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우리

공시생 잔혹사 - 2

by pajaroazul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우리

난 대학을 두 번 갔다. 첫 수능은 망쳤지만 수시로 대박을 터뜨렸고, 다음 수능은 잘 봤지만 수시에서 잡혔다. 세상이 기묘하게 공평하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대학이 머리나 능력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도 그랬지만, 한해 한 해가 갈수록 뼈저리게 깨닫는다. 얄팍한 학력 부심을 부릴 체면도, 오기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노력에 대해선 믿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상식에 대해선 믿었던 것 같다. 모든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남겠다는 비상모드로 매 순간 삶에 임해야 할 줄은 몰랐다. 또, 90년대생으로써 그 짓거리는 이미 충분히 해온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령 정XX 학원에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닭장 같은 교실에 앉아 대량으로 주문한 주먹밥과 콜라를 받아 점심을 때우고, 끝없는 단어 시험, 딕테이션, 선행 문법을 하면서. 친구들을 누르고 반에서 1등을 하는 날이면 손에 쥐어주는 문화상품권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면서. 6월 모평 후, 전교 10%를 위한 '특별 모임'에서 제외된 날, 하굣길에 느꼈던 모멸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을 희생시킨데 대한 보상이 언젠가 올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내 학창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머리 아픈 에어컨 바람, 좁은 교실, 연속되는 시험, 공부와 관련된 인격모독과 아픈 척추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또래 학생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으려나. 몇 등이었든 간에, 일단 공부해서 대학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아니 마음이 없어도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었다면.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가 더 중요하단 말. 어쨌든 경쟁해서 남을 뛰어넘어야만 원하는 걸 얻는다는 말. 부모, 선생, 사회로부터 직간접적으로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던 말들. 범생이에서 말 잘 듣는 새내기로 명함만 바꾼 2014년 어느날,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2살 어린 학생들을 보며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쓰라림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학생들. 기다리라고 하니까, 어른 말이니까 들었던 건데. 말 들으면 분명 나은 뭔가가 있을 거라 약속했었으니까. 노력이 인내가 반드시 보상을 가져와줄 거라 배웠으니까. 세월호는 많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기억되겠지만, 나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분노가 뒤섞인 쓴맛이 입안에 맴돈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너희들의 선배였다면, "어른들 말 듣지 말고 너 자신을 믿고 판단해"라고 할 수 있었을까. 당장 꿈이 있다는 말도 못 꺼낸 채, 가기 싫은 학교에 억지로 나가던 한심한 20살짜리 겁쟁이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도 실패자가 된 내가 누구한테 조언을 한단 말인가. 이토록 비겁한 내가 오늘 살아있는 이유는, 뭘 제대로 해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운 덕분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