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본 지는 한 주가 조금 지났지만, 리뷰는 항상 생각을 정리하고 써야 한다는 마인드라 이제서야 바비 리뷰를 적어본다. 개봉 전부터 세트장에 대한 기대가 컸고 코믹하고 통통 튀는 영화라는 예감이 들어서 큰 부담 없이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다소 어린이 영화 같은 플롯이지만 바비가 어린이 인형이라는 점에서 걸맞은 이야기 전개와 연출이었다. 주인공이 바비인데 무게를 잡고 심오한 분위기를 뿜을 순 없지 않은가. 12세 용 페미니즘 책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학습 만화처럼 평이하고 쉬운 설명이 가득해서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도 이해가 쉬웠다. 바비를 포함한 여성이 주인 바비랜드를 살던 '전형적 바비'가 자신을 갖고 놀던 주인 여자아이와 생각이 연결되어 느낀 적 없던 우울감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낀 후 인간 현실 세계로 가서 그를 만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애니메이션 같은 플롯은 나 같은 북미 애니메이션 선호자에겐 익숙한 흐름이었다. 잘못하면 다소 유치한 B급 영화가 될 수 있었는데 마고 로비의 연기가 극의 사실감을 높여서 몰입하기 좋았다. 현실 세계로 가서 눈을 감고 한 여자아이의 생애를 돌아보며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배우의 힘은 참 대단하구나 하며 감탄했고 짧은 시간 안에 눈물 한 방울을 흘릴 뿐인데 주인공의 감정이 내게도 전달이 되어서 영화의 생략된 설명을 마고 로비의 표정으로 바로 읽을 수 있었다. <바빌론>에서부터 생각했지만 마고 로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 이미지를 넘어 뛰어난 감정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진정한 '외모에 가려진 천재적인 재능'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배우다. 그가 할리우드 탑배우인 만큼 나도 그의 필모그래피를 많이 접했는데, 마고 로비는 자유롭고 활동적인 캐릭터와 여성들의 고충을 다룬 이야기를 선호한다는 걸 내심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바비를 통해 마고 로비는 자신의 외모의 장점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절히 섞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배우임을 뚜렷이 증명해 낸단 걸 알 수 있었다.
초반부에 발이 처음으로 땅에 닿았다며 다른 바비들과 경악하는 모습은 현실 속 우리가 보기엔 참 우스꽝스러운데, 바비 랜드에선 하이힐 신은 까치발이 기본값이고 그로 인해 신체적 피로를 감수하며 남들 눈을 의식한 불편함이 아니란 것을 알고 나니 그들 눈엔 이상 현상 그 자체가 맞았다. 현실로 치자면 평평한 발로 살다가 생애 처음으로 불편하고 발목 아픈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날과 비슷하지 않을까. 바비 세상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자주 하던 <심즈> 게임이 생각난다. 그 게임에선 어떻게 입고 다니든 그건 평판과 직접적인 연관이 생기지 않았는데 바비 랜드도 일상에선 조금 튀는 강한 색상의 옷들과 액세서리를 해도 아무도 그게 당신과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냥 그 바비가 하면 그 바비의 스타일인 세계였고 그렇기에 꾸민다는 행위가 노동이 되지 않았다. 또한 바비 랜드는 창문이랄 게 없는 사방이 뚫린 집에서 씻고 자는 것도 어떠한 삶의 위협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생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인형'만 할 수 있는 일들이 가득하여 현실 세계와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모두가 남의눈을 신경 쓰지 않는 '인형'의 세계와 남들과의 상호 작용이 중요한 '인간'의 세계에서 자유도의 차이가 다르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흔히 생각하는 '인형'의 부정적인 메타포가 배제된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렇듯 <바비> 영화는 내게 단순한 실사 영화를 넘어서 현 사회를 돌아보는 포인트를 주는 영화가 되었다.
사실 이미 깔끔한 평론들이 많이 나온 영화라 내가 이 영화에서 나만의 특별한 시각을 선보이긴 어렵지만 어차피 내 감상을 정리하는 용도이니 이어서 서술해 보겠다. '걸스 나잇' 장면 후 켄이 현실 세계에 간 후, 가부장제를 알고 켄들에게 전파하여 탄생시킨 '남자들의 밤'은 앞 선 '걸스 나잇'과 비교하면 각기 다른 성별의 욕망이 뭔지 엿보는 장치로 볼 수 있다. '걸스나잇'에선 바비와 켄이 다 같이 춤추고 음악을 즐기는 반면, '남자들의 밤'은 게임과 큰 함성을 지르며 바비들의 시중을 마음껏 받는 시간이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라이언 고슬링 켄은 그동안 대접을 받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현실에서도 '걸스나잇'은 말 그대로 여자들끼리만 즐기는 파티인데, 왜 '남자들의 밤'은 시중드는 여자가 빠지지 않을까? 같은 집단끼리 즐기는 콘텐츠가 그들에게 신선한 흥미를 주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항시 권력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서 단편적으로 여자들을 배치하는 건지 그 심리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현시대에 오랫동안 뿌리 박힌 가부장제에선 남자들이 자신의 힘, 권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당당히 받을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다른 남자들과의 차별성, 신체적인 우월도, 재력을 드러내야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가부장제'에서 노골적으로 보일 수 있는 과시는 아직까지 여자들의 섬김이다. 아마 현실에서 그 원리를 보고 깨달은 켄도 바비 랜드로 와서 그 점을 빠르게 선보이고 싶으니 '남자들의 밤'에 바비들을 곳곳에 하인처럼 배치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부장제 또한 조건이 성립돼야 다루기 편한 제도이다. '마초'적인 성질이 약한 남성들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다면 이러한 '남자들의 밤'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맨 박스'가 강한 게 지구촌 사회라 남성들도 그들이 진정으로 그들 자체로 인정받는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그리질 못한다. 그래서 게이 하면 생각나는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도 아직까지 있고 남성들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서로 검열하고 멸시하고 있다. 영화 후반에 오른 쪽에서 두 번째 켄이 '나는 그런 거 관심 없어. 난 그냥 내 친구 바비가 그리워.'라는 대사를 하는 거 보면 감독도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기보다는 그저 같은 존재로서 살아가도 좋다는 뉘앙스도 어느 정도 넣은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어떤 남성들은 고착된 성 역할 말고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다른 성별과 사회를 이루길 바라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핑크빛 영화가 흥미로워 관람하러 온 남성들이 이처럼 고정관념 말고 다른 관점도 그들에게 또 다른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낀다면 이 영화에서 얻어가는 게 있을 거다.
전반적으로 영화에서 말하듯이 '바비 랜드'이기에 켄은 바비를 제 머리에 중심으로 두고 행동한다. 바비가 현실로 가는 여정을 택했을 때 뒤따라오고 걸스나잇에서도 바비의 시선을 받으려 하고 가부장제를 전파하여 켄 중심 주의로 바꿨을 때도 전형적 바비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부담감 제로 여자 친구가 돼주겠다는 바비의 말에 아닌 척 좋아하던 켄의 모습에서 명백히 드러났고 바비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켄'들에게 관심을 주자 켄들 끼리 분열할 때도 쉽게 그들의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간 바비 중심 사회에서 살았으니 하루아침에 바뀐다 해도 바비의 관심을 잃을 순 없었을 테다, 그게 평생의 존재의 이유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한 캐릭터 성격을 라이언 고슬링이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지 볼수록 켄 그 자체로 보였다. '바비 인형을 사면 옆에 있는 인형'이라는 정체성을 어쩜 저리 잘 연기하는지.... 캐스팅 후 있던 논란을 잠재울 만큼 싱크로율이 높았다. 주체성이 결여된 캐릭터의 행동들을 관찰하며 묘하게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또한 켄이 의존적일 땐 그를 타자화해서 바라보다가 중반부 후 바비들이 의존적일 때 잊고 있던 불쾌함이 올라오는 걸 보면 그동안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때 강 건너 불구경이지만 내 이야기일 땐 그 온도가 생생하다. 이 영화는 서로의 입장을 한 번씩 뒤바꿔 연출하며 각자의 공감을 끌어올린다. 그러기에 나는 두 시간 동안 양쪽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웃고 넘길만한 코믹적인 장면도 세세히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바비 영화가 다루기 어려운 주제인 '페미니즘'을 다루면서도 위트 있을 수 있던 건 케이트 맥키넌 덕분이었다. 험하게 갖고 놀면 잘린 머리칼과 낙서가 가득한 '이상한 바비'가 되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전형적 바비를 도와주고 쿨한 태도로 친절하게 해결책을 주는 이 캐릭터가 있어서 이야기는 유연히 흘러갔다. 매트릭스를 오마주한 이 장면에서도 정말로 뭔가 많이 알고 있을 법한 '현자'의 분위기를 충분히 풍겨서 웃기면서도 묘하게 그 상황에 홀리기도 했다. 사실 이게 예고편으로 나가서 더욱 이 영화에 관심이 생겨서 보러 간 것도 있다. 바비 되돌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도 군더더기 없는 그의 행동도 플롯 진행에 신속함을 더했고 코미디 영화라는 걸 잊지 않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바비 영화는 이상한 바비의 코믹함과 글로리아의 그간의 내적 갈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춰서 가볍게 보기 좋으면서도 메시지가 퇴색되지 않았다. 특히 글로리아가 세뇌된 바비들에게 들려주는 말들은 어떠한 현상처럼 겪기만 했던 감정들을 자세하고 직관적으로 풀어줘서 그동안 내가 느끼고 있던 모순들을 누군가 명확히 풀어헤쳐준 기분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긴 어딘가 두려웠던 사실들을 자막으로 읽고 나니 잘못된 제도 안에 나를 맞추려는 게 얼마나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많이 드는 일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직도 그 대사가 머릿속에 남아서 내 주위를 맴돌고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도 계속 고민하게 되는 걸 보면 내가 이 영화에 얼마나 크게 공감했는지 날이 갈수록 짙게 알 수 있었다.
바비가 북미에서 7억 달러를 돌파하며 흥행한 이 시점에서 이 영화에 단편적인 거부감을 느낀 이들도 한 번쯤은 보면 좋을 거다. 확실히 요즘 미디어나 해외 시장에서 페미니즘이 두각을 띄고 있단 것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도 어떠한 신선한 발견을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오랜 시간 남성중심 범죄 영화들을 접하며 성적 대상화나 타자화의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었고 나처럼 다른 이들도, 트렌드를 이룬 여성 중심 매체에서 자신들만의 전환점을 찾기를 바란다. 앞서 내내 말했듯이 나는 진정한 평등이 모든 성별에게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생각이니 그대로 나와 다른 길로 나아가면 된다. 나는 그저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다른 관점의 신선함을 제안할 뿐이니 선택은 각자의 자유다. 영화를 보면서 가치를 푸는 방식에서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배웠으니 나도 그렇게 실천해보려고 한다. 살다 보면 대립하는 건 참으로 피곤하지만 각자의 견해를 충분히 들어본다면 결국엔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제시한 합의점이 좋았고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줬기에 만족한다. 꼭 뭔갈 얻지 않아도 좋으니 예쁜 영상미를 구경하고 싶다면 그걸 이유로 이 영화를 보러 가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