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탈리스트(brutalist)적인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by 나나링

최근 즐겨 듣고 있는 찰리 XCX의 Brat 앨범에 대해 찰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Brat은 매우 대립적이고 공격적이며, 가사들은 마치 내가 친구들에게 보냈을 법한 일상의 텍스트 같아요. 이 단어 자체가 굉장히 브루탈리스트적이죠.” 애플과의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앨범 커버를 보고 그냥 ‘얼굴 잘 나왔네’라는 반응이 나오길 바라지 않았어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일어나길 원했죠”라고 덧붙였다. 찰리는 ‘슬라임 그린’이라 불리는 앨범의 메인 컬러, 정확히는 팬톤 3570-C 색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실 이 색은 꽤 역겹죠. 그런데 그 점이 바로 매력이에요. 욕망에 대해 정말 흥미로운 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어서 그녀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저는 우리가 대중문화에 대한 기대를 질문해보았으면 해요. 왜 어떤 것은 좋고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겨지는 반면, 다른 것은 나쁘다고 판단될까요?”




찰리 XCX의 앨범이 어떻게 브루탈리즘적 정신과도 연결되는 걸까? 브루탈리스트(brutalist)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영국에 거주하며 브루탈리스트적인 건축물을 마주하지 않기란 어렵다. 디자인을 공부하며 브루탈리즘에 대해서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지만 정작 처음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의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크다. 다소 조잡스럽게 조합된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영국 왕립 건축 연구소(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ure) 홈페이지에서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브루탈리즘은 재료, 질감, 그리고 구조를 강조하며, 매우 표현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입니다.」 물론 이 설명만으로는 우리가 브루탈리즘적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건축 양식이 태어난 배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브루탈리즘은 1950년대 영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건축 양식이다.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유럽 도시는 급히 도시 빈민가를 정비하고 대규모로 주거지를 공급할 필요가 있었고, 브루탈리즘은 이러한 필요 속에서 태어났다. 설계의 규모와 경제성을 강조하면서, 브루탈리즘은 당시의 주요 공공 주택 프로젝트의 양식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브루탈리즘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인 바비칸 센터조차, 처음부터 콘크리트 덩어리로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건축가 챔버린, 파월, 본(Chamberlin, Powell and Bon)은 자신들을 브루탈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초기 계획에는 흰색 대리석, 다채로운 색상, 모자이크 타일 등의 장식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런던 시가 이 ‘사치스러운’ 자재 선택을 거부하면서, 훨씬 저렴하지만 노동 집약적인 콘크리트 마감재가 선택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비칸의 외형이 탄생했다. 결국, 그 형태는 선택이 아닌 제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그 결과는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 엇갈린 반응을 낳았지만 말이다.


블로거 @johnearle은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브루탈리스트적 접근법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에 있다. 이는 종종 불편함과 좌절감을 자아내지만, 브루탈리즘 작품은 거칠고, 위압적이며, 정직하다. 그것은 만족감을 주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고서야 나는 찰리 XCX의 Brat이 어떻게 브루탈리스트적일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브루탈리즘의 핵심에는 ‘정직함’이 있다. ‘나는 이런 것이다. 이것이 나다. 나는 콘크리트 덩어리다. 뭐. 어쩔래.’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 하지만 단순히 정직한 것은 브루탈리즘이 아니다. 무식한 콘크리트 덩어리도 브루탈리즘이 아니다. 날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브루탈리즘이 되는 것이 아니다. 브루탈리즘 건축은 복합적인, 때론 불쾌할 수도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설계되었고, 그 복잡한 성격을 숨기지 않는다. 치사할 만큼 자기 고백적이며, 뻔뻔하게 매력적이다. 이러한 무식함은 다소 치장된 주변 경관에 비해 이질적이고, 덕분에 그 매력이 배가 되는 영리함 또한 갖췄다.


결국 브루탈리스트적인 것이란 정직하되, 무식하고, 대화를 촉진하며,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이끌어내고도 여전히 매력적인 무언가다. 그런 의미에서 찰리 XCX는 정말 브루탈리스트적이다.


얼마 전 런던에서 열린 brat summer 콘서트를 다녀온 후, 나는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찰리는 쿨하다. 동시에 핫하다. 찰리는 오직 혼자서 2시간 가까이 되는 무대를 쓸고 닦으며 휘저었고 나는 이 무대가 라이브인지 아닌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이 곡은 찰리와 찰리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만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연 막바지에 스크린에 그녀가 직접 쓴 듯한 텍스트가 떠올랐다.


“솔직히 나는 brat summer이 끝나게 될까 봐 무서워요.. 하지만 난 결정했어요. 난 원해요. 이 여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길 원해요. 영원히(forever). (...) 저와 함께해 주세요.”


난 이 텍스트가 최근에 들은 말 중에 가장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좋아서, 너무 강렬해서,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걸 그대로 말해버리는 용기. 이것만큼 브루탈리스트적인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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