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랍스터> 리뷰

사랑 없이 시스템만으로 얽히는 관계의 쳇바퀴

by 피쉬

이 영화는 예전에 란티모스 감독 영화 <더 페이보릿>을 보고 흥미가 생겨 찾아본 필모그래피 중 첫 번째였다. 처음 봤을 때도 기묘한 여운을 주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문득 다시 보고 싶어졌을 무렵 왓챠에서 추석 이벤트로 하루 대여 쿠폰을 올려뒀기에 이 영화로 추석을 보낼 수 있었다. 추석과는 거리가 먼 영화지만 나에게 나름의 즐거움을 줬고 두 번 보고 났을 때는 이 영화에 조금 더 몰입하여 나만의 해석을 할 수 있었다. 꽤나 색이 단조롭고 옅게 빠진 장면들은 영화의 세계관인 '무조건 연인을 곁에 둬야만 사회에 속할 수 있다'라는 무언의 압박감과 공허함을 감정으로 잘 느끼게 해 주었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연인이 없으면 커플 메이킹 호텔로 가게 되어 45일 동안 이성을 물색하고 커플이 되면 몇 차례의 데이트 관문 후 사회로 나가게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이 원하는 동물을 선택하여 동물이 되어야만 하는 아주 기이한 규칙이 있는 이 영화는 나에게 관계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였다. 사실상 나는 홀로 있는 것도 즐기고 굳이 연인관계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약 이런 세상 속에 산다면 나 또한 저 호텔에서 고군분투해야만 했을 거라 생각하니 주인공의 초조함이 더 잘 느껴졌다. 영화는 내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커플일 때의 장점이나 커플이 되는 방법에 대해 말하지만 그럴수록 그 세계관은 아주 텁텁하고 건조해 보였다. 두 번의 시청 후 왜 이 세계에선 강제로 커플을 맺어줄 까에 대해 생각한 결과, 영화 속 세상은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의 인류가 아닐지 하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우선 이 영화에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없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과 나의 공통점을 찾으려고만 한다. 커플의 조건을 증명하는 건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코피를 자주 흘린다든지, 절름발이라든지, 근시라든지 신체적인 특징이나 개인의 특기, 음악 취향 등에서 어떻게든 서로 엮일만한 것을 발견하려 애쓴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그냥 대충 아무나 좋아하는 척만 하고 나가도 되지 않나? 쇼윈도 부부처럼?'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치 그런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들처럼 객관적인 증거를 입증하려 투숙객들은 발버둥을 친다. 흔히 말하는 당신의 모든 것, 결점들을 사랑해 혹은 이유 없이 당신이라 사랑해 등, 우리가 생각하는 고차원적인 사랑의 정의나 감정 교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그런 건 해본 적도 타고나지도 않은 사람들처럼 어떠한 조건만 좇고 그걸 사랑으로 포장하여 커플이라는 생존 관계를 생성한다. 주인공의 절름발이 친구는 절름발이 여자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동물이 되기보다는 코피를 일부러 내는 것을 택해 코피를 흘리는 여자에게 접근한다. 그 후 너무나도 쉽게 둘은 커플로 인정받고 호텔을 나서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중간 과정은 너무나 당연하게 건너뛰고 표면적인 물증만 성립되면 그 호텔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공통점이 있으면 커플이다는 정의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닐까 하는 첫 번째 근거가 내 머리 위로 떠올랐다. 호텔에서 커플의 장점을 소개할 때도, '외롭지 않다', '서로를 위해준다.' 이러한 말은 나오지 않고 혼자 밥 먹다가 사레가 들리면 그대로 죽는다, 여자 혼자 돌아다니면 괴한을 만날 수 있다, 등등 실질적인 위험에 대해서만 다뤘다. 즉, 이 세계관에서 커플은 생존의 수단이고 사회를 이루는 필수 조건이기에 사람들에게 커플의 장점을 생존과 연결해 주입시키고 있었고 나는 커플이 아닌 다른 결말은 동물이 된다는 걸로 그 생각은 확고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이 사랑을 모르기에 외부의 개입이 없으면 커플이 되지 않고 그렇게 되면 사회가 존속되지 않기에 동물이 된다는 결말로 은연중에 협박과 세뇌를 하고 있었고 그 흐름이 길게 연결되어 결국 모든 인물들이 사랑은 공통점이다라는 개념으로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호텔에서 도망친 외톨이 중에 몇 명을 서로 좋아하게 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은데, 나는 그것 또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본능에서 비롯된 욕구라고 해석했다. 사랑은 모르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구를 갖고 태어나기에 성욕은 누구나 있을 거다. 그러기에 호텔 밖 외톨이들도 자연스레 이성에게 그 욕구를 느꼈을 거고, 그래서 서로 스킨십을 하며 커플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거다. 하지만 내가 이걸 사랑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는 레이철 와이즈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을 만났을 때의 독백에 있다. 그와 어떤 집에서 섹스하다 강도가 들이닥쳐 죽는 꿈을 꿨고 우리 둘 다 근시였기에 서로를 알아봤다는 말에서 역시 공통점과 욕구만 포함되어 있었다. 둘은 암호로 사랑한다는 말이나 춤추자는 말, 몰래 하고 싶은 말들을 주고받았지만, 서로를 보살핀다거나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한 번도 없었다. 근시라는 공통점과 우연히 서로 합의되어 나눌 수 있던 욕구, 그렇기에 커플 비슷한 모습을 했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내내 그들 무의식 속에 공통점이 있어야 커플이라는 관념 덕에 서로 얽혔지만 결국 그 관념 덕에 이야기는 비극으로 걸어 나간다. 호텔이라는 시스템을 벗어났기에 자유롭게 커플이 될 수 있었다 여겼겠지만 그들도 결국 시스템이 심어놓은 관념을 벗어날 순 없었다. 영화 후반부에 둘의 사이를 눈치챈 숲속 우두머리가 레이철 와이즈를 병원으로 끌고 가 장님으로 만든 후, 벌어지는 둘 사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독일어를 하느니, 어떤 음악을 듣느니 하며 다시 공통점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해 둘은 허무하게도 점점 어색해지고 불편해진다. 주인공은 레이철 와이즈 캐릭터를 챙겨주지만, 결국 레이철 와이즈가 우리는 커플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거라는 말도 한다. 여기서 또 의문점을 느꼈다. 보통의 경우라면 레이철 와이즈가 더 의지하고 불안해할 텐데 레이철 와이즈는 쉽게 관계를 단념했다. 아마도 그 또한 공통점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사랑이 아니어서 남자 주인공을 포기했던 것 같다. 숲속 외톨이 생활에선 동물이 될 일도 없으니, 커플이라는 생존 수단에 기대지 않아도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둘이 욕구와 공통점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걸 분명히 안 후에 나는 마지막 결말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에 남자는 레이철 와이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도시로 나가서 커플로서 생활하는 게 원래 둘의 목표였으나, 여자가 장님이 된 후 그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졌기에 남자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 냈다. 이때도 그냥 공통점쯤이야 금방 만들면 되지 했는데, 극단적으로 자신도 장님이 되겠다는 해결책을 내보인 걸로 보아 이 영화 속 사회는 커플의 증거가 눈으로 뚜렷이 보여야만 안전하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 남자는 외톨이 생활을 하며 생존하다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게 목표였을 거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해결책을 떠올렸고 화장실에서 눈을 찌르기 위해 덜덜 떨었을 거다. 마지막 장면인 여자가 레스토랑에 앉아 종업원이 채워준 물 잔과 함께 그를 기다리는 씬에서, 첫 관람 후에는 눈을 찔렀다고 거짓말하고 돌아오려나? 싶었는데 두 번의 관람 후에는 그가 도망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사회에선 커플이 생존 수단, 숲 속에서는 외톨이가 생존 수단, 두 집단을 모두 겪어본 남자가 결국 도시로 가기 위해 여자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홀로 여자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남자의 본능적인 두려움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다. 만약 이 영화에 사랑이 존재했다면 둘은 한쪽이 장님이어도 숲속에서 잘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니 연결해 주던 공통점이 사라지면 결국 커플은 허상에 불과한 거였다. 영화 속 어떤 여자 조연이 찰랑이는 머리칼이 부각되고 마지막 날엔 홀로 영화를 본 후 그 머리칼을 유지한 채 말이 되고, 주인공은 코피를 일부러 내는 절름발이 친구 커플을 찾아가 비밀을 폭로해 버리고 호텔 종업원은 커플로 생존 후에도 숲속 외톨이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랑 없이 삭막하게 그저 생존하거나 살아가거나 체념한다. 그 와중에 거짓으로 꾸며낸 관계는 처벌까지 받으니 더더욱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 번 본 후, 찬찬히 감상을 정리해 본 결과 이렇게 건조하고 그럴듯한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있다는 게 뒤늦게 내게 신비하게 다가왔다. 처음부터가 아닌 감상 후에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설정을 깨달아 본 건 또 처음이었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은 항상 재생하기 직전에는 두렵지만 보고 난 후에는 정신이 완전히 그 세계에 두고 온 듯이 멍한 기분이 들어 내가 또 다른 사고방식을 건축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종종 다시 작품들을 찾게 된다. 올해 말에 나오는 <푸어 띵스>-가여운 것도 무척 기대 중이지만 역시 두렵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 감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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