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머릿속에는 수 많은 생각들이 끊임 없이 소용돌이 치는 건줄 알았는데. 아니라는건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
지금 2020년 시점으로 직장생활 6년차인 나는 현재 5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제일 오래 다닌 직장이 2년 3개월. 원래 요즘 사람들은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하긴 하지만, 다시 떠올려봐도 남들처럼 진득하게 한 환경에 꾸준히 적응하는 사람은 절대 못 되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그렇다.
내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나마 첫 선택에서 적성에 맞는 분야에 발을 들이고, 그 한 가지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것만도 상당한 행운이자 꽤 대단한 일일 지도 모른다.
나는 좋아하는 것도 늘 여러가지인 소위 말하는 '잡덕'이고, 물건을 살 때에도 그 때 그 때 내가 마음에 들고 끌리는 것을 선택하곤 했다. '충동구매', '스트레스 쇼퍼'는 정말 딱 나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늘 끌리는 대로 물건을 사니 저축도 잘 하지 못 했다. 학생 시절에는 불호 과목은 명확했지만 선호 과목은 언제나 달라졌고, 그 때마다 성적이 들쭉날쭉 해 항상 가시 모양 그래프를 그렸다. 불호 과목은 공부를 하지 않아서 항상 '가', '8-9등급'이었다. 귀찮다고 느껴지는 것은 손 대기 싫어해서 늘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기한 직전에 후다닥 벼락치기를 하고 망치면 몰라, 어쩔 수 없어, 하면서 대충 넘기곤 했다. 한번 생긴 취미 활동은 아주 소수의,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빼면 아무리 길어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지금도 이런 경향은 그대로다.
나이를 먹고 직장을 다니며 경제력이 생기니 오히려 소비 성향의 단점은 더 커졌고, 얼마 전에는 '필요하니까'라는 마음 반, '마음에 드니까 지금 바로' 라는 마음 반으로 큰 비용을 내고 월셋집을 넓은 곳으로 옮겼다. 이사 비용이 들고 새로운 살림을 추가하는 비용이 들지만 '지금 해야 해' 라는 생각으로 감행해 버린 것이다. 당장 사정이 조금 여의치 않아도 그 집이 마음에 들고 조건도 좋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저지르고 생각해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벌인 일이다. 덕분에 같이 사는 동거인과 부족한 금전과 시간을 지원해 준 엄마를 고생 시켰다는 점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고, 반성하고 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와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집중해야지', '일 하면서 딴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하지만 결국은 딴 짓과 딴 생각의 향연을 참지 못하고 목표한 업무량을 제 시간에 못 채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증거로 지금도 일을 하다 말고 이 문서를 열어 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이를 이만큼 먹었는데 시간 개념도 부족하다. '어느 정도 걸리겠지'라는 예상이 맞는 일이 별로 없어서, 항상 여유 시간을 앞뒤로 20분 정도는 두고 따지는 습관을 들였다. 지하철을 타고 먼 거리로 외출해야 할 때에는 스마트폰의 지하철 앱에서 '도착 시간'을 약속 시간의 15~20분 전으로 설정해 검색한 뒤 집 근처 역에서 몇 시에 지하철을 타야 하는지 본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 30분을 길이나 역에서 기다리게 되어도 그래야 늦지 않는다. 어릴 때와 본가에 살 때에는 엄마가 몇 시쯤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말해줬다.
2019년 5월, 광주여행 출발 기차
'입이 심심하다'는 말도 굉장히 자주 하는 편이다.
회사에서도 간식을 엄청 집어먹고, 어딘가 먼 거리를 갈 때에도 간식과 놀 거리를 든든히 챙겨서 가야 이동 시간을 견딜 수 있다. 이 버릇은 체중을 늘리는 주범이고, 여행의 시작과 끝을 정신 없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뭔가를 계속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니까, 마치 초조한 사람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괜히 이것 저것 껐다 켰다하거나 인터넷이나 SNS 화면을 켜고 끊임 없이 새로고침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새로운 것'이 없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을 느끼고 만다. 하지만 어릴 때에도 절대 소풍에 설레서 잠 못 자거나 소풍이 끝나고 흥분해서 열 나는 타입은 아니었다. 설레기는 하지만 그 설렘이 과한 것이 아니다. 그냥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이 힘들 뿐이다.
위에 첨부한 사진을 잘 뜯어 살펴보면 그 성향이 드러난다.
사진은 작년 2019년 5월, 친구들과 광주 여행을 하기 위해 탔던 새마을호에서 찍은 사진이다. 경기도에서 광주광역시까지 새마을호로 약 4시간, 가는 길에 내가 힘들지 않도록 짐이 무거워져도 준비를 단단히 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임기는 여러 게임을 돌아가면서 할 수 있게 가지고 있는 타이틀을 전부 챙겨서 떠났다.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카톡도 하고 SNS도 하고 게임도 해야 하니까 일부러 기차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물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예매하고 충전기를 꽂아두고 폰을 했다. 기차에 갇혀 있는 4시간 동안 입이 심심할까봐 타기 전 스토리웨이에서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탔다. 간식을 먹으면 목이 쉽게 마르니 물도 챙겼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짐이 줄었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챙겨야 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계획이 철저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철저한건 맞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항상 꼼꼼하게 방문할 곳들의 리스트를 짜고 위치를 확인하여 이동할 경로를 날짜별로 상세하게 계획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언뜻 쓸데 없어 보이는 준비물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떠나는 것은 철저한 계획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동하는 길에 심심하지 않으려고 게임기를 챙기고 게임 타이틀까지 여러개를 챙겨도, 실제로 하는 게임은 1가지에 그 시간도 1시간을 못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짧게 2시간 이내로 이동하는 일본행 비행기의 경우 20분을 채 못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열심히 챙겼지만 그다지 효용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너무 긴 서론은 끝내고, 이 쯤에서 적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내가 가진 단점에 대해서 줄줄 적어봤지만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자책하는 글이 아닌 나 자신을 긍정하는 글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나는 결코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은 앞면과 뒷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세상 만물은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끊임 없이 나의 단점을 자책하기만 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럴 바에는 내가 잘 할수 있는 것을 하면서 장점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자기 반성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 자기 반성을 끊임 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미워하는 방향으로만 하게 되면 사람은 병들어 버린다.
나는 그것을 직접 겪었기에 뼈저리게 알고 있고, 때문에 긍정하는 방향을 찾으며 살아가기로 생각했다.
그 다짐을 공고히 하면서 일기 같은 주절거림을 적어두기로 했다.
앞서 줄줄줄 설명한 것처럼 나는 그다지 정돈 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항상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단 몇분이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계속해서 떠오르고, 기존에 하고 있던 생각에 새로운 생각이 부딪히면서 충돌하는 경험을 했다.
나는 이런 현상을 그냥 '잡생각과 자잘한 고민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 엄마도 항상 잔 고민이 많았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냥 그런 성격을 나도 물려 받은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눈에 띄던 아이가 아니었고, 오히려 너무 조용하고, 차분하고, 때론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들은 항상 나를 그렇게 평가했고, 난 항상 '착하고 다루기 쉬운 아이'였다고 한다. (엄마한테 그렇게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단 한번도 '주의력 결핍 행동 장애' 같은 것을 의심 받은 적이 없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그런 껀덕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그런 병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대충 정서장애 같은 걸로 퉁쳐지곤 했지만!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조용하고 신체 활동을 기피하는 그런 아이였던 나였지만, 내 머릿속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수업시간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항상 생각의 한 조각은 지금 듣고 있는 수업 내용이고, 또 다른 한 조각은 한창 빠져서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었고, 또 한 조각은 즐거운 공상, 또 한 조각은 하교 후 집에 가는 길과 같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진 생각들이 서로 뒤섞여 부딪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할 일에 집중하고 있어도 생각 조각의 크기와 비율이 달라질 뿐, 머릿속에는 항상 여러가지 생각과 상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우르르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잊지 않도록 적어두라는 어떤 계발서의 조언을 따라 생각나는대로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려고 했더니 너무 많은 것들이 뒤죽박죽 떠올라서 하나를 적고 나면 다른 것들을 잊어버려 아쉬운 경험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고 있는 것이고, 업무를 하던 도중에도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거기에 주의를 잠깐 기울이고 나면 무슨 업무를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흐름을 잊거나 놓치는 일은 원래 일상적으로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겪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쳐서 그러한 것이라면, 그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 부지런한 자기 관리 능력을 두루 갖춘 정말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것이 그렇게 내 맘대로 제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내 생각을 내가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것은 머릿속 스위치를 내가 아닌 남에게 맡겨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나는 어릴 때에는 불편함을 몰랐던 이 특성을, 어른이 되고 내가 해야하는 일들이 복잡해지면서 비로소 불편하고 거슬린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사실을 깨달았을 시기에는 이미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병원 상담 중에 선생님과 나 사이에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갔다.
"요즘 기분은 어때요?"
"괜찮아요. 정말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독특한게 있어요. 약을 먹으면서 조금 괜찮기는 한데, 요즘 집중력이 진짜 안 좋다고 느껴요. 그게, 제가 자꾸 안절부절 못하고 이것저것 건드렸다 손 뗐다 하면서 초조한게 불안증세인것 같다고 해서 항불안제랑 신경안정제랑...그런 것 먹고 있잖아요? 먹으면 괜찮기는 해요. 확실히 초조하고 불안하고 그러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저것 건드렸다 손 뗐다 하는 건 여전해요. 안절부절 못하고. 일 할때는 저한테 지루한 업무를 할 때 정말 생각이 딴 세상으로 날아가는데, 결국 집중을 못해서 1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2시간 질질 끌고...요즘 그런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그게 기분이 안 좋더라구요..."
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나에게 한 페이지의 간단한 질문지를 건네셨고, 작성한 뒤에 상담을 이어갔다.
질문지의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이 '소음이 있는 장소에서 상대방과 가까이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할 때에도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라는 문항이었다. 나는 그 문항을 조금 더 특별하게 짚었다.
"이 문항은 진짜 불편해요. 일상에서요.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곳에 노래 틀어놓잖아요. 그런 데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정말 그냥 친구 말소리가 똑바로 안들려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거에요. 그래서 몇번씩 되묻고, 진짜 계속 되물어도 안 될 때는 그냥 카톡을 보내버려요. 눈 앞에 마주보고 있어도. ...청년기에 난청이 오면 그 시작이 말소리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거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어서, 전 이어폰으로 노래도 자주 듣고 하니까 혹시 싶어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검사도 해 봤어요. 그런데 아무 문제 없고 멀쩡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작성한 문답이 혹시 무엇에 대한 검사인지 생각 나는 것 있어요?"
"아뇨."
"성인ADHD라고 들어보셨어요? 이건 그것에 대한 문답이에요."
"들어보긴 했어요. 자세히는 모르고..."
나의 성인ADHD 진단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간단한 검사지 작성 말고 정밀한 검사를 해 보고 상담을 진행해 보면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비급여 검사여도 괜찮으니까 한번 받아보겠다고 선언하면서 조금 더 시간을 들인 검사와 상담, 그리고 결론적으로 '시도해보고 싶다'라는 나의 결정에 따라 본격적인 약 처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끄적여보는 글이 이것이 되겠다.
내가 끄적이려는 내용들이 내 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딱히 퇴고를 진행하는 타입도 아니라서, 아마 때로는 정말 아무말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도 정리가 전혀 안 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 안다...)
내 집중력은 짧고, 긴 글을 긴 시간을 들여 쓸 수 있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냥 적어보고 싶었다. 나이의 앞 자리가 바뀌기 전에 어떤 변덕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첫 글은, 나는 나의 어떠한 특징 때문에 늘 머릿속이 복잡하고 통제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라서, 내가 적는 글도 그러할 것이라고 변명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피젯큐브가 안심이 되는 이유도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해서'
그러니까 그냥 누군가가 내가 끄적인 글들을 읽게 된다면, 감안하고 읽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일주일에 2번 정도는 짧게라도 끄적여 보는 것이 목표이고, 최대한 길게 유지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고, 그러도록 노력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이런 활동을 통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더 긍정할 수 있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