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리뷰

거미줄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제 손으로 뽑아내는 히어로

by 피쉬


일주일을 거쳐 두 번의 관람 후 드디어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감상평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전작을 뛰어넘은 미술을 뽑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 이상을 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걸맞게 다른 우주로 갈 때마다 달라지는 기법과 시각 효과가 나를 정말 그 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나게 해주었다. 여기저기 디테일을 관찰하느라 초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고 색감이 강하게 시선을 잡으니 화려함이 주는 재미가 충족되다 못해 넘쳤다. 원래도 색감을 강하게 쓰는 그림들을 좋아했는데 이 영화에는 그 색감을 촌스럽지 않게 트렌디하게 배치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해서 눈이 피로하다는 생각보다는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입장이다 보니 영화 기법에 대한 설명을 안 할 수가 없고 그에 더 눈이 갔다. 원래 삼부작은 2편이 지루하기 마련인데 영상미가 그걸 잡아주니 집중력이 달아나지 않아서 좋았다.


1편에서 유일한 스파이더워먼이던 그웬의 이야기로 영화가 시작되고 유화로 빚은듯한 지구에서 그웬의 스토리를 읽으며 신념으로 인해 가족과 갈등할 때 그웬의 감정에 이입하게 되었다. 그웬의 우주에 피터가 자신을 생체 실험하다 죽고 이를 모른 채 빌런으로 그를 맞이한 그웬의 심정과, 피터를 스파이더워먼이 살인했다 여겨 자신을 쫓는 경찰 서장 아버지와 대면 후 마스크를 벗었을 때 자신보다 신념을 선택한 아버지를 볼 때의 실망감과 절망이 배경의 색감으로 인해 더욱 잘 느껴졌다. 사실 내가 그웬의 아버지였어도 고민이 됐을만한 상황이다. 그가 본 건 피터가 죽은 장면이고 자경단인 스파이더워먼은 자신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니까. 그 실체가 자신의 딸이었을 때, 가족이라고 감싼다면 그가 지금껏 보여준 의지하고 믿을만한 경찰의 모습이 흔들리는 거고 그렇다고 냉정하게 굴면 그웬을 상처 주는 일이 되니까. 본 편에서 그웬의 아버지는 그웬이 실망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그게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언제나 올바른 아버지의 모습이라 여겨 강경하게 나간 듯했다. 비록 오해였지만 자식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그에 맞는 벌을 받게 하려는 것도 이해는 된다. 후에 그웬과 잠시 떨어진 후 다시 재회했을 때, 그웬의 말을 들어준 후 마음이 바뀐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신념도 중요하지만 생의 선물과도 같은 자식의 말을 믿어주는 것도 그가 생각하는 부모의 할 일이었을 거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차를 좁혀가는 것. 그웬과 아버지의 관계를 지켜보며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배워갈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주요 관계 구도를 정리해 보자면,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그웬과 아버지, 마일즈와 미겔, 마일즈와 부모님 그리고 아직까지 스포를 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의 둘. 서로 완전히 틀어져버리느냐, 아니면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가느냐 혹은 아예 다른 해결점에 도착할 수 있느냐 등으로 이 영화는 각자 서로 다른 길을 향해 달려간다. 극 중에서도 그웬은 마일즈의 편이지만, 숙명에 따라 미겔의 명을 따르는데 그에 따른 내적 갈등을 지켜보며 과연 어떻게 하는 게 맞을지 관객도 생각해 보게끔 극은 유도한다. 나는 이에 따라 이야기 속 여러 문제들을 더욱 깊게 몰입해 그들이 되어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걸맞게 새로운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로 긍정적인 성격의 인도 스파이더맨이 나왔다. 사실 스파이더맨은 운명과 사건들로 인해 인생은 기구하고 선의로만 자신을 지탱하는 다소 외롭고 우울한 캐릭터인데 이 스파이더맨은 공식 설정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위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면서도 원래 스파이더맨이 이 성격을 유지한 채로 히어로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소 '아이언 맨'처럼 삼부작 시리즈 안에 갈등과 위기를 해결하고 해피엔딩을 맞기라도 했다면 스파이더맨의 인생도 조금은 살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스파이더맨을 이야기 속 캐릭터로 대하기 때문에 그 캐릭터에게도 인생과 마음이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 캐릭터가 더 큰 고통을 겪고 더 어려운 역경을 이겨낼 때의 카타르시스를 원해서인지 주인공들은 가끔 과할 정도의 스트레스에 직면당할 때가 많다. 이번 영화에서는 스파이더맨도 행복할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내내 전달함으로써, 고통 후 감동보다 주체적인 개척으로 인한 감동을 준다. '꼭 히어로의 각성이 주변인들의 죽음이나 불행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이 주제가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삶 속의 소중한 행복과 은은히 이어지는 평화를 감사하며 천천히 성장하는 히어로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파비트르 스파이더맨을 보면서 생기기도 했다.


또, 펑크 스파이더맨도 나왔는데 이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반항적이고 무정부주의를 추구하는 기질이 색다른 재미를 줬다. 콜라주 기법과 다른 캐릭터보다 프레임 당 페이지 수가 적은 움직임으로 살짝 튀는 모션을 보여주는데 캐릭터의 성질을 미술로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 크게 감탄했다. 스파이더맨은 친절하고 유한 성격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반골 기질에 튀어나온 못 같은 스파이더맨인 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있다는 다른 요소처럼 보였다. 하긴 멀티버스인데 안 되는 게 뭐 있겠어? 스파이더맨이 반항아일 수도 있지!라는 발상이 독특하고 재미나다. 극 중에서도 그웬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이 펑크 스파이더맨 (호비 브라운)은 성격에 걸맞게 변칙점인 마일스에게 알게 모르게 힌트를 주기도 한다. 어쩌면 변수는 운명과 닮아서 그 또한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일스도 그웬도 호비도 모두 운명과 다른 길을 추구하는 걸 보면, 나는 변수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변수라는 사건이 근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번 영화에는 빌런과 싸우지 않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 시작하기 때문에 대립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미겔은 처음으로 공식 설정을 깼다가 한 세계관이 붕괴하는 걸 목격한 스파이더맨으로 이 모든 멀티버스를 통제하고 고치는 일을 하는데 전념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잃어봤기에 마일스를 볼 때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 서게 행동하게 된다. 스파이더맨의 잔인한 운명중 하나인 가족을 잃는 고통을 느껴봤기에 더더욱 다른 세계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마일스가 자신처럼 소중한 이를 잃는 공식 설정을 겪을 걸 알면서도 방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식설정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세계를 없애는 건 그에겐 큰 트라우마니까. 더군다나 자신 때문에 그 세계가 붕괴된 걸 알기에 마일스가 좋게 보이지 않는 것도 납득은 된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스파이더맨 센스가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혈청을 맞아 유지하는 스파이더맨인 걸로 보아, 그에게도 어떠한 사정이 있던 걸로 추측이 된다. 변칙점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인물이지만 자신 또한 공식 설정과 미묘하게 다른 변칙점 중 하나라는 걸 미겔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변칙점끼리 서로 대립하고 주어진 대로 살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라는 두 가지 입장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때 둘 사이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모순을 발견했을 때 이 영화의 촘촘한 이야기 설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1편에도 빌런의 복선을 넣은 장면이 있던데 이미 스토리 라인은 어느 정도 짜였을 걸로 예상되는데 정말 다음 편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보면서 주인공 말고 다른 주요 인물들의 삶까지 세세하게 전부 알고 싶어지는 영화다.



쓰다 보니 빌런 얘기나 기존 인물얘기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압축하기로 결정했다. '스팟'이라는 빌런은 말 그대로 '구멍'인데 이 말은 암만 촘촘하게 거미줄처럼 짜여진 운명이라도 반드시 '구멍'은 있단 말일까? 스팟은 검은 홀을 이용해 여러 멀티버스를 맘대로 오가는데 이는 미겔이 만든 멀티버스 통제 기관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물론 개인적 이윤 추구와 대의를 위한 기관이라는 차이가 분명하지만 닮은 것은 분명하다. 같은 힘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빌런이 될 수도 있고 히어로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까 하고 혼자 파고들게 되었다. 이런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피터 B파커와 마일스 와의 끈끈한 부자지간을 닮은듯한 사제 관계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고 오랜만에 만난 애런 삼촌도 1편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달라졌을까?라는 사소한 물음이 뻗어서 만들어진 멀티버스라는 설정은 어떻게 보면 참 낭만적이면서도 슬프기도 하다. 다른 세상에 우린 좀 다를 거야 라는 말은 뜬구름 같은 말이 아니라 이젠 아련한 위로처럼 들리기도 한다. 수많은 멀티 버스 영화를 보면서 내 세상은 어떤 선택으로 갈래길이 펼쳐질지, 현재의 선택은 어떻게 내리고 그걸 어떻게 소중히 여길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히어로의 숙명을 멀티버스로 엿보면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니, 이래서 영화를 보는 게 참 좋다. 사람의 삶은 각자 너무 다르지만 조금씩 뜯어보면 얄팍하게나마 닮은 것 같다.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리뷰를 쓸지 아니면 아껴둔 영화를 보고 쓸지 고민 중이다. 시간 되면 1편을 본 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는 걸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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