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과학 상식의 증진을 원하는 독자는 읽지 않는 게 좋겠다. 여기 아주 기초적인 과학 상식만을 갖춘 사람이 SF 영화에 대해 쓰고 있으니까. 나에게 SF 장르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부끄럽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과학 지식만을 갖추고, 지식의 확장보다는 가치관과 메시지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그렇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한 인간의 현실적인 고민이 모두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홀가분한 감각이 좋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용기가 난달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예고편을 볼 때부터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더 폴>, <토이스토리> 시리즈에 가장 높은 평점을 줬다고 하면 아마 느낌이 올 것이다. 절망이 공존하는 연대의 힘은 가장 강렬한 진심을 담고 있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하게 된다던가. 하지만 이 작품은 충분히 나의 감동을 충족시켜주었다.
그레이스는 교사 시절부터 아이들과 쓰던 콩주머니를 우주에까지 들고 갔다. 물론 가게 된 과정을 떠올리면 애틋하게 챙기는 모습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연구소로 가는 과정에는 직접 챙겼을 테니까. 스트라트의 발언을 통해 그레이스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하다못해 친구도 거의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걸 알 수 있다. 연구자 시절에 했던 행동으로 아마 있던 동료들과도 소원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가 지구 모양을 한 콩주머니를 가지고 중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간 이유가 뭘까. 그가 애착이 있는 대상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수업을 하는 장면에서도 그의 태도와 아이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통해 그레이스는 좋은 선생님이란 걸 알 수 있다.
생명체는 누군가와 연결되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다. 지구에서 지내던 그레이스에게 가장 적극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애정은 나눈 건 아마 제자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콩주머니는 그의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채로 함께 우주로 보내지게 되었다. 로키를 만나 사건들은 해결한 후반부에는 그레이스가 노트북과 함께 이 콩주머니를 선물한다. 자신을 추억해달라는 의미에서 '지구'모양을 선물한 것인데, 사실 노트북을 통해서도 지구를 이미지적인 전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지구 모양의 콩주머니를 물리적으로 주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애정과 그리움이 로키에게도 전달되기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로키도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자신을 추억해주길 바라는 소망.
그레이스가 우주에 온 과정을 기억하는가? 그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몇 번이고 말하고, 도망까지 쳤던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다. 일상을 살아가던 중학교 교사가, 우리가 그런 영웅이 될 수 있을 리가. 딱 한 번, 그레이스는 야오 선장에게 그런 용기 DNA가 자신에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야오 선장은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드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생기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즉, 용기란 태초부터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싶을 만큼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있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용감하다고, 영웅이 될 재목이 아니라 항상 말하던 그는 로키에게 '용감함'이라는 말을 듣는다. 시련을 견뎌내고 함께가 된 그레이스와 로키는 살아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다시 갖는다. 사실상 두 사람만의 새로운 헤일메리(미식축구에서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마지막 승부수)가 시작된 셈이다. 처음에는 우주복을 입고 조금 나가는 것조차 겁을 내던 그레이스가, 에이드리안에서는 타우메바 채집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내던졌다. 로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주선이 버티지 못했다. 이 위기 속에서 그레이스가 그만 정신을 잃자, 이번에는 로키가 치명적인 산소가 가득한 걸 알고도 자신의 돔에서 나와 그레이스를 구해주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서, 함께이기에 상대를 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품은 숭고한 존재를 영웅이 아니면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외계의 생명체를 추론하는 파트가 문득 생각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눈이 달리고 머리가 큰 존재보다는 행성의 사정에 맞는 존재일 거라고. 폭풍이 몰아치는 행성에는 폭풍을 타고 다니는 해파리나 열기구 같은 생명체를 추론됐었다. 그래서 로키가 무척 반가웠다. 문과생의 눈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꽤 과학적인 형태의 외계인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울었던지 모르겠다. 그만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정제되지 않아서 답답한 심정을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레이스는 자신을 '실패자', '패배자'라고 칭했다. 아무래도 학회에서 있었던 일이 그에게 엄청난 좌절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절망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지구에서 무척이나 외로웠던 사람이라도 우주적 차원에서는 용기를 주는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실패하고 있다고 느끼는 당신, 외로워 하지 말길. 이 광활한 우주에서 소중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당신은 누군가에게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