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고 있걸랑 '우산'을 씌워주지 말아요.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걸 매우 좋아했다.
학창 시절엔 수학과 과학 공부를 즐겼으며
대학교에서는 보고서 쓰는 게 수월했다.
머릿속에는 나만의 드넓은 서재가 있다.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나의 언어로 차곡차곡 분류ㆍ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
"F스럽다"는 말은 전혀 들어 본 적 없으나
다채로운 형형색색의 감정을 가진 여자친구 덕에
F를 T스럽게 이해-대응-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15년째 그분과 함께 지내고 있다.
구 여자친구 현 와이프 덕에
나의 감정선은 꽤나 풍부해졌다.
그렇다고 'T스러움'을 잃은 건 아니다.
순간순간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면
금세 알아차리고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
정말, 그렇게 굳게 믿었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는...
남편으로서 내 주특기는 '경청과 공감'이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별말 없이 끄덕이기만 해도,
와이프는 속 시원하게 웃었다.
물론 늘 잘하는 건 아니다.
종종 육아하는 와이프에게
잔소리 혹은 조언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옳지 않은 행위임이 증명됐다.
나름 든든한 남편이라 칭찬도 들었다.
흔치 않은 주특기를 가진 남편,
와이프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남편,
정말, 그렇게 굳게 믿었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글귀 중
"함께 맞는 비"라는 말이 있다.
차마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차디찬 '비'를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단지 '비'를 피하려는 사람이라면
곁에 가서 내 '우산'을 들어줄 수도 있겠다.
그럼 더 이상 '비'는 맞지 않겠지.
다만, '우산' 없는 사연이 기구하여
그 자리에 철퍼덕 나앉은 사람이라면
나의 '우산' 따위는 잠시 치워 두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비'를 함께 맞아야겠지.
차디찬 '비'의 온도를 동일하게 느끼면서
당신의 마음속에 우리의 '우산'을 펴는 것,
마음속 온기가 그의 발까지 전달되어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그저 그렇게 곁에 있어주는 것,
나는 이렇게 "함께 맞는 비"를 이해한다.
사실 '우산'을 펴주는 작은 호의는 쉽다.
그러나 "함께 맞는 비"는 어렵다.
'우산'을 먼발치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산'을 가졌다고 하여
당신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
즉, 소유가 존재에 앞서지 않음을 아는 것,
존재론적 메시지인 것이다.
육아휴직과 동시에
'비'는 왜 이리도 억세게 오는 건지
나의 '우산'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돌봄은 무한 반복이자 감정 노동이었다.
아이들은 본능에 극도로 충실했고
사회화되어 있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인내하며 교육시켜야 했는데
그게 정말 어려웠다.
화나 짜증 같은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F가 잘 훈련된 T로 살아왔더랬는데
이젠 T가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때때로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였고
혼을 내던 중 제 감정을 주체 못 하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어찌나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지...
대찬 '비'를 맞고선 오들오들 떨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쏵 사라진다.
주특기인 경청과 공감은커녕
'우산' 씌어주러 다가온 와이프가 되려 밉더라.
분명 밖에서 일할 적에는
나의 '우산'만으로도 '비'를 잘 막아왔었는데,
그저 그동안은
그게 가능했던 상황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비'를 맞았다.
흠뻑 젖어 넋을 잃기 직전에
눈을 간신히 뜨고 옆을 흘깃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함께 '비'를 맞고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와이프였다.
당신도 숱하게 '비'를 맞아본 기억에
그 어떤 위로도 쉽게 건네지 않았다.
내가 흘깃 쳐다보면 그저 눈빛만으로
위로와 관심을 표할 뿐이었다.
당신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음에도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제야 지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엔 경청과 공감으로 시작하나
점차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내놓으며
최선을 다해 나만의 '우산'을 씌워주던 모습.
와이프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 맞아본 경험의 유무였다.
경험이 없는 나는 손쉬운 호의를 베풀었고
경험이 있는 와이프는
존재론적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도 종종 감정이 폭발한다.
다 큰 성인이 되어
그것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제 감정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에
스스로에게 또 한 번 실망한다.
'비'가 억세지고
나의 '우산'이 한없이 초라해질 때
또다시 와이프가 내 곁에 조용히 앉아준다.
그리고 온 존재로 나를 경청하고 공감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분명한 말을 건넨다.
"그럴 수도 있지."
"감정 조절은 누구나 쉽지 않아."
"자책하지 마. 조금씩 나아질 거야."
누군가 '비'를 맞고 있걸랑
당신의 '우산'을 씌워주지 말아요.
그저 함께 '비'를 맞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