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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Apr 23. 2020

페이퍼 출판사, 페이퍼클라우드

1인 출판사 '페이퍼클라우드' 분투기

페이퍼 출판사, 페이퍼클라우드


나의 작은 출판사 '페이퍼클라우드'는 2015년 12월에 태어났다. 잠시 몸을 담았던 회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들의 스토리텔링 업무를 마무리한 뒤, 새로 입사한 안하무인의 꼰대 팀장을 견딜 수 없어서 사표를 내 실직자로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경상북도 안동의 경북콘텐츠진흥원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전 팀장에게서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1인 기업 두 개를 각각 설립해서 서로 협업하며, 지역 스토리텔링 사업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건이 계약이 되어 있으니 돈을 투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는 호언장담했었다. 3개월 뒤에는 돈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믿고, 3천만 원 가량을 빌려주고, 내 명의의 작은 출판사 '페이퍼클라우드'도 설립했다. 사실상 이름과 서류만 있는 회사였다. 회사가 곧 나이고, 내가 곧 회사인 상태였달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업은 폭망했다. 분명히 내가 여러 가지 아이템들로 상당한 금액의 지원금을 확보해주었으나, 분명 기업 경영의 초보에 가까웠던 그는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고, 오히려 회계상의 다양한 실수를 범해 거꾸로 내 개인 돈을 쏟아부어 수습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개월 뒤 3천만 원을 돌려주겠다고 장담했던 그는 슬그머니 자체 상환 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말았다. 나는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신용회복위원회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우울한 낮빛으로 대기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여러 차례의 수정 끝에 탄생한 '페이퍼클라우드' 로고



페이퍼클라우드 리부트


신용불량자 신세에 빚더미를 등에 짊어진 채 나는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며 겨우 버텨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기왕 망한 인생! 하고 싶었던 거라도 전부 다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독립출판 제작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찾아가 듣고, 처음으로 직접 책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기획했던 책. 바로, <오리의 여행>이었다. <오리의 여행>은 내가 대안학교 교사 시절 안면도에서 발견한 작은 오리 인형의 몸 속에, 조류독감으로 희생된 오리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이라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별첨한 발간에세이에 쓰여 있다.)


짙은 절망 끝에 탄생한 연한 희망, <오리의 여행>



2017년 겨울, 원데이 클래스 수업의 과제물격으로 제작한 나의 첫 독립출판 책 <오리의 여행>은 전국 아홉 곳의 독립서점에서 따뜻한 독자들을 만났고, 여전히 만나고 있다. 버킷리스트의 한 항목을 지우는 기분으로 시작한 독립출판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마다 우리나라의 어느 곳, 누군가가 이 책을 구매해주었다는 메일을 받으면 힘이 났다.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오리와 여행을 계속해나가며, 더 좋은 책들을 만들어야지 하는 각오가 점점 더 강해졌다.


이후, 생계와 빚 청산을 위해 내가 기획한 책보다는 다른 단체가 의뢰한 책을 만들어주는 작업을 많이 진행하게 되었다. 덕분에 인디자인 툴을 다루는 데는 꽤 능숙해졌지만, 늘 언제 내 책을 만들지 하는 목마름이 있었다. <오리의 여행 2>는 원래 2018년에 나올 계획이었지만 여러 생활의 고충에 밀려 끝도 없이 발간이 미뤄졌다. 기다리는 분들에게 연기 소식을 알리는 것조차 민망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미루고 미루다 올해 2월 드디어 책을 출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터지고, 준비한 모든 조건은 다시 0이 되고 말았다.


새삼 깨달았다. 모든 조건을 맞춰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가는 결국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되고 말 거라는 것을. 인생은 완벽을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의 큰 실패를 겪으며 나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위축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일단 시작하자. 저지르자.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자!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기로 했다.


<오리의 여행 2>는 이제 정말 5월에는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기필코 : )



2020. 4. 23. 멀고느린구름.


* <오리의 여행> 1, 2권 온라인 구매처


별책부록 (서울 해방촌)

https://byeolcheck.kr/productSearch?productSearchKeyword=오리의%20여행 







<오리의 여행 1 - 멀리, 아주 멀리까지로> 발간에세이


『오리의 여행』 시리즈는 2012년 봄, 서해의 섬 '안면도'에서 아기 오리 인형과 만나면서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 오리 인형은 대안학교 교사였던 제가 초등과정 아이들과 봄소풍을 떠나 묵었던 안면도의 한 숙소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수많은 생명체가 '살처분'이라는 명목하에 산 채로 매장되었습니다. - 통계에 의하면 현재까지 18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학살을 당했습니다. - 버려진 아기 오리 인형을 보며 저는 문득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오리의 영혼이 똑같이 사람에 의해 버려진 이 아이 속에 깃들어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 오리를 식품이 아닌 생명으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거야."


저는 제 어린 제자들이 아기 오리 인형과 함께 자라나며 오리를 오리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아기 오리 인형을 대안학교의 반려 인형으로 삼았습니다. 아기 오리는 어린 아이들은 물론, 중등, 고등 과정의 언니, 오빠들에게도 듬뿍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아주 여리고 작을지는 모르지만 오리를 오리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마음의 싹이 자라났으리라 믿습니다.


단지, 오리뿐만이 아니라 소와, 돼지, 그리고 닭까지. 우리가 어느 순간 그저 식품으로서만 대하게 된 이 생명체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회복될 때야, 저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에게 떳떳한 미래가 있으리라고 여깁니다.


대안학교 교사직을 내려놓은 뒤, 우리나라 곳곳과 우연한 기회로 해외까지도 아기 오리 인형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공장식 축산에 의해 양산되며 좁은 사육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어갔을 오리들의 원혼을 달래고자 한 제 나름의 진혼제였습니다. 오리는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 새입니다. 시베리아 산맥을 넘기도 하고, 태평양을 횡단하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앞으로도 아기 오리 인형과 "멀리, 아주 멀리까지로" 가보려 합니다.


겨울을 견디고 봄날에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꽃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봄은 멀고 다시 겨울이 다가옵니다. 멀리 있는 봄에 닿을 때까지 모쪼록 『오리의 여행』이 여러분께 이 겨울의 개나리꽃 같은 책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17. 11.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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