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은 곧 우주가 된다

영화 <척의 일생>

by 후르츠 칵테일

강력한 스포일러 주의



<척의 일생>은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드라마 장르 영화로, 2025년12월24일 개봉했다. 스티븐 킹의 중단편 소설 ≪척의 일생(The Life of Chuck)≫을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는 ≪피가 흐르는 곳에≫ 중편 소설집에 실려 있다.


소설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세계멸망에 관한 강렬한 시놉시스와 '모든 삶은 경이롭다'는 메시지에 매료되어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과 부족하지만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영화를 기록하고자 한다.






지구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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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전 주기는 수학적으로 23시간 56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24시간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망각한 채 24시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세계는 종말을 앞둔 것처럼 인터넷이 멈추고, 싱크홀이 생기고, 사람들이 사라진다. 그러자 남은 이들은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 움직인다. 고등학생 시절 한 달 사귄 남자에게로, 헤어진 전 부인에게로, 타고 싶은 스케이트를 원없이 타면서.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없기에 망각했던 진실된 마음을 따르는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중요한 진실이자 중대한 스포일러를 하나 밝혀야 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다가오는 종말과 함께 끊임없이 울리는 광고에 관해서이다. 이는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각이다. 이 세계는 바로 척의 머릿 속 우주이며, 광고의 멘트는 혼수 상태로 누워 있는 척에게 속삭이는 아내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머릿 속 우주의 사람들은 척의 기억과 상상에서 비롯된 인물들로, 그의 인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척의 감각이 포함되었을 것이므로, 어렴풋이 세계(척의 생명)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은연 중에 느꼈을 지도 모른다. 진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머릿속 우주의 사람들은 척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하되 소중한 무언가와 함께 두려움을 나누며 끝을 맞이한다.






일생에서 소중한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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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에서 할머니에게 춤을 배우고, 할아버지에게서 수학을 배우면서. 그래서 척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회계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춤을 사랑한다.


척은 어느 날 갑자기 드럼 버스킹 앞에 멈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별 통보에 짜증이 난 한 아가씨와 함께 길고 신나는 춤을 선보인다. 영화에서는 이전 아마추어 밴드가 떠올랐다고 추후에 나레이션이 나오지만, 척의 회상에는 할머니가 요리를 하며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조성된 버스커 모임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았고,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척과 파트너 아가씨는 엘 도라도 가게 앞에서 헤어지게 된다. 특별하고도 소중한 순간을 간직한 채. 영원히 머물지는 못하지만 완성적인 이상향 엘 도라도처럼 그 순간만큼은 완전했다. 비록 엘 도라도를 떠나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가지만 마음 속에는 할머니의 춤처럼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절대 다락방을 보아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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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의 할아버지는 집의 꼭대기 다락방을 꼭 닫아둔 채, 척이 그곳에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바닥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둥 부차적인 이유를 둘러댈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술 기운에 거기서 죽음의 유령을 보았다고 언급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락방의 정체가 그저 맥거핀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간단명료하게 할아버지의 반쯤 진실된 고백으로 기능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척은 할아버지 몰래 다락방을 열었지만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 할아버지가 그를 밀친다. 그러나 문을 닫는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당신의 죽음을 보게 된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도. 그는 회계사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학과 계산을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죽음을 보게 된다니. 그가 이미 주변 이웃의 죽음을 우연히 다락방을 통해 보고 겪으면서 이를 믿게 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공포스러운 죽음을 인식한 후에, 어쨌든 심장이 안 좋고 나이도 많으니 죽음을 대비하는 건 계산적으로 맞는 결론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에 척은 다시 다락방에 올라간다. 그가 목격한 죽음은 다시 영화의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을 듣는 시간대의 모습이다. 정확히 몇 살인지도, 어디서 죽게 되는지도 모르지만 척은 자신이 환자복을 입은 채 죽을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삶에서 가장 괴로운 게 무엇인지 아는가? 기다림이다. 그래서 척은 죽음을 두려워 하면서 기다리지 않기로 다짐하며 다락방에서 등을 돌린다. 다만 외면하지 않을 것처럼 문을 열어놓은 채로.


죽음을 기다리지 않은 채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간직하며 다양한 기억과 상상으로 삶을 구성한 척은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말을 들으며 죽음에 이른다. 기억하자. 모든 삶은 각자의 우주이며, 그렇기에 경이롭다.







영화관에서 고작 1회 관람을 한 터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고, 개인적인 오독이 있을 수 있다. 영화 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 관객에게 자연스레 불친절해지고, 시놉시스의 강렬함 때문인지 초중반에 비밀이 밝혀지고 나자 후반부에 힘을 잃는 느낌이 있으나 모든 삶을 경이롭다고 박수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 불친절함 때문에 시간이 날 때 원작 소설 ≪피가 흐르는 곳에≫를 텍스트로 접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