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게임 :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리뷰

붉은 장미 위에 차가운 눈이 내려앉아도 가려지지 않는 피비린내

by 피쉬

프리퀄이 그간 관객에게 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나도 이 영화를 보러 갈 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러 갔다. 프리퀄을 보기 전에 전 편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었으나, 넷플릭스에 1편 제외 전 편이 있었기에 전날 논스톱으로 주행하고 다음 날 조조로 보러 갔다. 생각보다 프리퀄이 괜찮다는 말이 있어서 또 이런 건 직접 경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빠르게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스노우의 이야기라는 게 그닥 달갑지 않았으나 그간의 헝거게임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고 캣니스라는 존재가 스노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의 시점으로 보니 더욱 와닿아서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다.


이 영화는 스노우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졸업을 앞둔 스노우가 플린스 상을 받기 위해 참여한 졸업식에서 플린스 상을 성적 우수자가 아닌 헝거게임 멘토로서의 역량을 평가한 후 쥐어진다는 걸 알고 자신에게 배정된 루시 그레이와 함께 게임을 이끌어 가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점은 초창기 헝거게임이 후기의 헝거게임처럼 체계가 잡혀있고 경기장의 규모가 큰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무작정 아이들을 콜로세움 같은 경기장에 집어넣고 거진 5분에서 10분 만에 끝나는 단순한 전투였던 배경이었다. 전쟁 후 캐피톨에 대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구역민들 응징이 목적인 이 행사가 캐피톨 시민들에게도 그닥 좋은 취지는 아니었고,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스노우의 젊은 시절에 제10회 헝거게임에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면 헝거게임은 20회가 지나기도 전에 중지될 수도 있던 게임이다. 그러나 이 게임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유추하며 이 영화를 보면, 보다 소름 끼치고 흥미로워진다.

장군의 아들이나 부모님의 죽음 후 가난을 애써 감추며 살던 스노우에겐 플린스 상이 장학금을 비롯한 혜택을 주니 무엇보다 간절하였기에 여기서부터 루시 그레이와의 관계가 깊게 얽히게 된다. 당시 돈이 많은 자제들 위주로 건강하고 유리한 구역민들을 배정받고 12구역 제일 마른 여자애를 배정받은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가 등장할 때 착잡했으나, 루시 그레이가 단상에 올라 노래를 부른 후 인사하는 포즈를 취했을 때 그는 순간 반짝임을 발견한다. 바로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루시 그레이의 반짝임. 우승과는 관계없이 헝거 게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평가 대상이었기에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스노우는 루시 그레이가 도중에 죽어도 그가 큰 임팩트를 끼칠 수 있도록 그를 이끌어 갔을 거다. 철저히 루시를 이용할 계획만 세우던 스노우가 점차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초점을 두며 영화를 보면 더욱 재밌는 게, 후의 스노우와의 모습을 비교하며 사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공백을 관객이 메꿔갈 수 있기 때문이다.


멘토와 멘티들이 경기장을 답사하다가 반란군이 터뜨린 폭탄에 경기장이 부서지면서 구조물에 깔린 스노우가 그 와중에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구하러 온 루시를 보고 그에게 인류애가 생기는 시점부터 그의 심리를 따라가면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아마 이 일이 없었다면 스노우는 반칙을 쓰면서까지 루시를 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에겐 플린스 상이 중요한 거지 루시가 중요한 게 아니니 반칙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단 말을 어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스노우는 경기를 지켜보며 루시가 이길 수 있도록 계속 수를 쓰고, 마지막까지 루시의 목숨을 지켰다. 극 중간에, 스노우는 게임메이커의 강요로 캐피톨 시민 친구를 데려오다 조공인을 죽이는 데, 이후 이 일을 사촌 누나에게 얘기하며 죄책감 대신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걸 느낀 그의 본래 인성을 보아, 루시가 스노우를 구하지 않았다면 루시는 경기장에서 일찌감치 죽었을 거다. 스노우의 본성을 잠시 눈멀게 하고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 게 의도일지 아니면 루시의 선의일지를 생각해 보며 영화를 보는 것도 중요 포인트다.

루시와 캣니스의 인사 포즈가 똑같다는 점에서 스노우가 루시와 헤어진 후 근 60년 후에 캣니스가 나타났을 때 루시를 떠올렸을지 궁금해진다. 대본이나 소설엔 없는 설정이나 레이철 지글러가 루시 역을 할 때 캣니스가 연상 됐음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애드리브를 넣었다는 걸 보고 이 영화의 팬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같은 인사 포즈를 보고 캣니스가 연상되어 더욱 짜릿했다. 결국 본성 자체가 계급에 따라 시혜적이고 차별적인 스노우는 선의 대신 절대 권력을 택하며 루시와 헤어지고 루시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다. 마지막 둘의 이별 장면에서 둘은 서로를 불신하여 해치려다 작별 인사가 아닌 오해와 증오만 품고 서로의 생사도 모르고 갈라진다는 점도 큰 여운을 준다. 처음엔 스노우가 루시를 진짜 쐈다고 생각했지만, 스노우가 숲에서 뱀에게 물린 후 총을 쐈으니 환각일 수 있는 여지에 내 마음이 기울었다. 목매는 나무라는 노래를 만들고 식물의 뿌리를 보고 캣니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루시의 존재감이 스노우에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거다. 마치 운명처럼 루시의 존재가 수미상관으로 캣니스로 재탄생해 자신을 죽이러 왔을 때 스노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도 후회라는 걸 해 봤을까? 악역에 이입하지 않는 편이지만 워낙 잘 짜여진 이야기라 이 인물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난 시점이라, 내 감상도 조금씩 변한다. 첫 감상 후에는 둘이 정말로 서로 끌렸고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이야기를 되짚을수록 루시는 스노우를 생존을 위해 이용하였고 스노우는 잠시 끌렸던 건 맞으나 이걸 평생 부정하고 그 후엔 사랑이라는 감정에 거부감을 느끼며 살았을 것 같다. 아직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소설의 어느 부분을 보면 스노우는 그 후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랑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더욱 확신할 수 있다. 서로 엇갈린 감정이지만 어느 짧은 틈에는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는 이 애증의 관계가 이 영화를 더 인상 깊게 만들어 줬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인물의 외전도 보고 싶을 정도고 헝거게임 드라마를 한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시리즈에 뒤늦게 빠져버렸다.... 사람의 본성이 잠시나마 교화될 수 있는 선택의 순간들을 잡아내는 재미와 이해관계가 얽힌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 이 영화는 프리퀄은 본편보다 퀄리티가 낮다는 오명을 벗기 좋은 예시이다. 한국은 벌써 상영관을 많이 내리고 있던데, 원작을 재밌게 봤다면 꼭 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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