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왜 이 영화는 여름에 개봉했을까? 계절 배경도 겨울이고 디스토피아 설정의 차갑고 피폐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활기찬 여름 극장판과는 시간대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끌리지 않아 이 영화를 미루다가 여러 평들이 나오는 걸 보고 한 번을 봐야겠다는 나의 지적 허영심이 발동하여 이 영화를 관람했다. 아마 여기 쓰는 리뷰는 처음으로 호감적이지 않은 평을 담은 글일 거다. 영화의 설정이나 스토리에 흥미로운 점은 많았으나 나에겐 아쉬운 점과 지루한 점이 조금 더 큰 영화였다.
일단 이 영화는 설정 자체는 신선하다. 한국 사회에 산다면 누구나 알 법한 아파트에 대한 집착과 사전 배경이 실감도를 높였고 대지진으로 닥친 재난 상황 중 한 아파트만이 무너지지 않아 아파트 주민과 외부인들과의 대립을 그려낸다는 구조는 궁금증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아파트의 등장과 그것이 갖는 의미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도 관객들에게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아파트라는 중요 배경을 각인시키는 데 충분히 실용적으로 잘 배치하였다. 그렇게 아파트의 재물 적 가치를 높여놓고 바로 재난이 닥친 상황을 보여주면서 딜레이 없이 바로 본 이야기를 들어가는 것도 전개가 초반에는 빠르게 흘러가서 보는데 편안했다. 주민 캐릭터들도 각자의 배경이 살아있고 학군, 전세, 자가 등등 집 구해본 한국인들은 바로 알만한 단어들이 바로바로 치고 들어오면서 입주민들의 보상심리도 공감이 잘 되었다. 재난 후 외부인들을 받아주었으나 그 외부인들의 대다수는 다른 아파트에 현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를 무시했던 사람들임을 주민 회의에서 알려주고 줄어드는 식량과 생존 본능의 압박으로 조금씩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억지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나도 '외부인들을 내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무턱대고 내보냈다가는 뒷감당 해결이 어려울 게 뻔하여, 외부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대신 생존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저 상황이 되면 하루라도 더 나만, 내 주변만 더 살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 선뜻 입주민들을 비난하기는 어려웠다. 영화는 외부인들을 이병헌 역을 이용해 얼떨결에 모두 내쫓고 그들만의 시스템을 제정하여 잠시간은 유토피아를 이루며 과도하게 희망찬 분위기를 갖는 입주민들을 보여준다. 이대로 별 탈 없이 계속 식량이 유지되면서 입주민들끼리 서로 돕고 산다면 정말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는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거란 묘한 안도감과 안일함도 잘 느껴졌다. 아파트 홍보 영상처럼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입주민들을 보며 재난 전 상황과 확연히 다르지만 마치 아닌 척하는 모습에서 이질감의 재미를 느껴, 이 연출은 아직도 인상 깊다. 또한 이병헌 캐릭터도 전세 사기를 당하여 가진 돈을 잃고 아파트 주민인 사기꾼을 찾아왔다가 실수로 그를 죽인 후 그 주민이었던 척 생활하면서, 아파트 대표로 선임된 자신을 점차 입주민들이 치켜세워 주고 정찰대를 만들어 통솔하면서 아파트를 잃었던 상실감을 보상받고 자신의 입지에 집착하며 서서히 광기로 물들어가는 반전 포인트 또한 이 영화의 강점으로 보여 몰입하기 좋았다. 평범하던 사람들이 생존이라는 과제의 낭떠러지에 몰리면서 안정을 잃고 서로 분열하는 과정도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싱크로율이 비슷하여 한국 영화로서의 사실감이 높았다. 분명 잘 만든 영화인 건 확실하나 여기 후로부터는 나는 아쉬움이 더 커져 결국 영화관을 나오면서 마음이 텁텁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이 영화가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잘 담아 뛰어난 영화라고 말한 만큼 한국 영화의 단점도 그대로 반영하여 오는 지루함도 뚜렷했다. 우선 박보영 캐릭터가 너무나 흔한 선한 캐릭터의 사고방식을 따랐다. 간호사인 설정으로 헌신적이고 남을 돕는 성격인 것은 알겠으나, 생존을 위해 밖에서 식량을 구해오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해치게 된 박서준 캐릭터에게 실망한 기색을 보일 때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왜 그 선한 마음은 남에게만 발동하고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는 나오지 않았을까.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박서준 캐릭터가 살기 위해 그랬을 거라는 생각으로는 뻗치지 않아, 캐릭터가 단조롭게 느껴졌다. "사람 죽였어?"라는 질문이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답답함이란.... 이런 디스토피아 물을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이제 지겨울 거다. 차라리 박보영이 박서준을 헤아리면서도 자신의 간호사로서의 신념과 충돌하여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내가 이 캐릭터에 공감이 더 갔을 거다. 사실 선과 악의 대립은 너무나 흔한 클리셰이다. 꼭 디스토피아물이 아니라도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 극을 이끌어 가기엔 부족하다. 게다가 이젠 신선함이 떨어지는 성경 구절 인용과 성경 캐릭터 설정의 오마주는 소름을 유발한다기보다는 이 또한 그전 영화들을 답습했구나 하는 뻔함만 불러온다. 재난 상황에 선함과 악함의 대립은 당연한 이야기니 여기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특별한 논쟁 주제가 있었다면 이 영화를 곱씹어 생각하기 좋았을 거다. 그러나 나는 그걸 찾지 못했고 며칠이 지나고도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똑같이 찬장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처럼 뿌옇고 모호했다. 게다가 박보영이 도와줬던 외부인 아이와 엄마 중, 아이가 해맑게 숨겨주던 집에서 나와 밤중에 크게 박보영을 부르는 장면에서 나는 눈까지 감았다. 언제까지 아이의 해맑음과 순수함을 '민폐'라는 단순한 부정적인 감정의 단어 속에 가둬놔야 할까? 의도가 아닐 수 있지만 요즘같이 '사이다', '참 교육', '빌런' 이런 네임 태그들이 유튜브 제목에 난발하는 와중에 이렇게 뻔하고 단순하게 아이 캐릭터를 배치했으면 안 됐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으니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 그 씬에서는 들키지 않았으나 박보영이 지속적으로 숨겨준 집을 도와주고 이병헌이 그를 우연히 목격한 후, 숨겨준 집을 비롯한 '선한 입주민'들이 비난받고 색출되는 장면까지의 전개에서 박보영 캐릭터는 당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박보영 캐릭터는 또 흔한 '선하지만 민폐 캐'로만 남게 된다. 이미 영화는 이병헌의 서사도 풀리고 캐릭터의 공감도 이끌어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병헌에 몰입한 상태라 박보영을 적으로 보게 되고 그 후, 선한 입주민의 자살이나 박보영의 이병헌 과거 폭로도 그저 갈등 심화의 단계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박지후 캐릭터의 등장에서 많은 것들이 바뀔 것 같았으나 이병헌 과거 폭로의 장치나 서사의 일부분에 불과했고 퇴장 또한 힘이 없었다. 극 중간에 등장하는 캐릭터라 기대가 컸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이병헌 캐릭터 중심으로 흘러가서 다른 캐릭터들은 흐지부지 말로가 정해진 것 또한 많이 아쉬웠다.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사기꾼을 죽이고 주민들을 속이고 죄 없는 주민에게 화풀이 격으로 달려드는 것을 내가 이해해야 한다면 나는 이 캐릭터에 나를 이입하고 싶지 않다. 이런 식으로 선함에서 악함으로 변한 캐릭터에게 무게를 주고 주인공이라는 갑옷을 입혀 '생존에 강한 악함'에 힘을 실어주는 이야기는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사실 일본 애니를 조금만 봐도 이런 이야기 투성이라 이미 한 번 질려있던 차여서 더욱 이 영화에 호감을 갖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악은 뻔하지만 선은 흥미롭다는 말처럼 악의 뻔한 매력보다는 선의 흥미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였다면 이 리뷰의 방향도 많이 달랐을 거다.
그래도 결말은 어떨까 머릿속으로 유추해 보며 끝까지 앉아있었지만 결말도 맥없이 끝나서 나의 감상은 일관되게 아쉬움으로 단락되고 말았다. 박보영과 박서준이 아파트에서 도망쳐 피신하여 잠든 후, 성당 스테인 글라스 빛을 보며 박보영만 잠시 감정이 밝아짐을 느끼는 장면에서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병헌 캐릭터처럼 다양한 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선함을 지켰고, 과거를 폭로하여 아파트를 지켰다기보다는 결국 분열하고 외부인들의 침입까지 덮쳐져 터까지 잃었지만 끝까지 선하니 구원을 받는듯한 연출을 하는 것도 납득할 순 없었다. 너무나도 단순한 신념만 가지고 흘러온 캐릭터가 마지막에 다른 무너진 아파트 사람들 무리에 합류하여 끝까지 자신이 살던 아파트 사람들을 두둔하는 것도 일관성은 인정하나 다른 캐릭터의 입체감에 비해 빈약한 성격이라 내내 아쉬움이 짙었다. 전체적으로 캐릭터 힘의 배분이 쏠려서인지 선한 입주민이 외부인들을 숨겨주고, 식수로 쓸 물도 화분에 주고 자살하고, 여기서 그냥 살아도 되냐는 박보영의 말에 그런 걸 왜 묻냐는 선한 다른 무리들이 나오는 장면의 임팩트가 끝까지 남지 못했다. 물론 주인공에게 집중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이 영화의 의도가 결국은 선한 의도를 갖고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뜻으로, 박보영 캐릭터의 마지막 대사처럼 의도했다면 조금 더 다른 캐릭터들도 신경 써야 했었다. 왜냐면 나에게는 그 메시지가 깊게 와닿지 않고 빙빙 귓가에 맴돌듯 연하게 스치다가 결국 저 멀리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소재의 신선함만큼 메시지의 전달력도 높았다면 이 영화가 달리 기억됐을 것 같다. 이미 조금씩 이 영화가 잊히고 있을 정도인 나에겐 한 번 봤던 영화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