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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정우 Sep 07. 2021

바람을 타고 넘어, 연과 같이

이어지던 비와 구름이 걷히고 오랜만에 해가 얼굴을 내민 날이었다. 코발트 빛깔의 청명한 하늘, 살랑이는 바람, 얇은 외투 하나면 충분할 적당히 따뜻한 공기! 친구를 만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날이 있을까. 일년 반 만에 모처럼 휴가를 보내러 들어온 한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 속에 차곡차곡 얹혀 목이 갑갑할 때 즈음 성사된 그리운 만남이었다. 간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듣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약속 장소에서 우리는 미소를 가득 담은 포옹으로 반가운 재회를 하고 각자 어딘가 보관해 놓았을 이야기들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다니고 있는 일은 어떤지, 힘든 일은 없는지… 한 명씩 차례로 묵혀둔 보따리를 풀어내다 보니 어느덧 만남은 세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반가운 재회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야하는 이별의 순번이 빠르게 돌아왔다. 하루 온종일 수다를 떨고 자정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가던 대학생 때와는 달리 늘 일정 뒤에 일정이 있는, 어느덧 우리는 바쁜 삶을 살아내는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어딘가 헛헛한 마음에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눈으로 집어 삼켰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독일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말할 시간도 없었구나. 우리가 나눈 대화는 대부분 직장 아니면 결혼, 그것도 아니면 부동산을 비롯해 돈을 불리기 위한 온갖 잡기들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들과 나는 사는 곳도 달랐지만, 발 담그고 있는 세계 또한 달랐다. 한국에 살고있는 보통의 삼십대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들을 나는 여전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럴듯한 '어른'의 모습을 한 친구들에 비해 내 모습은 아직 물정 모르는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동안 공백이었던 나의 시간에 궁금증과 질문을 쏟아낼 것이라 예상했던,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내고 깔깔댈 수 있으리라던 상상 역시 자의식 과잉의 결정체였다. 그래, 다들 살기도 바쁠텐데 공부하는 내가 궁금하겠어.


이런 경험은 한국에 머물며 지인들을 만나는 동안 꽤 여러번 반복됐다. 대충 순번이 돌아와 으레 되묻는 것 외에 진심 어린 질문을 받은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말이다. 한국에 적을 두고 있지 않고 또 향후 몇 년 간은 그럴 계획도 없다 보니, ‘사는 이야기’를 해도 주로 나는 듣는 쪽이 되어 열심히 맞장구만 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조금 외롭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사실 그보다 앞서 찾아온 감정은, 굳이 설명하자면 ‘당황스러움’에 더 가깝다. 나를 궁금해 해주지 않는다는 유치한 서운함과는 별개로 서로가 진심으로 공감하고 궁금해할 교집합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건조한 물음만이 오가는 그 순간이 시리게 낯설었다. 향후 몇 년 간은 더 독일에 머물러야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이제 한국 사회와 독일 사회 그 어디에도 완벽히 속하지 않는다는 불안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독일에 살다 보면 날씨가 좋은 날, 탁 트인 들판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각양각색의 연들이 바람을 타고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위험한 서핑을 하다 마침내 멋지게 자리를 잡으면, 실타래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흐뭇한 얼굴로 만면에 미소를 띄운다. 그 그림같은 풍경을 매번 넋을 놓고 바라보지만 사실 마음은 늘 연민으로 가득했다.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보다 기꺼이 바람을 받아내며 파르르 떨리는 연의 어깻죽지가, 쉴 새없이 몸을 구기며 바람 사이를 가로지는 꼬리가 더 마음에 담겼다. 그렇게 생고생을 해 날아도 끈에 매여 같은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또 얼마나 애처롭나.


내가 속한 독일 사회에 적당히 적응된 나는 점점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불편해지는데,  독일에서는 정작 한국인으로서 굳어진 사고방식을 깨지 못해 외국인의 카테고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독일이라는 얼레에, 독일에서는 한국이라는 얼레에 묶여있는 셈이다. 차라리 한 쪽에 완벽하게 옮겨간다면 좋을텐데. 조각난 정체성은 엉뚱한 곳에서 자기주장을 고집한다. 이방인이라는 속성은 분명 자유로움과 맞닿아 있지만 무소속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굴레를 필히 동반한다. 이 애매한 자유가 지긋지긋할 때 즈음 나의 소속을 다시금 확인하러 간 곳에서, 슬프게도 연처럼 떠 있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못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했던가. 무소속이 주는 불안과 외로움을 피해 잠시 피신한 곳에선 또 다른 불안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방인에게 외로움을 떨쳐내는 것이란, 쌍쌍바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것만큼이나 신의 가호가 있지 않다면 어려운 일이다. 도저히 말끔히 분리가 되지 않는다. 외로움에게 잡아 먹혀 일부분을 상실하거나, 외로움을 파괴해버릴 기세로 잡아 먹어도 비대해진 몸은 갸우뚱 균형을 잃는다. 불완전의 상태는 여전하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아주 약간의 자유로움으로 불안과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줄을 끊고 달아나고 싶은 것인지를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매여있는 줄로 인해 드넓은 하늘을 두고도 좁다란 너비만을 빙빙 도는 피로한 날갯짓을 계속하지만, 덕분에 나는 내가 자리하고 있는 땅과 하늘의 흐릿한 경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기지 못할 바람을 만나 고꾸라지면 땅에 안착해 다시 적당한 때를 기다리면 되고, 알맞은 때가 오면 바람을 타고 넘으며 실컷 비행을 즐기면 된다. 


언젠가 얼레가 내 발목을 붙잡는 장애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지지대가 될 때, 독일과 한국 그 두 개의 하늘을 오가며 날아보고 싶다. 자유로운 연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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