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가면을 쓴 사냥꾼,

껍데기가 된 정의

by 푸코

가면을 쓴 사냥꾼, 껍데기가 된 정의

- 드라마 <헌터스>를 보고 -


※ 주의: 본 리뷰에는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헌터스〉 시즌 1과 시즌 2의 핵심 반전 및 결말을 포함한 중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작품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열람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악을 추적하는 인간의 보편적 열망


나치를 추적하거나 그 잔혹함을 고발하는 서사가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유는 명확하다.[1] 그러한 인류적 범죄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하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의 약속이 우리 내면에 전제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악을 처단하려는 열망은 인류 보편의 도덕적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며, 때로는 사실과 가상을 섞어서라도 그 근원을 뿌리 뽑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투영한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2020년 첫 방영을 시작해 2023년 시즌 2로 막을 내린 드라마 〈헌터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 작품은 ‘히틀러의 생존’이라는 대담한 가상 역사를 설정하여 시청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1970년대 후반 미국 전역에 숨어든 나치 잔당을 찾아 처단하는 ‘나치 사냥꾼’들의 활약을 그린 이 시리즈는, 전설적인 배우 알 파치노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시즌 2에서 강렬한 변신을 보여준 로건 레먼의 열연으로 극의 무게를 더한다.


하지만 〈헌터스〉는 단순히 나치를 쫓는 액션 활극에 머물지 않는다. 개성 넘치는 팀업 서사 속에 ‘사적 복수가 정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딜레마와 용서와 기억의 본질, 그리고 국가적 타협이라는 묵직한 철학적 질문들을 촘촘하게 배치했다. 역사적 사실과 대담한 허구가 교차하는 이 작품이 왜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 시대의 정의를 다시금 사유하게 만드는지, 그 구체적인 이유들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본론


1.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복수는 정당한가: 법의 무력함과 철학적 딜레마


〈헌터스〉를 단순히 자극적인 액션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이 ‘사적 복수가 정의 실현의 최종적 도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윤리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헌터스 팀은 악을 처단하기 위해 고문과 살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서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공리주의적 결과론과 칸트적 의무론의 날카로운 충돌을 목격한다. "더 큰 공동체의 선을 위해 나치라는 거대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논리는 헌터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듯 보이지만, 주인공 조나는 이 방식에 끊임없는 회의를 느낀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하며, 행위 그 자체의 도덕적 원칙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볼 때, 헌터스의 방식은 결국 정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또 다른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서늘한 경구는 조나의 고뇌를 대변하는 강력한 경고가 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악을 멸한다는 명분 아래 그들과 똑같이 잔인해질 때, 정의는 그 고결함을 잃고 결국 자신이 증오하던 악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


이러한 긴장은 흑인 여성 수사관 밀리의 행보에서 정점에 달한다. 절차와 증거를 따지는 법치주의가 명백한 악인을 놓아주는 무력한 현실 앞에서, 그녀는 결국 스스로 총을 들어 법적 허점을 빠져나간 주교를 심판한다. 이는 한국 드라마 <환혼>의 뼈아픈 대사,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선은 도덕적 결벽과 법적 절차라는 제약 때문에 늘 주저하고 망설여야 하는 '속도의 불균형'을 꼬집은 것이다.


물론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모여 연대하는 모습은 숭고한 인간적 가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목적이 옳더라도 과정이 폭력으로 채워진다면 정의의 순수성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즌 2에서 히틀러를 즉결 처형하는 대신 법정에 세우는 결말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진정한 정의는 괴물과 똑같은 수단을 써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력해 보일지라도 법의 심판대 위에 괴물을 세울 수 있는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과정에 있음을 드라마는 묵직하게 증명해낸다.


2. 가해자의 오만한 속죄와 기억의 말살: 마이어와 〈밀양〉이 던지는 질문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리더 마이어(알 파치노 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는 과거 유대인을 학살했던 악랄한 나치 장교였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루스'를 차지하기 위해 진짜 마이어를 죽인 뒤 그의 신분으로 성형수술까지 감행한 인물임이 밝혀진다. 30여 년간 유대인 행세를 하며 나치 사냥꾼의 리더로 활동해 온 그의 삶은, 언뜻 보기에 처절한 참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실체는 '속죄'와는 거리가 멀다. 마이어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들을 서슴없이 살해하고, 심지어 평생을 사랑했다던 루스마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막음을 위해 희생시킨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랑조차 도구화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영화 〈밀양〉의 서늘한 질문을 마주한다. 〈밀양〉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용서도 없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며 평온을 주장했듯, 마이어 역시 피해자의 고통과는 상관없는 '자의적인 속죄'에 도취해 있다. 진정한 용서는 오직 피해자인 루스만이 할 수 있는 성역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스스로 용서의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오만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그의 나치 사냥은 순수한 죄책감이 아니라, 자신의 추악한 진실을 덮기 위한 정교한 은폐였다. "가해자는 결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으며, 피해자가 부재한 참회는 기만일 뿐"이라는 사실을 마이어의 최후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영웅의 가면을 썼을 뿐, 그 본질은 단 한 걸음도 '괴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였다.


3.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연대: '껍데기'를 걷어내고 진실로 나아가는 길


〈헌터스〉가 그리는 정의는 단순히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다양한 소수자들이 팀을 이루어 거대악에 맞서는 설정 자체가 이미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연대의 가치를 상징한다. 여기서 드라마 속 '나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부조리와 비리, 그리고 혐오라는 '사회적 은유'로 작동한다.


이는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에서 노래한 '껍데기'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시인이 모든 가짜와 불의는 떠나가라고 외쳤듯, 헌터스 팀이 추적하는 나치 잔당들은 우리 공동체의 순수성을 해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갉아먹는 비겁한 '껍데기'들이다. 또한, 이 작품은 '정의'를 바라보는 세대 간의 관점 차이를 심도 있게 다룬다.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겪은 할머니 세대의 '직관적 응징'은 단순한 복수심이라기보다, 치유되지 못한 집단적 트라우마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분출된 것에 가깝다.


반면 민주적 시스템 안에서 자란 세대의 '윤리적 절차'에 대한 고민은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두 세대가 충돌하고 화해하며 나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시차를 좁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4. 국익이라는 이름의 비겁한 면죄부: '페이퍼클립 작전'과 반민특위의 그림자


드라마는 실제 역사인 '페이퍼클립 작전'을 통해 국가가 이익을 위해 불의를 어떻게 도구화하는지 비판한다. 미국이 우주 개발이라는 실익을 위해 나치 과학자들을 사면한 사실은, 우리 역사의 뼈아픈 장면인 '반민특위의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론과 국익의 논리에 밀려 과거 청산에 실패했을 때, 신분을 세탁한 이들이 보란 듯이 성공하는 모습은 사회에 깊은 냉소주의를 남긴다.


유능한 악인을 처벌하는 대신 이용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국가는 시민들에게 "쓸모가 있다면 죄는 덮일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를 보낸다. 드라마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은폐된 불의의 공론화'를 제시한다. 국가가 덮어버린 부정한 타협을 역사의 빛 아래로 끌어내어 정당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국가적 고백'이 치유의 시작이다. 우리는 시스템이 숨긴 불의를 끊임없이 의심함으로써, 국가가 도덕적 토대를 다시 세우게 만드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5. 인간적 선의의 경이로운 연출: 시즌 2, 7화가 보여준 숭고한 완성도


시즌 2의 7화는 단연 이 시리즈의 백미다. 독일 노부부가 유대인 가족을 숨겨주는 에피소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를 연상시키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원래 나치에 부역했던 유명 건축가였던 노인이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 집안 곳곳에 은신처를 설계하고, 정교한 보드게임과 행동으로 나치를 기만하며 유대인 가족을 구하는 연출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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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마이어의 '기만적 속죄'와 전혀 다른 진정한 속죄를 마주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죽인 마이어와 달리, 이 노인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끝내 목숨을 바쳐 생명을 지켜낸다. 이는 〈쉰들러 리스트〉의 오스카 쉰들러가 보여준 숭고한 양심의 회복과 맞닿아 있다. 또한 당시 노부부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소년이 훗날 히틀러를 인계받는 헌터가 된다는 설정은, 과거의 선의가 어떻게 미래의 정의를 완성하는지 보여주는 서사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결론: 정의와 용서의 복잡한 궤적, 그 무게를 견디는 삶


〈헌터스〉는 팀업 서사의 재미, 폭력과 정의의 긴장, 용서의 본질, 기억과 트라우마, 세대와 정체성의 차이, 숨은 악의 은유, 국가적 타협, 그리고 충격적 반전까지 담아낸 수작이다. 드라마 속 사례와 철학적 논의가 교차하며,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현대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악을 처단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정의와 용서가 얼마나 복잡하고 불안정한 개념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헌터스〉는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시리즈이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의 부조리에 함께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헌터'가 되어 우리 시대의 악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나치와 관련된 서사는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통해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과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실화를 다룬 〈오퍼레이션 피날레〉(2018)가 있으며, 소설로는 히틀러의 클론 음모를 다룬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1976),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존 보인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6)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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