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라고 여유를 부렸지만.
베라의 이야기로는 그랬다.
추석연휴 소파에서 미끄러지는 어이없는 사건으로 한 달간의 발깁스 푼 후.
또 한 달간은 발이 불안정하니 뛰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있었음에도.
깁스를 풀고 2주가 지난 하굣길에 친구들이 앞에서 달려가니 같이 가려고 저도 모르게 뛰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고 1학년인 아이에게 한 달 동안 뛰어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부터가 지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그날 베라는 집에 오자마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나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 친구들 따라 뛰다가 엄지발가락 삐끗한 거 같아. 어떡하지? 너무 아파!”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보여주는 엄지발가락은 우울하고도 불안함의 상징인 파란색 줄이 감싸고 있었다.
“아.. 하루 정도 있으면 나아질 거야."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을 애써 눌렀다. 하루 정도 지나면 나아질 거라며 힘들어하는 아이와 예민해지려는 나를 애써 다독였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도 파란 줄 모양의 멍은 나의 말에 반발하듯이 더 커졌다. 아이는 더욱 아파하며 절뚝거렸다.
“엄마! 나 또 깁스하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하지 말고 일단 병원 가 보자.”
불안해하며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이는 베라를 달래고 기존에 갔던 정형외과로 데려갔다.
깁스를 풀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나선 지 2주 만이었다.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듣고 베라의 발가락을 본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엑스레이 결과를 보러 진찰실에 들어가자 선생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보이세요? 엄지발가락에 금이 갔어요. 한 달 정도 깁스를 또 해야겠네요.”
“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다. 무언가 내리친 거 마냥 뒤통수가 띵했다. 아이가 단지 뛰다가 삐끗했을 뿐인데.
"어떻게.. 금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고 의사 선생님은 부연설명을 했다.
"뼈가 한번 다친 후에 조심하지 않고 움직이면 한동안은 불안정해서 또 다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이의 발에 다시 꽁꽁 깁스를 하기 시작했다.
베라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나는 아랫입술을 힘줘 깨물었다.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서자마자 베라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엉엉. 나 또 한 달 동안 깁스해?"
"뛰지 좀 말지 그랬어."
아이를 탓하는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고는 곧 후회했다.
그래. 너도 얼마나 속상할까.
나 역시 속상한 마음에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눈물 흘리는 베라의 모습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하늘이 왜 이렇게 우리 모녀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주는 건지 싶었다.
숨을 깊게 마셨다가 단전에서 끌어모은 한숨을 후하고 내쉬었다.
"울지 마. 큰 일 아니야. 한 달 동안 깁스하면 나을 거야."
나는 베라의 등을 토닥이며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다시 베라의 2번째 깁스가 시작되었다.
둘째 방톨은 누나가 다시 또 깁스를 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 과니 역시 퇴근 후, 베라의 다시 깁스한 발을 보고 말없이 한숨을 내었다. 이미 내가 낮에 보낸 메시지로 자초지종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고는 속상한 표정이었다.
베라는 다시 또 덩치 큰 유아가 되어버렸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호출하는 베라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그나마 2번째라고 전보다는 깁스상태의 베라를 케어하는 것이 익숙했다.
'이런 걸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베라는 목발을 어떻게 지지하면 좀 더 편하게 다닐 수 있는지를 알아냈다.
"엄마 목발을 이렇게 놓고 걸으면 겨드랑이가 덜 아파."
아이는 첫 번째 깁스할 때보다는 덜 짜증 내고 표정이 밝았다.
그런 베라 덕분인지 나도 전보다는 덜 힘들었다.
그저 깁스를 풀 날짜를 달력에 체크하고 뼈에 좋다는 사골국과 멸치볶음, 우유, 치즈를 끊임없이 돌아가며 아이의 식판에 올려줬다.
아이의 작은 발이 원래의 온전한 형태로 빠르게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중간 점검을 갔던 병원에서 다행히 예정했던 한 달보다 며칠 더 빠르게 깁스를 풀 수 있었다.
"회복이 이번에 빠르네요. 깁스를 풀어도 되겠어요. 깁스를 푼 후에도 한 달 동안은 되도록 뛰지 않고 조심하세요."
"네! 선생님!"
나는 깁스를 풀고 침대에서 가볍게 내려오는 베라의 손을 꼭 잡고 아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베라야. 이번 한 달은 꼭 조심하자. 다시는 깁스하는 일이 없도록!"
"응. 엄마!"
베라와 나는 결연에 차서 마주 잡은 손에 꼭 힘을 줬다. 정말 다시는 아이가 깁스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나는 깁스를 푼 후 한 달 동안 매일 아침마다 베라에게 학교 갈 때 하던 인사를 바뀌었다.
전에 하던 '재미있게 다녀와.' 란 말 대신 '뛰지 않게 조심히 다녀.'로 말이다.
마치 아침에 그렇게 말하면 다시 다치지 않을 것 같은 마법의 주문처럼.
아이는 깁스를 푼 후 한 달간 정말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너무 안 움직이려 해서 깁스를 하는 기간부터 말랐던 베라가 살이 부쩍 올라 그때부터 보기 좋게 통통해졌다.
안 좋은 점도 있었다. 굳었던 발을 너무 안 움직이려 해서 발을 안정시키는 한 달이 지난 후에도 한쪽 발을 움직임이 전보다는 둔했다.
하지만 다행히 시간이 흐르자 이 문제는 점차 나아졌다.
그렇게 그 이후 큰 사건 없이 아이의 깁스기억이 흐려질 즈음이었다.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때 사용했던 아이의 부목과 깁스신발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 집 창고 어딘가에서 먼지에 쌓인 채 보관하고 있어 깁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베라의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기 2일 전. 그러니까 3학년 입학이 코 앞일 때였다.
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야!"
하며 베라의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이 베라의 방에서 들렸다.
"왜 그래? 베라야?"
비명소리가 심상치 않아 나는 베라의 방으로 달려갔다.
- 4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