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은 줄 알았지만.
베라가 초등1학년이던 추석연휴.
소파에서 미끄러졌다는 너무 황당한 이유로 새끼발가락이 골절된 베라는 그렇게 한 달간의 발깁스를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히 발가락이라고 360도를 감싸는 통깁스가 아닌 붕대로 고정시킨 반깁스였지만 어린 베라는 자유롭게 움직이던 발을 고정시키자 너무 힘들어했다.
"엄마, 깁스 너무 답답해! 풀어버리고 싶어!"
울상이 된 베라의 모습을 보며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써야 했다.
"한 달은 깁스를 해야 뼈가 붙는다잖아."
아직 어린 베라의 조절되지 못하는 감정을 다독이는 일까지 나의 몫이었다.
발깁스를 하게 되자 불편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걸어서 다니던 학교 등하원과 학원차 이용이 어려웠다. 나는 베라의 운전기사가 되어 자차로 라이딩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가방은 항상 내 손에 들려있었고, 방학은 끝났으나 나의 베라 매니저 노릇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첫 깁스 후 베라가 처음 학교를 갔다 온 날이었다.
"학교에서 어땠어? 깁스하고 다녔는데 다리 안 아팠어?"
절뚝거리며 걷는 베라의 얼굴을 살피며 나는 걱정스러운 말투를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 베라에게 물었다.
베라의 입이 삐죽 나왔다.
한껏 찡그린 아이의 눈썹에서 아이의 최고로 솟아오른 예민함이 느껴졌다.
"응. 다리는 안 아팠는데 아이들이 다 나 쳐다봐서 너무너무 싫었어!"
"그래?"
"나 보면 왜 깁스하냐고 다 물어봐!"
베라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 학교 가기 싫어!"
토해내는 외침과 함께 기어이 아이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아이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랬어? 친구들이 궁금해서 그랬나 보네. 좀만 참으면 깁스 풀 거야."
그저 아이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나도 힘들지만 깁스를 하고 있는 베라는 얼마나 힘들까.
나의 토닥임에 아이가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집에서 붙어있는 나에게 베라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엄마! 옷 입는 거 도와줘. 발에 바지를 못 넣겠어."
"알았어."
"엄마! 씻는 거 도와줘."
"응."
"엄마 나 앉았다 못 일어나겠어. 부축해 줘."
"엄마! 엄마!"
"엄마~!"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찾았다. 다리가 불편해진 아이는 덩치만 커졌을 뿐 다시 나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유아가 된 거 같았다. 베라의 수족이 되어버린 나.
그나마 초등학교와는 달리 둘째 방톨이 유치원에서 조금 더 길게 있어줘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에게도 피곤과 짜증이 밀려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감정을 아이들에게 표출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아이는 발에 깁스를 했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힘든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려 내 감정을 꽁꽁 깁스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이 폭발한 그 날이 다가왔다.
하필 아이가 깁스를 하던 시기에 초등학교에서의 첫 체육대회가 있었다.
비록 경기에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베라는 처음 하는 체육대회라며 꼭 보고 싶다고 학교에 등원했다.
그리고 하원 후.
베라는 거실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벤치에 앉아서 하루 종일 구경만 했어! 다른 아이들은 경기에 모두 참가하는데! 엉엉!"
"아."
"나 깁스 언제 풀어? 엉엉"
"좀만 더 참자. 내년 체육대회는 같이 할 수 있을 거야."
엉엉 우는 아이가 안쓰럽고 속상했다. 아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보냈는데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스스로 비교가 되는 걸 느낀 거 같았다. 괜히 등원시켰나 싶었다.
"나도 같이 뛰고 싶었는데 너무 슬펐어. 난 너무 불행해! 초등학교 첫 체육대회를 이렇게 보내다니!"
베라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눈이 빨갛게 부어올라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크면 체육대회 날에 벤치에서 구경한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될걸?
난 아이의 울음을 달래려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감정을 스스로 달래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울던 아이는 조용히 거실로 다시 나왔다.
길고 긴 한 달 후 손꼽아 기다리던 깁스를 풀 예정일에 정형외과에 방문했다.
베라는 다시 한번 엑스레이를 찍었다.
새하얀 나뭇가지 같은 아이의 발가락뼈 사진을 나는 의사 선생님과 같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뼈가 다 붙어서 깁스를 풀어도 되겠네요. 그래도 발이 아직 불안정하니까 한 달간은 뛰어다니지 않게 조심하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웃음을 띠며 나도 모르고 두 손을 마주 모으고 선생님께 연신 감사인사를 전했다. 나를 보는 베라의 얼굴에서도 배시시 웃음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깁스를 풀고 병원에서 나오는 날 세찬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덮쳤다. 춥기는 커녕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기만 했다.
"엄마! 나 깁스 안 하니까 날아갈 거 같아!"
아이는 신나서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고생했어! 그런데 한 달간은 뛰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래."
깁스를 풀고 가벼워진 자신의 모습에 함박웃음 짓는 아이의 모습에 내 속까지 후련했다.
"너무 좋아!"
아이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베라가 다시는 깁스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와 나의 깁스 고난기는 끝이 난 줄 알았다.
2주 뒤 하굣길
친구들이 빠르게 학교 후문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베라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따라갔다고 했다.
"얘들아, 같이 가!"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을 따라 걷는 속도가 빨라졌고, 순간 베라는 엄지발가락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아야!"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