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그것도 사극을 보는 건 오랜만이고, 장항준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다. 사극이 주장르인 감독은 아니니까. 어떨지 궁금한 마음이 컸다.
호불호가 갈리는 후기들을 보면서 엄연히 기록된 사실을 토대로 만든 영화인데 호불호가 이렇게 갈리다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심히 호불호가 갈릴 영화는 아니며, 충분히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맞다. 다만, 연출적 아쉬움을 느끼는 점에 일부 공감은 할 수 있었다. 배우들의 명연기가 극을 끌어간다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를 쓰는 계기는 아무래도 영화에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골뜨기 촌장 엄흥도와 왕위를 찬탈당한 어린 이홍위가 광천골에 살게 되었다. 첫만남부터 너무나 최악인 상황. 둘은 너무나 다른 종류의 인간인 것만 같다. 그러나 자신을 따르다 죽은 신하들이 악몽에 시달리고 식음을 전폐하는 이 어린 왕은 엄흥도를 보며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듯하다. 엄흥도에게도 지키고 보살펴야 할 마을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고 노산군을 살뜰히 챙긴 것이다.
어리고 올곧은 왕에게 자신이 보살피는 누군가가 잘 살아가길 바라는 염원은 곧 자신의 염원이기도 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 몇 명과 조선의 백성과 신하라는 단위는 다를 지언정, 그 염원만큼은 같은 방향이다. 그리고 이 작은 단위의 지켜야 할 백성을 직접 눈으로 담는 행위는 어리고 나약한 이홍위을 다시금 올곧은 단종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에서도 '살다'라는 동사가 들어간다.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의식주'인데, 그 중 '식'이 주된 키워드이다. 이 영화에는 식사, 밥이 초중반까지 자주 등장한다. 사람 간의 계급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극명한 부분은 바로 '의식주'이다. 매끼니 쌀밥을 먹고, 고기나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신분이 높은 사람뿐이다.
한국에는 '밥심'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가벼운 인사치례로 '밥 먹었어?', '다음에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밥에 진심인 민족이다. 그런데 유배 온 귀한 사람이 밥을 먹지 않는다니. 마을 사람들은 귀한 음식을 대접하면서 손도 대지 않는 이홍위를 원망하긴 커녕, 어디 편찮으신 건지, 아니면 입맛이 없으신 건지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유배지에 온 후, 이홍위는 식음을 전폐하며 지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최선을 다한 음식으로 대접한다. 단종이 '식사'를 시작한 것은 산에서 호랑이와 대치한 후, 즉 마을 사람들을 구한 후이다. 그는 자신의 백성인 마을 사람들을 직접 보고,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하고 싶어하는 촌장 엄흥도의 역정을 들은 후에야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밥을 해준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궁에서 먹던 수라간의 눈칫밥보다 정성과 진심이 담긴 소박한 밥상에 드디어 미소를 보인다.
금성대군은 거사를 준비하며 단종의 응답을 기다린다. 주군의 윤허 아래 이루어진, 쿠데타를 바로잡을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수양대군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홍위는 영화 중후반까지 금성대군의 밀서를 불태우는 등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활' 역시 중요한 소재이다. '활'은 쏘게 되면 되돌릴 수 없기에, 망설임 없이 용감한 조준과 강인한 힘이 필요하다. 엄흥도는 사슴조차 활로 쏘지 못하고 실패할 만큼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의 명석한 아들 태산 역시 호랑이의 다리를 겨우 맞추었다. 그러나 식음을 전폐하던 단종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호랑이의 머리를 맞춘다. 그 소식을 전달받은 궁의 사람들은 믿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쌓은 이홍위는 강 건너에서 자신을 위해 통곡하는 신하와 백성들을 보고, 자신과 어울린 태산이 한명회의 명령으로 인해 곤장을 맞는 것을 보고,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지 못하는 왕이라는 무력감을 다시 체감한다. 그러나 이미 힘을 얻은, 지켜야 할 것에 눈을 뜬 단종은 더이상 쫓겨난 약자가 아니었다. 결심이 선 단종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실패하더라도 바로잡으려는 시도라도 기록되길 바란다'는 답장을 화살에 묶어 쏘아올린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니, 아마 그 끝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이 씁쓸함 역시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단종과 엄흥도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의 CG나 연출적인 부분에서의 아쉬움은 있을지라도, 영화가 가진 따뜻함과 연민마저 혹평받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