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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링 Nov 20. 2022

무엇인가 만들어져 있다.

쓰는 기쁨

    박솔뫼 작가의 책이 세 권이나 있었다. 있었다고 말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어느새 세 권이 있었고 한 권도 읽지 않은 채였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산 책도 있고, 추천 받은 김에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것도, 그냥 몇 페이지 읽고 산 책도 있다. 얼떨결에 세 권이나 있는 김에 가장 최근에 구매한 <도시의 시간>부터 하나씩 들춰보았다. 이유도 모른 채 힘들었던 마음이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내가 슬펐던 이유가 이거였어, 싶은 문장이 이어졌다. 그 후로는 매일 밤마다 읽게 되었다. 티를 마시듯 조금씩 읽다 말고 읽다가 말아도 매일 읽었다.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제법 마법 같았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말을 한다. 그게 첫인상이었다. 작가는 같은 단어가 반복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장을 이어나간다. 그 부분이 게으르거나 어색하기 보단 오히려 글의 내용과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쓰여져서 다행이다. 그런 기분이다. 내가 접어놓은 페이지를 하나씩 펼치자 인물이 혼자 생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장면이 많다. 다 읽고나면 스토리보다는 말들이 진하게 남았다. 인물들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그런 생각을 할지 몰랐던 것처럼 군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소설 같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예스24에 기록된 작가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박솔뫼 작가는 “좋아하는 것들이 결국 소설로 나온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를 전달 해야겠다고 의식하며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좋아하는 것들이 담긴다고. 작가는 글쓰기를 색종이를 접거나 지점토를 붙이는 만들기로 비유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해서 가능한 이야기 중 하나를 쓰고, 그것은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라는 걸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대답의 끝에 그는 종종 덧붙였다. “물론 다르게 쓸 수도 있겠죠.” 이 인터뷰 역시 작가를 만난 이야기라기보다는 박솔뫼의 말 주변을 배회한 이야기다.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서 말들은 여기 도착했고,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작가는 쓰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것을 만나고 결국 끝까지 완성했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내가 무얼 만들지 그릴지 모르는 상태로 출발하여 조물 거리는 기분. 창작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낙서를 하다가 스케치북 한 장을 가득 채우게 되었을 때. 글을 쓰다가 생각지도 못한 문장이 튀어나올 때. 근데 그게 너무나도 진심이라 부정할 수 없을 때. 난 그럴 때 희열을 느낀다. 작가도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내가 읽고 좋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분명 놀이에 푹 빠진 아이의 태도와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하다보면 결과물 따위는 잊고 그 행위 자체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크레파스를 한 손에 쥐고 온몸에 물감을 묻혀가며 노는 아이처럼. 시간을 잊고 볼이 새빨개진 채 뛰어오는 아이들처럼. 그런 몰입의 경험은 만족감을 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시공간이 붕괴된다. 어떤 행위 자체에 빠지면 무아지경이 되어 스스로를 잊다가 그 곳에서 빠져 나오면 무엇인가 만들어져 있다. 스스로를 잊는 기분.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잘 나고 싶다는 마음 없이 자신을 잃는 행위에는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간다. 흔치 않아서 그런걸까. 


박솔뫼 작가는 말했다. “저는 반복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의식적으로 반복해야겠다 하고 쓰는 건 아니지만, 반복할 때 느껴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언가를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길게 가진 않으니까, 재미를 느낄 때까지는 반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쓸 때 반복하지 말라고 배웠다. 하지만 반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반복하고 싶은 마음이란 걸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인데. 이토록 당연한 걸 모르고 있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게 맞는지 고민하기 전에 무조건 내가 즐거워야 한다고 본다. 이후의 모든 건 나중의 일로 그 감각을 잃으면 난 창작을 할 이유가 없다. 전혀 없다. 그것 외에는 지지부진하고 미세한 조정이기 때문에 애초에 베이스에 깔려있지 않으면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인데 크림 브륄레를 먹는 이유 같은 거 말이야. 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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