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육아빠 VS 장모님

고부 갈등은 가라. 이제는 장서 갈등이다!

나는 감히 장모님께 대들고 있는 육아빠다.




어른에게 무슨 짓이냐 하신다면

사실 유구무언이다.

그럼에도 잠깐 변호를 해보자면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는

아주 넉살 좋고도 예의 바른 사위였다는 것.


이 말인즉슨 나의 장서 갈등은

육아와 가사를 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다.

여하튼 이 못난 사위 놈은

장모님과 싸워봄으로써

K-며느리 심정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는 중이다.




혹자는 고부 갈등을 두고

“여자들끼리의 기싸움”이라 말할 것이다.

결혼한 남자를 가운데 두고

그 어미와 아내가 서로 으르렁댄다는 것,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난 며느리가 아닌데도 장모님과 다툰다.

와이프를 두고 싸우는 건 더더욱 아니다.


생생한 에피소드를 다 공유할 순 없지만

우리의 주 갈등 소재는 육아와 가사다.

그래서 나는 이 갈등을 두고

“양육자와 주부를 겸직하는 선후임 간의

직무 수행에 관한 의견 대립”

으로 해석한다.


그저 여성들이 이 포지션에 있어 왔기에

고부 갈등이 주를 이뤄왔을 뿐,

아빠들의 육아휴직 및 육아 전담이 점차 늘수록

고부 갈등은 줄고 장서 갈등이 늘 것이다.


결국은 고부 갈등이나 장서 갈등이나

동일한 메커니즘이라는 것,

그게 나의 주장이다.




나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선후임 간 의견 대립이라면,

왜 혈육 간의 갈등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가?

(예컨대, 모녀/모자/부녀/부자 갈등)


생각해 보니,

와이프도 지난날 장모님과 자주 다퉜더랬고

나 또한 종종 엄마와 실랑이를 한다.

그럼에도 이를 ‘갈등’이라 이름 붙인 적 없다.

확장 가족에 대해서만 ‘갈등’이라 부르는 이유,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한참 나의 장서 갈등이 깊어질 때

'도대체 나는 무엇을 불편해하는가?'

자문해 보다가 그 답을 깨달았다.

결론은 이랬다.

“호환 불가한 가정 내 의사소통 방식”




돌이켜보면,

장모님과의 소통은 늘 쉽지 않았다.

대뜸 전화를 거셔서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요점만 말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때는 하고픈 말을 빙빙 돌리셔서

못 알아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간 지낼만했던 것은

‘뭐, 원래 저런 분인가 보다’ 생각했기에

내가 먼저 말 한마디 더 붙이며 소통해 왔다.

그만저만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웃픈 사실이지만

와이프와 장모님이 서로 다툴 적에는

중재자 역할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면서부터

연락할 일이 생각보다 많아졌고

일전에는 쉬이 넘겨왔던 모습도

어느 순간 굉장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직무 선후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일례로,

집안일을 바삐 하던 중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 “애들은?” 한 마디 내뱉으신다.

요는 영상 통화를 하고 싶다는 거였는데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기분이 팍 상해

더 바쁜 척하며 끊어버렸다.


‘T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이려고도

무지하게 애써봤다.

감정선이 매우 풍부해져서 그런지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이렇듯 쌍방의 의사소통 방식은

“호환 불가” 판정이 나버렸다.

어쩌면 부부는 서로 초밀착되어 소통하기에

최대한으로 “호환 가능”해지지만

고부/장서 간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장서 갈등의 시대가 도래하였구나!

내 인생에 선임 분과 호환될 날이 올까?

속히 오너라...




슈퍼 N스러운 상상이지만,

먼- 훗날

아빠들이 육아를 전담하는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고부/장서 갈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다.


대신, 장인어른과 사위가 주로 갈등하겠지?

상상만 해도 몹-시 아찔하다.

sticker sticker




장모님,

저와 다퉈주셔서 감사합니다.

- 못난 사위 올림 -

작가의 이전글Ep 1-2. 육아빠의 감정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