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의 여정, 그리고 조금씩 찾아가는 일상의 의미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
2023년 11월 말, 친구가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급성 백혈병이라고 했다.
대학 때부터 평소에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에 이런 주제는 생소하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낯설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운영하던 가게를 차츰 정리해야 했고, 입원 전에 그동안 못 해본 여행도 가고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생각했다. 너무 젊기도 했고, 그냥 평소에 아팠던 것도 아니고, 현대 의학도 꽤나 발전했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내 친구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다.
골수 이식도 예정되어 있어서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친구도 꽤나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현대인은 살면서 한 번은 암에 걸린다. 나는 그게 좀 빨리 온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2023년 12월 입원 전에 만나서 밥을 먹었다. 2024년이 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니, 음압 병동에 들어가면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근데 참 아이러니한 것인지, 본인다운 것인지 일하는 것을 좋아하던 친구는 입원 전까지도 꾸준히 가게에 나갔다.
자기 일이 좋다고 했다.
회사에 다니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24년 새해가 되었다.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친구에게 "새해엔 다 잘 될 거야!"라고 응원했다. 진심이었다.
2024년 1월 골수 이식을 위해 입원 예정이었지만, 전문의 파업과 함께 일정이 뒤로 밀리게 되었다. 2월에 회사 퇴근 후 한 번 더 밥을 먹자고 했다.
이때쯤 병원 입원이 미뤄진 틈을 타서, 여러 군데 돌아다니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여기저기 추천해 주었다. 가고 싶었던 독립서점, 뷰가 좋은 카페, 그냥 친구가 평소에 즐겼으면 했던 것들이었다.
입원은 또 밀리고 밀려서 4월에 하게 되었다. 첫 이식 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다. 만날 수는 없었지만 카카오톡으로 계속 연락할 때면 누구보다 힘들 텐데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주었다.
첫 번째 이식은 실패였다.
지정 헌혈을 위한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요청했다. 혈액형도 안 맞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2024년 5월이 되었다. 내 생일이 되자 참외를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내왔다.
뭘 이런 걸 챙기냐고 네 몸이나 챙기라고 면박을 주자, "내가 나가면 먹고 싶은 거 보낸 거야. 너라도 맛있게 먹어"라고 말했다.
"나와서 참외 파티 하자!" 나도 덤덤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6월에 다시 2차 골수 이식을 진행했다. 끊임없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6월 20일, 마지막 카톡이었다. 이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는지 오타가 많았다.
중환자실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수치가 오르고 있다고 했다. 늘 고비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근데 이제 머지않은 것 같아, 물 한 모금이 소중하고, 더 작은 것에 더 기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보니, 다른 뜻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말을 내 마음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래! 퇴원할 날 머지않았지!"
그렇게 5일 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장례식은 지방에서 있었다. 친구의 본가가 지방이어서, 급하게 시차를 내고 집에서 검은 옷을 챙겨 입은 뒤 홀로 차를 몰고 먼 길을 떠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감보다는, 먼 길을 운전하는데 부디 무사히 가길 바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장례식장 분위기는 슬픔에 압도되어 있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친구를 먼저 보낸, 남은 자들의 슬픔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면면히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기에 말을 할 틈도 없이 그냥 눈물만 울망울망 맺혔다.
진짜 문제는 장례식 이후부터였다.
장례식 이후에 나는 기묘한 우울감에 짓눌렸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나의 죽음도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태어남에 선택권이 없듯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다.
날짜도, 가는 방법도 내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
삶이 더욱 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거의 3개월이 지났지만, 시간의 흐름이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더디게 느껴진다.
최근에 본 유튜버 '알간지'님의 콘텐츠에서 위로를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인생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부재는 여전히 낯설고 아프다. 하지만 이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그리울 때는 그리워한다. 이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친구를 기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려 한다.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회사에 가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때로는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마지막 메시지를 종종 떠올린다. '물 한 모금이 소중하고, 더 작은 것에 더 기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긍정의 화신은 아니라서 이 말의 의미를 완전히 체화하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커피 한 잔의 향, 동료와 나누는 대화, 퇴근길의 노을 같은 것들 말이다.
여전히 슬픔이 올 때면 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빈도와 강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 이별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성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친구야, 네가 떠난 지 3개월이 지났어.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네가 없는 세상이 낯설어. 하지만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어. 네가 남긴 말들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어. 때로는 힘들지만, 때로는 작은 기쁨도 느껴. 앞으로도 네가 남긴 영향력을 기억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갈게. 그리고 언젠가는 네가 말한 것처럼 작은 것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할게.'
내가 보고 위로를 얻었던 알간지님의 컨텐츠 "잘 살다 가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