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없다는 공시생, 그게 바로 접니다

공시생 잔혹사 - 1

by pajaroazul

공시생 잔혹사 -공시생 잔혹사 -

저번 주에 7급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을 봤다. 기존 체제가 바뀌어, 1차 시험에 PSAT이 도입된 첫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하게 망했다.


하긴, 합격 커트라인과 과락 사이의 점수 차이가 20점 대니 나만 어려운 건 아니었겠지. 그래도 충격이다. 시험 당일 코로나라고 에어컨도 안 틀어주고, 수능과 다르게 학교 옆에선 공사를 하고. 다른 수험생은 고사장 옆에서 고등학교 배 야구 경기를 하더란다. 전 국민이 응원해주는 시험은 수능밖에 없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운동장에는 먹은 걸 소화시키려 나온 수십 명의 공시생들로 가득했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기어코 나와 걷는 그들을 보며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질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비처럼 걷는 그네들의 모습은 흡사 <킹덤>의 한 장면 같았다. 시험장 내부도, 수험표를 파일에 담아 테이프로 책상 옆에 붙여두거나, 고정형 필통을 가져온 사람까지, 당장 작년과 비교해봐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포스가 다른 그분들은 5급 준비하는 분들이 아니었나 싶다.) 들어서자마자 망했다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도, 졸업하고 나서 해온 건 이 공부밖에 없고, 체력도 시간도 부어가며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붙으리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럴 줄은 몰랐다. 시험 문제 하나하나에 인사처가 남기는 메시지가 녹음되어 있는 거 같았다. "야, 꺼져."


부끄럽지만, 1교시엔 공황발작까지 일으켰다. 긴장해서 배가 아프거나, 글이 안 읽히거나 이건 뭐 늘 그래 온 거고. '아 이런 게 공황발작이구나!' 싶은 건 처음이었다. 청심환까지 마셨는데, 죽을 거 같았다. 내장기관의 위, 아래, 옆면이 눌어붙는 기분이었다. 머리에선 열이 나고, 펜을 든 손은 사시나무처럼 떠는데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 같았다. 당장 뛰쳐나가서,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정말 죄송하지만 이 짓은 못하겠다고 부모님께 무릎 꿇고 비는 상상을 했다. 수능에서도 유독 국어만 망쳤던 사람이라, 어떻게든 이런 상황은 피하며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대학만 가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더 이상 끔찍한 시험이나 석차 경쟁이 아예 없을 순 없어도 피할 방도는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십 대 시절을 넘겼다. 그러고도 부족해 보이는 대학, 부족해 보이는 능력을 바꾸어보겠다고 제 발로 재수학원에 들어갔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아진 모의고사만큼 스트레스와 괴로움이 가중됐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엔 버스 정류장에서 처량 맞게 울었고, 울분을 풀 곳이 없어 손에 상처를 내면서 공부했다. 엉덩이가 무겁지 못해서. 인내심이 없어서. 멍청해서. 이 모든 건 내가, 내가, 내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걸 해내면, 해방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꾸만 실력을 증명하라는 시험들은, 그건 내가 SKY를 가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늘어만 가는 의무와 책임에, 천재였더라면, 잘났었더라면, 그때 10점 높게 받았었더라면 나았을 텐데라고, 내가 80점인 사람이라 수모는 당연한 거라고 속으로 삭혔다. 그래서 대학을 가고서도 모험보다 학점에 연연했고, 자유는 커녕 남들 눈치나 보며 허둥지둥 살기 바빴다.


사슬을 끊을 힘이 있다면 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묶인 게 아니라 천천히 가라앉는 유사, 모래지옥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