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꿈이라서 좋아

영화 <중경삼림>

by 후르츠 칵테일

스포일러 포함


곧 홍콩 여행을 앞두고 <중경삼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홍콩'하면 떠오르는 영화 중 하나인데, 아마 홍콩이란 도시에서 외부인이 원하는 감성과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중경삼림>, 중경의 삼림으로, 빌딩으로 이루어진 숲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특징적으로 홍콩의 혼란스럽고 모호하며 퇴폐적인 분위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어 불안정함의 미학을 표현한다. 이 영화는 같은 배경에서 일어나되, 독자적인 사랑 이야기 2편으로 구성되었다.






유통기한 이후의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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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5년간 사귀던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단순 변덕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하지무(금성무 扮)’는 연인 메이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5월 1일, 자신의 생일까지 모으기로 한다. 그날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더는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그때까지의 스스로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그렇기에 하지무는 메이를 4월 30일까지 한없이 기다리고 그리워할 수 있는 정당성을 스스로 창조해냈다. 홍콩에서 파인애플과 금붕어는 행운을 상징한다는데, 하지만 아무리 통조림 속에 보관한다 해도 영원할 수는 없다.


파인애플 통조림을 전부 먹어치운 후, 다시 뱉어낸 그는 바에 들어오는 첫 번째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첫 번째로 들어온 여자는 금발 가발의 여인. 미스터리한 마약 밀매상. 경찰이란 직업과 대척점에 서 있는 여자이며, 전 연인 메이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금발 가발의 여인은 ‘타인에 관한 이해’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메이와 하지무가 헤어진 이유는 그가 메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금발 가발의 여인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리처드, 조직의 보스이자 연인에게 배신당하며 변해버린 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한껏 취한 후, 함께 호텔에 가 휴식을 취한다. 성애적인 장면 하나 없이 금발 가발의 여인은 잠들고, 하지무는 셰프 샐러드를 잔뜩 먹으며 옛날 영화를 본다. 날이 밝아와 하지무는 25살을 맞이하기 전, 금발 가발의 여인을 두고 떠나기 직전에 그의 구두를 친절히 닦아준다.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친다면, 영원히 유통 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 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그의 생일은 5월 1일, 영어로 “MAY”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잊고자 할수록 계속 떠올라 슬픈 그에게 금발 가발의 여인은 25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1994년 5월 1일 아침 6시가 되어 하지무는 진정한 25살이 되고, 금발 가발의 여인은 자신을 배신한 리처드에게 복수함으로써 두 사람은 전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유통 기한 1994년 5월 1일 통조림이 열린 채, 첫 번째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안녕 나의 꿈, 나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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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변덕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 남자가 이 도시에 한 명 더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통보를 받은 경찰 633은 아주 안정적인 사람이다. 즉, 단조로움이 익숙한 사람인 것. 조금이라도 전 연인을 이해해보고 싶었던 건지, 그는 다른 메뉴를 먹어보고 순찰 동선도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찾아온다. 늘 야식을 먹는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새 직원 페이이다. 음악을 크게 틀기 좋아하고 정해진 목적지 없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그는 경찰 633과 정반대처럼 보인다.


그에게 첫눈에 반한 페이는 그가 단조로움을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전 연인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경찰 633의 전 연인이 맡긴 집 열쇠를 이용해 그의 집을 새로이 단장한다. 절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임에도, 경찰 633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의 물건이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는 변화를 알아차린다. 단조로운 정상성을 벗어난 행동 역시 그의 기질과 정반대이다. 페이의 정성에 감동을 받은 건지 경찰 633은 제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페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페이는 캘리포니아 바에서 기다리는 그를 내버려 두고 진짜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사랑이 이루어질 타이밍에, 진짜 캘리포니아 날씨는 화창한지 궁금하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그는 일하는 동안, 가게 사장이자 사촌오빠에게 ‘넌 몽유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다. 어쩌면 페이의 이상 행동들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차원이 아니라, 경찰 633을 캘리포니아처럼 막연한 꿈으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모든 것을 들키고 데이트 신청을 받는 건 몽환적인 꿈이 깨지는 일이므로, 진짜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느껴졌던 건 아닐까.


그렇게 1년을 유예기간으로 두었다가 스튜어디스가 되어 돌아온 페이는, 비 오는 가짜 캘리포니아 안에 있는 경찰 633을 목격한 후 가게에 가보게 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경찰 633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촌 오빠가 가게를 자신에게 팔았다며, 사복을 입은 채. 그토록 변화를 싫어하던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페이를 기다렸다. 페이는 이번 역시 도망치려 하지만, 그는 페이가 남긴 행선지 없는 비행기 티켓 낙서를 꺼낸다. 그러자 페이는 그에게 펜을 든 채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는데, 그는 페이가 원하는 곳에 가겠다며 변화를 맞이한다. 캘리포니아라는 막연한 꿈을 이루고 돌아온 페이 역시 사랑이란 꿈 또한 이뤄볼 만한 자신감이 생긴 듯 망설임 없이 비행기 티켓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실 <중경삼림>은 우연과 충동에 따른 감성과 홍콩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필름이기에 이런 리뷰 겸 해석이 옳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리뷰는 저품질, 불량한 파인애플 통조림 중 하나로 봐주는게 좋겠다.


<중경삼림>은 대개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평이 많은 듯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은 원래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들 논리적인 척 행동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물의 행동에 꼭 정당성이나 개연성을 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홍콩 여행을 갔다오면 더 홍콩이 좋아질까? 아니면 페이처럼 환상이 깨지는 것에 반감을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