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 육아빠의 산소호흡기

육아휴직 9개월 차, 첫 글을 쓰다.

나는 30대 중반의 육아빠다.




지난 3월,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어언 9개월째

육아와 가사를 전담 중이다.


처음엔 나름 자신에 찼었더랬다.

집안일을 열심히 돕곤 했으니.

일할 때에 비해

오히려 더 여유로워질 것 같아

내심 기대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당탕탕...

허둥지둥...

결코 녹록지 않았다.


밥-밥-밥 차리느라 내 점심은 pass.

4인 가족 빨래는 왜 이리도 많은지...

온종일 집을 구석구석 치웠는데

티는 왜 하나도 안 나는지...


아이들의 징징거림과 요구사항은

눈 뜨고부터 감을 때까지 계속되는구나...

애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은

뭐 이리도 금방 지나간다냐,

고작 빨래랑 집 청소밖에 못 했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것도 많았다.

딸아이 머리 묶기,

키즈노트에 투약의뢰서 쓰기,

아이 아플 적에는 집에서 온종일 돌보기,

온갖 생활용품들 사서 채워 넣기 등등.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평생 물건 잃어버린 적 없는 사람이

이것저것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내가 뱉은 말을 금세 잊어버렸다.




다행히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하였다.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졌달까.


나름 나만의 패턴도 생겼다.

아침에 아이들 준비시키는 루틴,

아이들 보낸 뒤 혼자 시간 보내는 방법,

아이들 하원 직후 놀아주는 루틴,

저녁 식사와 자기 전 루틴.


가장 뿌듯한 순간은

일하는 와이프가

진심 어린 칭찬 한 마디 해줄 때!

"자기 정말 너무 잘 해내고 있어"

"고마워"

"애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이 내 곁에서 자고 싶어 할 때!

밤새 수도 없이 깨야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고 마냥 속 편한 건 아니다.

실은 속이 많이 갑갑하다.

일상 속에서 마음으로 달리기를

마음이 지쳐 숨이 턱 막히곤 한다.


그래서 글을 쓴다.

'말'을 할 수 있는 시공간 찾아,

9개월 만에

육아빠의 첫 숨쉬기를 시도해 본다.




나는 왜 '말'을 하려는가?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육아빠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우선, 일할 때보다 감정선이 풍부해진다.

[양육자로서 느끼는 감정들]

죄책감, 수치심, 슬픔, 분노, 답답함 /

행복감, 보람, 즐거움, 존재의 충만감 등

[집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들]

화, 원망, 미움, 짜증 / 고마움, 미안함, 안식 등


게 중 미처 소화시켜내지 못한 감정은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대문자 T인 나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말'로 토해내고 싶다.


특히,

나의 영원한 단짝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육아 스트레스를 자기에게 내던져서...

괜히 원망하고 미워해서...

부쩍 예민하고 잘 삐져서...

예쁘지 않게 말하고 행동해서...


내가 이 정도로 속 좁은 사람인 걸 알았더라면

지난날 자기가 육아할 때

잔소리나 참견, 조언 따위는 더 조심했을 텐데...

그 미안함을 글로라도 적어 전달하고 싶다.





이제 브런치라는 무대 위에

나의 '말'을 띄어보련다.

무대의 관객이 없어도 좋다.

그저 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말'함으로써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의 '말'이 산소호흡기가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