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육아빠의 죽다 살아난 썰

비유나 과장 아니올시다

나는 진짜로다가 살아난 육아빠다.




“육아휴직 중입니다”

나를 소개할 때면 보통의 남자분들 반응은 부러움이다. 무려 1년을 쉰다고 말씀드리면 더 많이 부러워하신다. 일에서의 해방을 꿈꾸는 우리네 아빠들, 고생이 참 많으시다.


“와이프가 일을 해요"

그래서 육아랑 집안일은 내가 전담한다 덧붙이면 아빠들 태도가 약간 변하는 듯하다. 괜찮냐, 할만하냐, 나를 걱정해 주는 그 눈빛에는 어느새 부러움이 반감되어 있다.


“육아휴직 너무 좋아요”

그럼에도 뭇 아빠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나. 몇 가지 이유를 대보자면, 우선,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며 새로운 ‘나’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부모’의 의미를 밀도 높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는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나의 첫 직장이다.

회사의 운영 철학과 대표님의 인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지원서를 제출했고, 새내기로 일을 배우며 “나의 뼈를 묻겠다” 야심 차게 다짐했던 때가 기억난다.


말 그대로 덕업일치였다.

하는 일이 나의 성향, 적성, 삶의 지향점과 너무 잘 맞았다. 그래서 혼신의 힘과 열정을 불태웠다. 연차가 쌓이며 역할이 늘었고 선후임 관계를 살뜰히 챙겼다.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어 대학원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열띠게 공부했다.


그렇다고 집에 소홀했던 건 아니다.

짝꿍의 눈가를 볼 적마다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느껴졌기에, 아이들만 데리고 자주 밖을 나갔다. 주말에는 되도록 내가 부엌을 맡았고,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작년 말, 나의 몸이 폭싹 망가졌다.

그전에도 소화불량, 무기력감, 피로감에 자주 시달렸었는데 어느 한 날에 클라이맥스가 찾아왔다. 이유 모를 복통, 작은 칼로 배를 찔러대는 듯한 고통이 반복됐고 오한과 고열이 동반됐다. 걷기도 힘든 상태로 대학병원에 기어갔던 것 같다. 결국 간농양 진단을 받고 3주 입원을 했더랬다. 주치의 말로는 간에 고름이 가득 차서 아픈 거라며, 30대 발병률이 매우 희박한데 술담배도 안 하고 별다른 지병 없는 사람이 참 안타깝게 됐다고 하신다.


억울(?)할 틈도 없이 온몸으로 통증을 받아냈다.

그저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항생제 주사만 연신 맞아댔다. 마치 좁디좁은 철제 우리에 갇혀 있는 닭이 된 것 같았다. 간신히 일어나 병원 밥을 입에 밀어 넣고 그대로 누워 또 통증을 견뎌냈다. 어질어질, 비몽사몽, 24시간 내내 고통은 찾아왔다. 그렇게 체중이 10kg 빠졌다.


동시에, 심각하게 부풀어 있던 자아도 가벼워졌다.

소위 '자기 존재 증명의 욕구'가 큰 편이었다. 나라는 놈의 쓸모를 끊임없이 입증하려는 욕구 말이다. ‘나니까 이 정도 하는 거야’ 혹은 ‘나 아니면 안 돼’ 스스로를 영웅화하는 착각에 톡톡히 빠져 몸과 마음을 200% 갈아 넣어야 만족해하는 경지, 그 모든 게 병 앞에서는 부질없었다. 덕업일치도, 가정적인 모습도, 어디까지나 건강한 ‘나’만이 수행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육아휴직을 결심했던 것 같다. 살기 위해서, ‘나’를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결국은 살아났다.

생전 처음으로 머리도 길러보고 러닝도 시작했다. 책도 실컷 읽고 브런치에 글도 쓰기 시작했다. 죽어가던 게 고작 1년 전이지만 체감 상 5년 전쯤으로 느껴지는 건, 그만큼 임팩트가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나'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일까. 죽어가던 옛 '나'를 제3의 시점에서 쳐다보며 글을 써내려 가는 것 같다.


뭇 아빠들에게 약을 팔아본다.

육아휴직은 새로운 ‘육아’의 세계로, 그리고 매력적인 ‘휴직’으로의 초대가 맞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나'를 찾아가는 시간, 즉, 지금껏 스스로 정의 내렸던 ‘나’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혹시 바쁘다 바빠 현대인 부모시라면, 치열하게 살며 몸과 마음을 불사르고 계시다면, 그래서 ‘나’를 잃어가는 공허감이 드신다면, 감히 육아휴직을 추천합니다.


물론 육아는 참으로 어렵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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