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비프> 리뷰

왜 망가진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을까

by 피쉬

근래 들어 할리우드계에서도 동양인 배우들이 주인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고 있다. 덕분에 알게 된 좋은 배우들도 있을 거고 해외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배우의 필모 그래피가 더 늘어서 즐거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저스틴 민의 필모 그래피를 보고 싶어서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되었고 A24라는 제작사에서 만든 것을 보고 한 번쯤 보면 좋은 드라마라는 판단을 내린 후 차근차근 시청했다. 역시 독특한 작품을 많이 만드는 제작사라 그런지 이번 드라마도 내용이 평범하진 않았다. 가진 것 없는 신체 노동이 위주인 주인공 대니는 마트에 자살을 하려고 준비한 물품들을 반품하려다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 뒤 쪽에서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 운전자가 날린 욕설 (흔히 하는 손가락 욕, Fuck you)를 본 후 말 그대로 눈이 돌아버린 대니는 무작적 그 운전자를 쫓아가고 그렇게 둘은 차로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 후부터 끊을 수 없게, 성가시게, 지독하게 얽히는 악연의 내용이 이 드라마다.


대니는 누가 봐도 답 안 나오는 상황 속에, 전과자 사촌, 무직 동생, 백수 친구들과 더불어 살고 대니에게 욕설을 날린 운전자 에이미는 누가 봐도 여유롭고 살만한 환경 속에 있다. 그러나 둘은 마음속 내재된 분노를 매일 키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대니는 타지에 정착해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는 부모님 밑에서의 부담감,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천천히 망가져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자신의 삶에서 늘 억울함을 느끼고 있고 에이미는 역시 부모님의 불화에서 오는 죄책감과 늘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시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조금 철없는 해맑은 남편에게서 오는 우울감에 짓눌리고 있었다. 딱히 어디서부터 인지 정확히 짚을 수 없지만 돌이켜보니 너무 멀리 와버린 내 인생, 그 안에서 둘은 허덕이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잠깐 속에 있는 분노를 표출했다가 그렇게 악연으로 엮이고 만다. 이렇게만 본다면 서로 치고 때리고 갚아주는 복수극이 예상되지만 비프는 그 안에 조금 인간성을 담았다. 대니는 에이미의 차에 불을 지르려다가 에이미 차에 타고 있는 딸 주니를 보고 창피한 듯 놀라며 달아난다. 에이미는 대니의 동생인 폴에게 SNS 디엠으로 자신의 직원을 사칭해 접근하지만 이내 폴에게 자신의 속을 털어놓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성난 황소처럼 돌진할 수 있지만 그 속에 상처투성이인 둘은 누군가 자신을 들여다보면 금방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남들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머저리들 뿐이라고 외치면서도 그들은 사무치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극 중 언뜻언뜻 드러난다. 또한 그들을 둘러싼 이들을 보면 그들의 내면을 진실되게 드러낼 환경이 아님을 단 번에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동정의 눈길만 조금 받고 이내 이상하고 현실감 떨어지는 사람 취급만 받고 끝날게 뻔하다는 걸 에이미와 대니는 알고 있었다.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기에도 팍팍한데 약한 소리를 낼 순 없으니까. 이 문장이 둘의 무의식 아주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이 드라마는 끝에 다 와서야 돌고 돌아서 서로에게 솔직해진다. 에이미가 비위 맞추기에 바빴던 억만장자 조던은 사실 에이미에게 관심이 있어서 에이미의 일처리를 지지부진하게 끌고, 자신의 시누이와 약혼하기도 했고 대니를 질투하던 대니의 전 여자친구의 남편 에드윈은 시종일관 친절하게 날을 세우다가 끝에 가선 엉엉 울며 아내가 네 얘기만 한다며 주저앉는다. 에이미도 남편에게 자신의 부정을 들킨 후 모든 사건들의 원인이 자신이었던 걸 밝히고 대니도 폴에게 너의 대학 지원서를 버렸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추함을 털어놓곤 한다. 이 모든 솔직함은 덮어놓고 있던 문제들이 현실로 들이닥쳐 위기의 상황이 절정으로 가서야 쏟아져 내린다. 살면서 억울함은 많이 느꼈지만 자신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던 대니가 사촌이 벌인 인질극에서 난장판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을 여과 없이 돌아본다. 에이미 또한 은연중에 무시했던 대니를 온전히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며 그에게 깊이 공감한다. 사실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워낙 분노가 가득 찬 둘이라 인질극이 어느 정도 수습된 후 서로를 발견해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추격전을 벌이다 차가 굴러 떨어져 조난이 된 후에야 둘은 제대로 서로를 마주한다. 숲 속에서 독이 든 열매를 먹고 환각을 보던 둘이 서로의 이야기를 바꿔서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진정으로 네 머릿속으로 들어가 너의 입장이 되어 뱉는 이야기, 너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뱉는 모습에서 둘은 다른 환경이지만 닮은 분노와 우울을 안고 살았던 걸 알 수 있었다. 이 리뷰의 소제목은 그 장면에서 따왔다. 둘은 겉은 아닌 척 하지만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그걸 남 탓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회피를 하며 살뿐이었지 그 속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에이미가 날린 욕설에 대니가 크게 발끈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재된 분노는 갑자기 없던 게 생긴 것처럼 펑 터지곤 한다, 실은 그 자리에 늘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늘 완벽한 사회인을 연기하던 에이미가 대니만 엮이면 규칙이 없는 사람처럼 막 나가게 되는 것도 대니 앞에서는 연기할 필요 없는 자신이어도 잃을 게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간과할 만큼 허접한 상대에게 점점 모든 걸 들키듯이 꺼낸 에이미는 결국 대니에게서만 이해받을 수 있었다. 엮일 리 없을 것 같던 둘은 그렇게 숲 속을 헤매다가 다치고 더러워진 모습이 되어서야 솔직하게 서로와 가까워진다. 이 모습은 참 우스우면서도 그 무엇보다 인간다웠다. 다 보고 난 후, 어느 지점에서 이 둘은 돌이킬 수 있었을 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한 번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고자 하면 그때 당장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구간들이 충분했다. 짧은 10부작 속에서 처음 보는 둘의 인간성을 들여다본 나는 이후에는 둘이 제발 자신을 덮어놓고 살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둘 다 자존심도 세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크기에 지금은 솔직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또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어느 정도 느꼈다. 성난 자신을 올바르게 풀어주는 법, 그 방법을 나도 미리 알고 있어야겠다.



시리즈 물이라 에피소드 별로 리뷰를 남기기엔 너무 장황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길게 쓰는 것도 맞지는 않기에 최대한 간결히 내가 느낀 바를 적어 내렸다. 긴박감이 터지는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노와 우울감을 삶으로 빚어낸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비프를 보는 걸 추천한다. 시즌 2는.... 둘의 앞날의 평화를 위해 안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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