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도올심득 동경대전>
*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내가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 탓에 훗날 대선주자가 된 한 정치인이 유감을 표하는 공식 입장문까지 내게 되었었다. 그 책은 바로 <도올심득 동경대전 1 - 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이다. 이 해프닝 덕에 도올 선생의 책이 좀 더 많이 읽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필명은 확실히 많이 읽혀서 당시 실검 10위 안에 오르내렸다. 기회를 틈타 작성한 장문의 리뷰도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했었다. 아래는 2014년 무렵 작성한 당시의 글을 지금에 맞게 조금 다듬은 글이다 : )
무엇으로 역사를 들여다 볼 것인가
도올 선생의 책 중에는 종종 서문만 있고 본문은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것들이 있다. 아마도 이 책 역시 그런 책의 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동경대전'이라는 제목 탓이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이 후계자인 해월 최시형에게 남긴 동학의 바이블이다. 독자들은 아마 이 책을 통해 그 바이블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겠지만 책을 펼치면 '조선사상사대관'이라고 하는 146페이지의 기나긴 서문을 만나게 된다. 책의 부제인 '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는 바로 이 '조선사상사대관'이라는 글의 핵심 주제에 해당한다.
이 책은 동학이라는 계기를 통해 단군 이래 우리 민족 속에 맥맥히 이어온 민본(民本)사상 - 도올 선생은 여기에 '플레타르키아' 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 과 서양중심적 근대(modern)를 되짚어본 책인 것이다.
우리는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 라고 하는 마르크스에 의한 역사 단계 구분법에 익숙하다. 이 구분법에 따르면 '근대'란 서양(정확히 하자면 기독교의 지배 하에 있었던 서로마 일대)의 암흑시대를 극복하고 인간의 '합리성' 회복되고 고양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근대'를 통해 서양인은 기나긴 종교의 비합리적 질서 속에서 벗어났고, 과학이 싹을 틔웠으며,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 인권과 정치개혁에 대한 의식이 발현되었다. 근대를 거쳐서야 비로소 서양은 이른바 미개한 상태에서 문명으로 진보한 것이다.
역사학계는 우리'도' 근대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갑신정변과 동학민중혁명, 갑오개혁 등에서 '근대'로의 대전환 시도를 읽었고, '실학'이라고 카테고리 지은 유학자들을 통해 '근대정신'을 발굴해냈다. 고려시대를 봉건왕조로 무리하게 끼워 맞췄고, 조선시대에서도 비근대적 요소들을 구태여 부여하려 했다. 서양의 사관에 무리하게 우리의 역사를 끼워 맞춰보려는 일련의 시도들이었다.
도올 선생은 이러한 역사학계의 기존의 노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역사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변한다. '실학'과 같은 만들어진 개념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하며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전환되기 전까지도 뚜렷하게 그 영향력을 발휘했던 '성리학'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외친다.
공자와 민본
성리학(性理學)은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학이 발전된 학문으로 인간의 본성과 사고작용을 탐구하는 것을 통해 생과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자했던 학문이다. 서양철학으로 말하자면 일천 년에 걸쳐 계속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대립과 같은 것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진실의 그림자일 뿐이며 진정한 것은 이데아로서 저 너머에 독자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에게 반기를 들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야 말로 진실한 것이며 각각의 개별적인 것들 사이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어서 마치 별도의 무엇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사람의 인식이 만들어낸 개념 '보편자'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아 우리가 '붕당정치'라고 오인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 삶의 유동성(氣)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일정한 규칙과 보편적인 도덕성(理)을 정립하고 끊임없이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가 라는 두 철학적 신념의 역동적인 토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그 역동적인 토론을 통해 균형과 건강성을 유지했던 사회였으나, 오히려 조선 후기 들어 두 사상 간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조선왕조 역시 무너지고 말았다.
공자는 이미 기원전에 서양이 근대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주제를 고민하고 실제로 그것을 극복할만한 사상의 위대한 탑을 쌓아 올렸다. 공자는 종교적 샤머니즘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을 인간이 '근본'이 되는 인문학적 세계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공자의 유학은 서양 근대정신의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
서양의 합리, 동양의 합리
하지만 서양 근대정신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합리성'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합리성과는 상이한 철학개념이다. 서양의 합리성은 불변하는 세계의 법칙, 영원한 준칙, 인간의 몸이라고 하는 내재적 구조를 뛰어넘어서 저기 어딘가에 명백하게 존재하는 초월적인 무엇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서양이 중세시대를 통해 우러러 보았던 '신'에게서 '인격성'을 지워버린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서양의 정신을 대변하는 철학자 플라톤은 일찌기 비인격적 신성에 '이데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플라톤의 선배라고 칭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의 철인 피타고라스는 수학이야말로 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여겼다. 오류가 없는, 완전한 정답이 존재하는 수의 세계, 그것이 서양의 정신이 오래 추구한 리(理)의 세계였다. 서양의 합리성이란, 바로 그 무오류의 우주적 리에 합치하는 판단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공자의 유학과 성리학, 그리고 우리 민족이 태어나면서부터 체득하고 있는 '합리성'이라는 감각은 서양식의 보편적인 기준에 부합하려는 무엇이 아니다. 얼마나 그 변화하는 상황들에 알맞게 상식적인 행위(행동과 발언, 또는 작문)를 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곧 우리들의 합리성인 것이다. 도올 선생은 이를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합정리성(合情理性)이라고 말한다. 변화하는 실제의 세계에도 맞고, 보편적인 원리에도 맞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항상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사고를 돌아보는 것을 통해 수신을 이루고, 변하지 않는 원칙에 갇혀 있기 보다는 항상 새로와지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지금 때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강조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상의 대전제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고, 이를 통해 백성이 근본이 되는 '민본사상'이라고 하는 정치 사상이 탄생한 것이다. 맹자는 공자의 '민본사상'을 누구보다 실제의 제도로서 구현하려고 힘썼고, 그 맹자의 적통을 잇고자 한 것이 바로 조선왕조의 실제적 개창자인 '삼봉 정도전'이다.
'정도전'이라는 오래된 미래
정도전은 왕족들과 문벌귀족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와 백성의 전반적인 삶을 돌보기보다는 불교를 통해 개인적 구원만을 추구하는 지도층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두 가지의 큰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신권에 의해 왕권이 규제되는 정치제도, 또 하나는 불교라는 종교가 구심이 된 종교 중심 사회에서 상식이 중심이 되는 인문사회로의 대전환이다. 전자는 <경국대전>을 통해 후자는 <불씨잡변>을 통해 각각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정도전이 꿈꾼 사회는 '상식을 갖춘 백성(民)'이 그 중심에 서는 사회였다. 이는 당시 세계사적으로 볼 때도 혁신적인 변혁이었다. 물론, '민본사상'은 앞서 밝혔듯이 공자에 의해 인류사에 일찍이 출현한 것이다. 허나 그것을 실제적으로 사회에 제도로서 구현시키고 500년 이상을 지속시킨 사례는 거의 조선이 유일하다.
이방원에 의해 애초에 정도전이 수립한 수준의 강력한 신권의 구현은 좌절되었지만 신진사대부 세력의 정신 속에 남아 있는 '민본사상'에 대한 강력한 열망은 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조선의 왕은 그 어느 군주국의 왕보다 신권의 감시 하에 놓이는 왕이 된다. <불씨잡변>은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냈고 한민족의 샤머니즘은 사회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물러나고 예와 상식이라는 인문주의에 안방을 내주게 된다.
유럽을 중심에 둔 서양 사회의 왕에게는 백성을 돌본다는 의식이 희박했다. 그들에게 '왕의 자리'는 응당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이었으며, 백성들은 누구나 왕이 부릴 수 있는 신하이자 노예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동일한 피를 나눈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다. 그전에는 대게 전쟁을 통해 빼앗은 영토에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중앙정치는 지방정치에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국가제도라는 것의 수준은 겨우 조세제도나 군역제도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서양의 경우 이런 처절한 반민중적인 역사가 1000년 이상을 지속되었기 때문에 강렬한 인권의식의 성장, 피를 동반한 민중의 봉기가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처절한 민중억압의 암흑시대를 박차고 생겨난 것이다. 흔히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현대 민주주의 시초로 보지만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는 선택된 소수의 폴리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엘리트 민주주의이며 대표자를 뽑는 방식에 있어서도 제비 뽑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매우 낮은 단계의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한 모델 혹은 개념을 제공했다는 의의는 가질 수 있지만 '원조'라고 부르기는 민망한 것이다.
근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권 존중'과 '권력 분립(소위 삼권 분립)'에 있다. '인권 존중'은 종교의 권위에 의해 인간의 권리를 마음대로 박탈할 수 있었던 중세에 대한 반발이다. 종교 재판 사회에서 법과 제도와 상식에 의한 재판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권력 분립'이란 영토를 지배한 강력한 지배자가 제멋대로 통치할 수 있었던 사회에서 모든 권력이 서로를 견제하며 누구도 마음대로 세상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서로의 잘못을 살피고 바로잡아야 할 책무를 가지는데 이 잘잘못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이렇게 보면 묘하게 정도전이 개혁하려고 한 조선 사회의 그림과 서양의 근대가 겹쳐진다. 이것이 우리가 도식적으로 우리의 역사에 서양의 고-중-근 역사구조를 대입하면 안 되는 까닭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정도전의 이상 사회는 비록 후기에 들어 지도층의 오판과 서로를 견제하는 장치의 균형성 상실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우리 사회에 심어놓은 인문 교육에 대한 열망과 백성이 중심이 되는 사상은 동학에까지 맥맥히 이어졌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와중에 더욱 단단해졌다. 결국, 대한민국 건국 이후 세계의 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도 빠른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을 이룩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가 불과 50여년 만에 서양의 수 백년에 걸친 민주주의를 따라잡았다고 일컫지만 기실 그 저변의 의식은 우리가 되려 서양보다 빨랐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 제도에 있어서는 서양의 양식을 - 대체로 미국의 양식을 - 따르고 있지만 그 사상의 기층에 있어서는 유교적 '민본사상'을 본으로 두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서양의 '합리성'은 수학적인 합리성이다. 그에 반해 우리네의 합리성은 정서적인 요소를 상당 수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분명 대통령제 국가에 살고 있지만 그 의식의 저변에는 조선왕조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왕을 동일 시하는 정서가 여전히 민중의 기층 의식 속에 남겨져 있고, 법과 제도에 의한 심판에 앞서 '인지상정'을 우위에 두는 판단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 사회와 그 속의 민중을 보면 정확하게 조선왕조가 연장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듯이, 우리 민중에게도 그 정도는 매우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정도전의 세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도전이 수립하고자 했던 도의는 대부문 망실된 채. (*2014년 박근혜 시대 상황)
그럼, 이대로 가는 것이 좋을까. 우리는 여전히 심층의식 속에서 퇴락한 왕조의 백성으로 살아가도 좋은 것일까. 도올 선생은 <도올심득 동경대전 1>을 통해 다만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을 소개하며 책을 닫는다.
최수운은 남인계열 유학의 적통을 이어받아, 그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체계의 사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곧 '동학'이고, 동학은 '개벽'이라는 전면적 심성의 대전환을 통해 정도전이 도달하지 못한 '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를 소망한다. 수운은 결코 공산주의자들처럼 폭력혁명을 통한 개혁을 말하지 않았다. 수운은 백성들 하나 하나가 스스로가 곧 '하늘'임을, 우리들 스스로가 곧 이 세계의 본(本)임을 깨닫는 데서부터 새로운 사회가 출현할 것이라고 설파한다. 이 세계의 주권이 통치자가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에게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186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51년이 지났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도전이, 그리고 동학이 꿈꾸었던 그 사회에 조금은 가까워져 있는가. 우리는 이 세상의 주권자이며, 우리 삶의 주인이며, 천리(天理)를 - 혹은 정의를 - 실천하는 주체로서 살고 있는가. 글쎄, 나는 왜 부끄러워지는 걸까.
2014. 2. 20. 멀고느린구름
* 2019. 9. 18. 일부 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