껍데기를 발견했다. 나는 그것들을 갖기 위해서 물속을 기어다녔으며 점심식사때까지 우아하게 닳아빠진 조개껍데기를 손 안에 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행복의 마스코트로, 여름내 이것을 놏치지 않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어째서 이 조개껍데기를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무엇이든지 잃어버리고 마는 내가 말이다. 오늘, 이 조개껍데기는 도화색으로 따뜻하게 내 손 안에 남아 있어서 나를 울게한다.

아버지는 그러한 심술궂은 조롱엔 곧 싫증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안느를 딸의 두번째 어머니가 될 대단히 존경할만한 부인으로서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모두 그랬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얼굴이며 행동, 키스했을때의 갑작스러운 감동… 아무 관련이 없는 활짝 핀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은 다만 이런 것 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예요. 그것은 어떤 사람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는 것”

하긴 나는 한달 후에는 같은 일에 다른 의견을 갖기 쉽고 나의 신념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둘 다 꾸물대고 우리를 기다리게 하니까, 늙은 류마티스 환자인 아빠와 함께 춤이나 추자.”

“나에게 부기우기를 가르쳐 주려무나.”

“아버지는 햇볕에 약한 붉은 머리의 여자를 바다로 데리고 와서 허물이 전부 벗겨지면 버리는 거죠? 너무해요. 너무해요.” “나는요. 나는 엘자에게 아버지는 함께 자는 다른 여자를 만났으니 이 다음에 다시 와주세요 하고 말하겠어요. 알겠어요?”

그런 상세한 설명이 진실을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나 자신은 여져졌지만 엘자는 조용히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날씨라든가 모드 이외에는 결코 얘기한 적이 없었지만 오랜 친구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별안간 홱 돌아서서 자동차 있는 데로 뛰어갔다.

나는 안느를 뚫어져라 쳐다본 다음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그의 누짓을 기대했다. 나를 화나게 하는 동시에 안심시키는 그 신호를. 아버지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디었다.

나의 귀여운 작은 고양이. 이쪽으로 오렴 작은 고양이.

나도 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안느를 약간 겁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필요없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때문에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웃음과 그 우람함, 신뢰감을 느끼게 하는 늠름한 팔뚝과 그 생활력과 그 열정 때문에. 마혼 살, 고독에의 두려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관능의 실습…

사랑이 빚어낸 일종의 완만함과 행복한 듯 싶은 방종한 동작을. 그리고 나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키스는 지치고만다.

나는 아직껏 허덕이듯 숨결을 몰아쉬는, 그러면서도 농도가 옅은 키스를, 모래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일치된 내 심장에 겹친 시릴르의 고동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하나, 둘, 셋 심장의 고동과 다정한 모래의 파도소리. 하나, 둘, 셋. 하나 그는 숨결을 다시 가누고 그 입맞춤은 정확해지며 친밀해졌다. 나는 벌써 바다의 술렁거림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귀 안에 소용돌이치는 피가 거칠게 고동치는 울림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세실, 이런 따위의 장난이 대개는 병원에서 끝난다는 걸 알아야해요.”

그녀는 우뚝 선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으므로 나는 몹시 어색했다. 그녀는 꼿꼿이 서서 꼼짝않고 지껄일 수 있는 여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나에겐 소파라든가 무심코 잡을 물건이라든가 담배, 또 다리를 흔들흔들하거나 흔들거리고 있는 다리를 쳐다보거나 할 필요가 있었다.

“시릴르와 키스했을 뿐이예요. 그것이 병원신세까지는 지지않겠죠?”

“세실은 <숲속의 처녀> 역을 <착한 학생> 역으로 바꾸는 거예요. 겨우 한달동안. 그게 어렵지 않겠죠?”

나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행복을 위해서, 친절을 위해서, 평안을 위해서 태어났는데, 나는 그녀 덕분으로 비난과 양심의 가책세계로 들어간다. 도대체가 내성적인 것 따위와는 관계가 먼 나는 어리둥절하며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청춘이 누리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명랑함과 대화라고 아는데…”

그들 앞에는 사랑의 어둠이 있고, 나에게는 베르그송이 있다. 나는 울려고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왜냐하면 이미 안느야말로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녀를 이겨낼 자신이 있는 것처럼.

“안느, 이 오줌싸개를 좀 봐요. 아주 빼빼 말랐어. 만일 공부탓이라면 그만두라고 해야겠는걸.”

아버지는 멀리 가버렸다. 아버지는 이러한 따위의 말대꾸가 몹시 싫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내 손을 쥔채 그대로 꼭 잡고 있었다. 그 손은 나의 최초의 실연을 위로해주고 또한 조용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순간에 내 손을 잡아 주던 손이다. 그리고 함께 음모한 장난과 떠들썩한 웃음속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손이다. 자동차의 핸들 위에서 밤에 장난치며 열쇠구멍을 찾던 내 손위에 겹쳐졌던 이 손, 여인의 어깨 위와 담배상자 위에서의 이 손, 이 손을 이미 나는 어찌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엘자, 아버지를 지켜주어야만 해요. 아버지는 커다란 어린애에 불과해요. 커다란 어린애.”

“뻔뻔스런 암여우 같으니.”

그녀는 내 머리카락과 목덜미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나는 꼼짝도 안했다. 나는 밀려가는 파도에 내 발밑의 모래가 쓸려 나갈때와 같은 느낌을 맛보았다. 다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덮어씌웠다. 어떠한 감정도, 노여움도, 또 욕망도 이처럼 세게 나를 잡아끈 적은 없었다. 연극을 집어치우고 내 일생을 죽을 때까지 안느의 손아귀에 맡기자. 나는 지금까지 뿌리채 뽑힌 듯한, 이처럼 여린 나약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안느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말했던가? 나는 안느의 친절함이 그 세련된 지성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혹은 단순한 무관심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적당한 언어와 몸짓을 지니고 있었다.

“무슨 장난을 하고 있는 거지?” “요가예요. 하지만 이것은 장난이 아니예요. 인도의 철학인걸요.”

위험한 일이기에 나는 시릴르에게 바래다주지 말기를 부탁했다. 나는 나의 얼굴에서…눈자위의 그림자나 입 언저리의 떨림 속에서 명쾌한 쾌락의 자취를 들키지 않을까 겁났던 것이다. 이따금 시릴르의 육체의 추억이, 어떤 순간순간에 대한 추억이 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안느의 두 손이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나는 겁먹은 내 눈초리를 안느가 보지 못하도록 눈을 꽉 감았다. 나는 피로의, 걷잡을 수 없는 꾸밀줄 모르는 쾌락의 눈물이 뻗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안느는 모든 질문을 체념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침착하게 두손으로 가볍게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나를 놓았다. 그런 다음 담배에 불을 붙여서 내 입에 물리더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따.

나는 그런 행동에 상징적인 의미를 불어놓어 주었다. 나는 그런 행동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성냥을 잘못 켜대면 나는 이 이상한 순간을 다시 추억하게 된다. 나의 행동과 나와의 사이의 이 간격을, 안느의 시선의 중압가믈, 그리고 주위의 공허를, 그 공허함의 강박감을.

“나는 안느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안느의 생활은 우리들의 생활보다 훨씬 훌륭해요. 훨씬. 훨씬 깊고 고상한 맛을 알고 있어요. 앞으로 한달이나 두달 후면 우리는 안느의 생각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릴거예요. 우리들 사이엔 이제 어리석은 말다툼도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다만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겠죠.”

내 육체는 시릴르를 반기고 싱싱하게 깨어나고 그의 육체를 향해서 꽃피고 열렸다. 나는 정열적으로 키스했다. 시릴르를 아프게 하려고 생각하고, 자국을 내어 밤새도록 한시도 나를 잊지 않도록 하면서 밤엔 내 꿈을 꾸도록 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시릴르가 없는, 나를 마주보는 그가 없는, 그 능란함이 없는, 그리고 그 급격한 사나움과 오랜 애무가 없는 밤은 견딜 수 없이 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 가져다 준 육체적이며 현실적인 쾌락 이외에도 그것을 사랑하는 일종의 지적인 쾌락을 경험했다. <관계를 한다>라는 단어는 그 자체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미와 분리되어 매우 동사적인 것이다.

시릴르는 나에게 어린애가 생길까봐 겁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문제는 시릴르에게 맡기겠다고 말했고, 그도 그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그에게 몸을 내맡기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책임이 있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며, 만일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만이 나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지 못하는 책임을 시릴르가 홀로 갖게 되어 있었다.

파리에는 시릴르가 있을 것이고, 안느는 그곳에서까지 내가 시릴르를 사랑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므로 내가 시릴르와 만나는 것을 어쩌지 못하리라. 시릴르는 파리의 어머니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방을 하나 갖고 있었다.

나는 벌써 보랏빛과 장미빛의 하늘, 파리의 이상한 하늘을 향해서 열린 창문을, 창문 손잡이 위의 비둘기 목소리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좁은 침대 위에 시릴르와 나를…

“여보게. 안느와 나는 10월 5일에 결혼한다네.” “그거 굉장한 아이디어군. 마담, 당신이 이 따위 불량자의 시중을 드신다니, 부인은 참으로 숭고하시군요. “

“누구지? 저 여드름투성이의 애송이는?”

그러나 나는 조금 취해 있었다. 안느의 향수,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닷바람, 우리들이 사랑했을 때의 시릴르가 내어 준 내 어깨 위의 작은 상처… 나에겐 행복을 느끼고 잠자코 있을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햇살은 부드럽고 따듯해서 살갗 속까지 스미어 뼈를 펴주는 것 같았고, 나를 따듯하게 해주기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꼼짝 않고 이렇게 오전을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장래의 일 같은 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죠? 그렇죠? 그것이 바로 청춘의 특권이예요.”

“넌 자신에게 싫증을 내고 있는 거냐?”

아버지는 어떠한 것에도 위안을 받았기 때문에 그처럼 자신을 위로하리라고 나도 알고는 있었다. 아버지로선 정돈된 생활을 보내느니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와 헤어지는 것이 참기 쉬웠으리라. 아버지는 나 자신이 그런 것처럼 오직 습관이나 정해진 것에 의해서 정말로 상처를 입고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나는 이것을 때로는 아름다운 유목민이라 여겼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순수하고 비참한 빈털터리의 향락자들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 사랑하는 그대여. 하루만 봐줘요. 그 계집애한테 가서 내가 늙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겠소. 평온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그 육체의 피로를 맛보아야 한단 말이오.”

그것들은 모두가 많은 이중인격과 침묵이 요구되었지만, 노력과 거짓말은 아주 조금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나는 이 기간에 대해선 빨리 지나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분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찍어누르게 하는 추억 속에 다시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해 여름, 운명은 엘자의 얼굴을 선택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매우 아름다운 얼굴, 아니 오히려 이끌리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또한 황홀한 웃음을 갖고 있었다. 두뇌가 조금 나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상대방에게 통하는 완전한 웃음을… 이 웃음의 효과를 나보다 아버지가 먼저 찾아냈다.

시릴르는 아무 말 않고 나를 포옹하여 데리고 갔다. 그의 곁에선 무슨 일이든지 쉽사리 변해갔다. 격렬함과 쾌락에 넘치면서…

나는 아무런 고통이 없이 그리고 일종의 쾌적한 체념과 함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안느의 상의, 안느의 꽃, 안느의 방, 안느의 향기가 있었다. 아버지가 덧문을 닫았다. 냉장고 속에서 술병을 하나 꺼내고 컵을 두 개 내놓았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가능한 유일한 치료약이었다. 우리들의 사죄의 편지가 아직도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 어리석고도 무서운 사건을 한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나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에게도 아버지밖에 없어요. 우리들은 두 사람뿐이라 불행한 거예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처음으로 옳았다. 이 눈물은 매우 유쾌한 눈물이었다. 내가 병원의, 베니스의 석판화 앞에서 느꼈던 견딜 수 없었던 공허함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것이었다.

“생각나지! 바로 그날 말이야.” 우리들은 조심스럽게 눈길을 피하면서 얘기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든가 두 사람 중의 어느 편인가가 감정을 폭발시켜서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겁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로의 주의와 다정함은 끝내 보람이 있었다. 얼마쯤 지나, 우리들은 보통 어조로 안느에 대해서 얘기할 수가 있게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있으면 같이 웃고, 서로의 사랑의 모험을 이야기했다.

다만 내가 침대 속에 있을 때, 자동차 소리만이 울리는 파리의 새벽녘이면, 나의 기억이 이따금 나를 배신한다. 여름이 다시 다가온다. 그 추억과 더불어.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되풀이해본다. 그러자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솟아나고, 나는 눈을 감은 채 그것을 그 이름으로 맞아들인다. 슬픔이여 안녕!

어떤 미소

내가 어느 날엔가 죽게 될 것이며, 이 공기 끝의 나의 손도, 그리고 내 두손 속에 비치는 태양광선도 없어지리라는 것을 느꼈다. (어떤 미소)

뤽크 씨는 느릿느릿한 말투를 썼으며 커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다. 나 같은 종류의 계집애들을 낚아채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다…내 손이 따듯하고 빽빽한 짐승털 같은 그의 머리카락 만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지만… 나는 뤽크씨의 직업에 대해서 약간의 흥미를 지니고 있는 시늉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미소)

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싶다. "당신,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무슨 책을 읽으시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직업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흔히 그런 것들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이미 뤼크씨와 함께 있기만 하면 그 무엇인가가 아주 속히 분주하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은 급하게 혹은 느리게 다시 또 초가 지나가고 분이 지나가고 시가 지나가고 담배들이 쌓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라크아젤제에를 먹고, 이튿날 아침에 자기들의 육체를 신기한 장난감처럼 느끼며 그것을 쾌락에 의해서 마모시키는 그리고 열심히 치료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다.

최소한의 도덕관이나마 얼마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그러나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을 지니지 않고 있지. 그리고 당신은 상냥하단 말야.

"당신은 작은 새와 같군요." 프랑소와즈가 나에게 말했다. "늙은 새죠. 난 늙은 것 같아요."

"난 말이야. 네가 나하고 있을 때 말고는 취하거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하거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구." "그러면 함께 있을 때가 아닌 시간에는 어떻게 하고 있으라는 거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라구. 아까 저녁 식사때처럼"

"어머, 나는 그것이 멋져 보여요. 이 두 개의 작은 주름을 만들게 한, 당신이 겪은 모든 밤들이며, 모든 나라들이며, 모든 얼굴들… 이편이 나아요. 용기있는 사람을 동요케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고 봐요. 나는 매끄러운 얼굴은 싫어요."

"나는 허풍스러워요."

"프랑소와즈, 나는 뤼크씨를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신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러니 어서 뤼크씨를 꼭 붙잡고, 그이를 어디론가 데리고 떠나세요."

나는 그가 쾌활한 모습으로 있을 때가 좋다. 사람은 자기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 사람이 쾌활한 모습으로 있을 때가 좋다. 그 편이 덜 미안하니까.

"너에게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네가 나에게 이끌리게 되고, 그 다음에 괴로워하는일? 하지만 그게 어때. 권태에 잠겨 있는 일보다는 훨씬 낫지. 너는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행복하게 있는, 그리고 불행하게 있는 편이 더 좋겠지. 안 그래?"

"사람이란 하나의 연애관계를 갖게 되면, 이와 같이 한 곡의 음악이라든가, 한가지의 향수라든가 그 어떤 표식 따위를 장래를 위해 선택할 필요가 있단 말야."

"네 나이 또래로는 장래 같은 것은 생각지 않겠지. 나는 말야. 레코드판을 가지고서 즐거운 노후를 준비하고 있어."

"하지만 일년이나 이년 후면 말예요. 인생에 있어서의 어떤 일주일 전부가, 어떤 남자와 함께 보낸 생생한 일주일이, 단지 한장의 레코드판으로 남게 된다니 좀 우스운데요. 더욱이 그 남자가 그일을 미리 알고서 그런 얘기를 하다니 말예요." 나는 흥분된 조바심을 느끼면서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기분 상했나?" 하고 물어본 말하는 태도 탓이었다. 사람이 나에게 어떤 투로 얘기할 때면 그것은 항상 나에게 신음하고 싶은 기분을 만들고는 한다.

퀴크 씨가 나를 떠날 때 내 운명은 변화된다. 내가 어떤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하리라. 그러나 나는 결코 그 누구하고도 내가 뤼크씨와 함께 있을 때처럼 그런 기분으로 있지는 못하리라. 고독한 일도 거의 없고, 고요하게, 또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아내에게 돌아갈 것이고, 파리의 내 방에 나를 남겨둘 것이다. 나를 끝없이 긴 오후와, 절망의 타격과 함께, 그리고 불행하게 끝난 연애관계와 함께 남겨둘 것이다. 나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측은해서.

"십오 일 간의 공동생활 후에 '네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기란 드문 일이지."

"어쩌면 그런 일쯤 그녀에겐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 결혼한지 십년이 지났는데뭐"

"너도 알겠지만, 결심이 서고 나면 편하지. 단념하지 않을때가 괴롭단 말이야."

"너 그 사람 사랑하니?" "천만에, 그런 일은 문제도 되지 않을 소리야. 우리는 아주 기분이 잘 맞을 뿐이야. 그뿐이야."

"그러면 이제 거북한 일이 끝났으니까 재미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결혼한 사람이니? 그사람?" 그녀가 교활하게 물었다. "아니, 귀머거리 벙어리야. 자 이제 내 여행가방을 풀어야겠다."

이런 일에 관한 프루스트의 말이 있다. "행복이, 그것을 상기시킨 욕망 위에 정확히 놓여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물론 그것은 뤼크씨의 손이었다. 그이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그날그날을 메우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충분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런 일은 결국에는 끝나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반년이나 일년쯤 후면 너는 이것에 대해서 농담을 할 거다." "내가 다시 돌아올때는 너는 나를 잊고 있을 거다."

이따금 한밤중에 입술이 바싹 마른 채로 잠에서 깨어 났다. 목이 마를 뿐이다. 일어나서 세면대까지 걸어가고 물을 마시고 다시 잠자면 그뿐이다.

그는 나에게, 내가 이미 외워버린, 다정하고도 슬픈 짤막한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럴때면 케페로 들어가서 자동 축음기 속에 20프랑을 넣는다. 그리고 칸느의 멜로디 덕분에 오분간의 우울을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의 약간 풀이 죽은 것 같은 그 표정 대신에 당신에게 행복한 표정을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 * *

'나는 키스의 쾌락을 알았다. 하지만 이같은 추억에 이름을 붙이지는 않으리라. 쟝...유베르...자끄...따위의 소녀들에게 흔한 이름을......'(슬픔이여 안녕)

'키스는 지치고 만다. 만일 시릴르가 나를 조금만 적게 사랑하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나는 그 주 안에 그의 것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또한 황홀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가 조금 나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상대방을 매혹시키는 완전한 웃음을...'

'옛날과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있으면 같이 웃고, 서로의 사랑의 모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나와 필립의 교제를 플라토닉한 사랑은 아닐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고, 나 역시 아버지의 새로운 아망에게 돈이 많이 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슬픔이여 안녕)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일 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몇 살 때였을까. 열 넷, 열 다섯 무렵, 그녀는 포플러나무 아래에 누워 두 다리를 나무에 얹고 바람에 흔들리는 수많은 잎사귀를 보았다. 바람은 높은 곳에서 날아갈 듯 가느다란 가지를 살짝 흔들어 인사를 하게 했다. (일 년 후)

언제나 고양이처럼 응큼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테니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miez-vous Brams…)

"내겐 만족스러운 직업도 있고, 과거에 대한 특별한 후회도 없으며, 좋은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은 지속적으로 만나는 남자도 있지 않은가."

뽈르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떤 추억을 떠올릴때면 로제는 특히 즐거워 보였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이처럼 구김하나 없는 시트 위에서 홀로 보내는 외로움의 연속이 아닐까. 마치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병자처럼 적막하고도 기나긴 밤을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를 놀려주고 싶었다. 때로는 수줍어 하고 때로는 대담하며 때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심각하고, 또 때로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그가 재미있었다. 그는 지금 '나도 몰라요' 라고 아주 낮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녀는 사십 대 남자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이었죠.

…글쎄…그녀는 항상 우울했어요. 조그만 자동차를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몰았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골르와즈 담배를 물고. 그리고 내게 말했죠. 사랑이란 서로 다른 사람이 살을 맞대는 것에 불과하다고…그래도 내가 떠날 때 그녀는 울었죠. 물론 잘난 척하는 건 아니예요. 그런 건 딱 질색이예요."

시몽은 주문을 끝내고 나서부터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 침묵이 고의적인 침묵이며 시몽이 식사때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고양이처럼 응큼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테니 말이다.

시몽은 자신이 매우 서툴렀다는 후회와 극도의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그에게는 수줍음에 가려져있는 어떤 본능적인 잔인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지는 머리가 텅 빈 수다쟁이 배우에 불과했지만, 사랑을 조롱하면서도 격정적이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 고운 눈

사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무네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친구도, 애인도, 괴상한 직업도, 아이들까지도 사랑했으며, 책과 음악, 꽃과 산불마저 사랑했다. 엄청난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가 버렸지만 무엇인가 그녀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납득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심각한 그 무엇이었다. -연못가에서 만난 고독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그에 대해 애정을 표시했다. 코냑 잔을 들고 오던 스타니슬라스는 벼락에라도 맞은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칠대로 지친 사나의 어깨위에 기댄 이 여자의 갈색 머리결과, 가냘픈 흐느낌, 그 안도의 흐느낌은 스타니슬라스로 하여금 별안간 그 코냑잔을 벽난로에 집어던지게 하고 말았다. -그 고운 눈

그래서 제롬은 아내를 꼭 껴안았다. 벽난로의 불길이 갑자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신 생각나? 우리가 언젠가 말다툼을 했을때, 당신이 날 버리고 가버리겠다고 했던 일 말이야. 우리가 결혼하기 열흘 전이었나봐, 그날 나는 당신네 집 잔디위에 드러누워있었고, 하도 날씨가 나쁜 날이어서 난 울적해있었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갑자기 햇살이 내 눈시울위로 내리비치는 것 같았을때, 그때 난 정말 행복했어. 그래서 햇빛때문에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당신은 이미 내 곁에 무릎을 끓고 앉아 나를 쳐다보며 미소짓고 있었어."

"그래요. 생생하게 생각나는 군요. 당신이 짖궂게 굴었기 때문에 제가 몹시 화가 났었죠. 그러다가 당신이 어디있나 찾아봤더니, 입이 툭 취어나온 채 잔디밭에 누워있더군요. 그러한 당신을 보니 웃음이 나서, 옆에 가서 입을 맞춰주고 싶었죠." -그 고운 눈



<마음의 파수꾼> 중에서

하늘엔 인생이 피할 곳이 있다. 그러나 새벽이면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육체들이 있다.

그들이 영원히 흙속에 묻히기 전에 우선 10분 쯤이라도 태양 아래 내 놓았다가 그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이를테면 바다를 좋아했다면 마지막으로 바다를 구경시켜 준 다음 매장해야 옳을 것이련만 실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고작 해 준다는 게 바하의 음악 같은, 죽은 이들이 생전에 좋아하지도 않던 종교음악이나 들려주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군주인 제리 볼튼은 갖가지 추잡한 성의 유희를 남 몰래 즐겨왔던 것이었다. 그 같은 사실이 그의 죽음과 함께 알려지자 사람들은 쾌재를 부름 기뻐했다. 모두가 지난 날에 그에게 온갖 박해를 받아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이 나를 기쁘게 해 줄 수는 없었다.

아! 나는 인생을 사랑할 때는 결코 인생의 매력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낮의 아름다움과 밤의 동요, 알코올과 쾌락의 짜릿한 현기증, 사랑의 격정, 일의 긴장과 건강, 이 모든 시간을 자기 앞에 펼쳐놓고 인간을 죽음의 자세로 응고시키기 전에 주어지는 그 거대한 하루… 그 모든 것을.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다. ?시트가 보숭보숭한 것도, 또 그것이 끈끈해지는 것도,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도, 나의 고독도, 푸른 바다도, 스튜디오까지 쭉 뻗은 미끄럽고 번들거리는 아메리카의 길도, 각 방송국의 음악도, 그리고 루이스의 그 호소하는 듯한 시선도… 거기서 나는 생각이 딱 멈춰 버렸다.

자정쯤 나는 다시 일어나 그에게 감사와 사과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 편지가 너무나 애절하게 써져서 몇 줄은 되려 지워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즐거운 골치덩어리였다.

그녀는 어린 사슴처럼 후다닥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녀의 옷 밑으로 젖가슴을 흔드는 그 유명한 몸짓이 또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몸짓을 했다. 비틀거렸다. 그녀는 마치 말이 장애물에 부딪혔을때와 같이, 혹은 한 여자가 자기가 몹시 바라던 남자가 돌연히 나타났을 때 그 앞에서 그랬듯이 그렇게 비틀거렸다.

루이스는 그녀를 보자, 활짝 웃던 그 미소를 일시에 거두었다. 그는 낯선 사람들은 누구나 싫어했었다.

그리고는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루이스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요컨대, 상냥하고 손쉽게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그녀가 내게 보낸 시선 하나로 나는 그녀가 루이스를 내 애인으로 생각했으며 그를 내게서 빼앗겠다는 결심이 서 있음을 동시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루이스와 재미를 보는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거기까지 조롱한다는 것은… 그녀의 자만심이나 또 그녀가 저지르는 바보 같은 짓은 정말 몸서리가 날 지경이었다.

요컨대, 자 보세요. 우린 셋이 다 여기 모여 있어요. 날씨는 온화하고, 지구는 둥글고 우린 건강해요. 그러니 우린 행복한 거죠. 그런데 왜 우리의 모든 관계가 이처럼 굶주리고, 무엇엔가 몰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만 할까요. 무엇 때문이죠?

내 귀중한 커피가 양탄자를 적시면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약간 비위를 맞추는 웃음을 지었다.

나는 생각했다.?이런 종류의 장면은 내 나이의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그에게는 인생의 맛과 신뢰를 주는 더 청순한 어린 처녀가 필요한 것이다. 나로 말하면, 나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아니 루이스, 미쳤어요?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사람을 죽이다니요.” 나는 너무나 놀랐기 때문에 그 이상 적절한 말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면 나는 항상 수도원에서 쓰는 말이나 훌륭한 교육적인 이야기밖에는 생각이 안나는데, 왜 그런지 모를 일이다.

나는 항상 옛날 애인들과는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나를 볼 때마다 아쉬워 했으며 “아! 도로시, 당신만 좋다고 했더라면…”하는 따위의 말들을 던져 지난 날의 추억을 은근히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이와 함께 희미해져 가는 내 기억력으로서는 그 추억들을 전부 제대로 회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경찰관이건, 우편 배달부건, 작가이건 간에 항상 이야기 끝에 가서는 결국 나에게 자기들의 마음 속 걱정거리를 털어놓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니고 있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밤이 다 새도록 내 어깨 위에서 잠든 그를 지키며 하늘이 하얗게 변해 구름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 보았다. 마침내 비가 사정없이 휩쓸고 간 땅 위에 태양이 오만하게 유유히 떠올랐다. 그것을 보는 동안 지난 밤이 어쩌면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밤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 * *

프랑소와즈 사강: 회고록 <나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 중에서

속력은 길가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납작하게 한다. 또한 그것은 밤중에 주유소에서 빛을 발하는 활자들을 늘려 비틀어 버린다. 그것은 갑작스런 경고로 말문이 막혀 버린 타이어들의 외침소리에 재갈을 물린다. 그것은 또한 근심을 단념시킨다. 사람들이 헛되이 사랑에 열중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 시속 200Km로 달리게 되면 그것에 덜 열중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섬세하고 또 그러면서도 내 문학에 별로 감격하지 않는 준엄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때때로 열광적인 독자들이 내게 감격적이고 추종적인 아첨을 해주고 했는데, 솔직히 어떤 때는 그러한 아첨을 받기를 꿈꾸기도 했다.

연극의 실패는 나에게 성공보다 훨씬 더 흥분제가 되었다. 성공을 한 경우, 눈을 내리깔고 아양을 떨면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배우들과 연출자를 가리키며 ‘제가 아니라 저들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과분한 말씀을…이 연극이 맘에 드셨다니 기쁩니다…등등’ 이라고 얘기하는 외에 무얼 한단 말인가. 반대로 실패한 경우에는 주위의 눈물을 흘리는 단원들에게 이번이 세상 마지막이 아니며 다른 곳에서는 더 나쁜 상황이었다는 것, 두 달 동안 닫혀진 문 안에서 지내온 것이 끝났다고 해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 당신의 실패를 좋아할 나쁜 친구들을 위해서도?아, 파리 생활의 흔해빠진 이야기를 듣자면, 항상 그런 사람들이 몇 사람쯤은 있기 마련이다.? 기필코 마지못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노래 가사를 빼먹기도 하고 호흡을 힘들게 쉬기도 했다. 마치 풍랑이 심한 바다에 있는 배의 난간에 기대듯 그녀는 피아노에 붙어 있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자주 그녀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청중을 향해 그녀는 빈정거리는 듯하고 동시에 동정하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내 친구들이 진실한 친구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은 항상 내게 좋은 친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확실히 변덕스러운 친구였다.



작가의 이전글은희경 <그녀의 세번째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