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6. 1년 차 육아빠, 2년 차로 연장되다

두 아이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나는 2027년 2월까지 육아휴직을 하게 된 육아빠다.




지난달, 다니고 있는 회사에 다녀왔다.

간만에 반가운 인사들을 나누었고, 대표님을 만나 올해 거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결론적으로, 첫째에 이어 둘째의 육아휴직도 이어 쓰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1년 차에서 2년 차 육아빠로 연장된 것이다. 사측의 드넓은 배려에 연거푸 감사를 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를 오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했다(?).

작년 3월 육아휴직 들어가기 직전에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를 와서, 그동안 지하철로만 다니던 서울의 회사를 빨간색 버스를 타고 오갔다. 분명 지옥철도 험하디 험했으나 빨간색 버스에 비할 게 아니었다. 집에서 한참 걸어가야 정류장이 나오고 1시간 남짓 도로를 달리다 보면 결국 지하철로 환승을 해 또 걸어야 했다.


그래서 금방 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아침 9시 아이들을 등원시키자마자 버스를 탔음에도 금세 하원 시간을 맞추느라 부랴부랴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그날따라 아이들과 보내는 오후가 참 피곤하더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하시는 워킹대디와 워킹맘들, 존경 또 존경합니다...




새해가 밝았다.

라기엔 너무 늦었지만 나의 브런치에는 올해 첫 글이다. 산소호흡기와도 같았던 글 쓰기 작업이 뜸해진 걸 보면 뭔가 숨통이 트였나 보다. 아내랑도 더 깊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주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통하다 보니, 나의 답답했던 육아 일상에 밝은 해가 떠오르는 느낌이다.


작년에는 딱 2가지 목표를 잡았더랬다:

[머리 기르기]와 [러닝하기]. 그 결과, 둘 다 달성 성공! 어린이집을 가면 장난스레 ‘아이들 아버님’이 아니라 ‘아이들 어머님’으로 부르시곤 한다. 그리고 놀이터 꼬맹이들은 “왜 여자가 아닌데 머리를 길러요?”라고 종종 묻는다. 러닝은,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여전히 하고 있다. 뜀박질이 세상에서 가장 싫던 사람인데 죽다 살아난 경험이 나를 바꿨나 보다.


올해는 아무런 목표도 잡지 않았다.

연초에 늘 목표를 잡아왔으나 왠지 모르게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아이들의 템포에 맞춰진 걸까. 여하튼 마음은 편하다. 다만 확실한 건 내년 2월 육아휴직이 끝날 즈음이 되면, 비록 어떤 목표를 세우지 않았음에도, 이루고 성취하고 커있겠지. 직장 생활과는 또 다른, 육아와 가사만의 스릴러와 서스펜스가 있기에 몸소 이 고비들을 받아낼 테니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작금의 일상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기에 나의 살림살이가 과연 사람을 살리는지, 아이들이라는 꽃이 나의 양육으로 인해 자유롭게 피어나는지 혹은 인위적으로 조정되는지, 매일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니, 소소한 목표가 하나 있다:

[doing 말고 being 하기]. 그간 열심히 해왔던 ‘무언가를 하는 것(doing)’은 잠시 멈추고, 다만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being)’에 집중하고 싶다.


개인적인 언어로는,

종교인 행세는 그만두고 예수를 직접 따르는 것, 교회 어른들이 설파하는 신앙이 나의 것이라 착각하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하여 비대해진 자아를 다이어트하는 것, 생겨 먹은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다.


말로 뱉어보니 결코 소소하지 않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doing의 목표는 애를 쓰고 열심을 다해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being, 사람의 존재란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 거창하지 않고 아주 소소하게, 오늘 하루를, 지금만이라도 그렇게 살아보자. 그리고 내일도... 이 씨름들이 모여 내년 2월 나의 존재가 되겠지.




아이들아, 너희를 통해 존재가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빠에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 2년 차 육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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