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공시생 잔혹사 - 3

by pajaroazul

2016학년도 수능 며칠 전, 학원 짐을 꾸리며 다짐한 게 있었다. '다시는 노량진에 오지 않으리.' 그로부터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1년 여름, 또 9호선 노량진 역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많던 재수학원 건물들은 공무원 학원으로 간판만 바뀌어 있었다. 젠장. 여긴 땅 밑에 자석이라도 있나. 왜 자꾸 돌아오게 되는 거야?


폭염 속에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순했다. 앞으로 시험을 계속 볼지 말지에 대해 상담하려고. 얼마나 무의미한 상담인지 안다. 설마 밥줄 달린 강사가 "합격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정도의 확률이니까 속히 그만두고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라고 말하겠는가? 설마 나는 인생이 달린 문제를 처음 본 강사가 하는 말을 듣고 옳다구나, 하고 결정하겠는가? 마음이 어지러워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온 거였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길거리는 평일 오후임에도 한산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 몇몇만이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사람들 모이는 동네가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신림동부터 강남까지, 더 우중충한 동네도 많았다. 어떤 동창은 학원 명성 때문에, 어떤 친구는 PEET 때문에 강남에서 1년을 살았다. 6학기를 마친 후배는 교대를 가겠다며 신림동에 자진 입성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5년 주기로 동굴에 들어갔다. 시험에 붙은 친구들도 있었고, 떨어진 친구들도 있었다. 딱 절반씩이었다.


시험에서 성공한 친구들이 딱히 더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시련을 통해 전보다 강해졌다거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다. 확실한 건, 잘된 만큼 더 시달렸다. 고난을 뚫고 승리한 친구들에게 오는 건 보상을 가장한 책임과 일더미였다. 며칠 째 밤을 새우며 일하던 회계사 친구는 새벽 다섯 시 회사 프린터기 앞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늦게 교대에 들어간 친구는, 합격 후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사고를 쳐댔다. 반대로 시험에 떨어진 친구들의 인생이 망가지는 일도 없었다. 더 잘 맞는 길을 찾기도 했다. 다만, 전과 달리 얼굴에 언뜻 드리우는 그늘을 보며, 마음 어딘가에 생채기가 생긴 건 아닐까 하고 혼자 막연히 추측할 뿐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시험을 붙어야만 하는 이유, 대학을 바로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실패든 성공이든 지금의 경험은 다음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작은 실패들이 너희들의 자신감을 조금씩 갉아먹을 거고, 모르는 새 의심을 키울 테니, 어지간하면 계속 성공하길 바란다. 너희들이 무능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습관이 되어 실패하는 일이 앞으로 더 많을 테니까."


지금껏 그놈의 시험 하나 빼고는 잘 해온 친구였다. 늘 성실하고 밝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죄책감이 족쇄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통과한 수십 번의 시험보다 단 한 번의 실패가 더 중요했다. 실패한 시험은 우리를 단번에 불효자로, 낙오자로, '어딘가 아쉬운' 인간으로 만들었다. 겉으로 노력이 부족했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나와 친구는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별로 괜찮지 않다는 걸. 애초부터 이상하기 짝이 없는, 기분 나쁜 경기일 걸 알고도 뛰었다고. 바보 같지만 그거 말고는 길이 없어 보였다고.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한테 기회라는 게 고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경쟁이 과열될수록, 게임이 불공정할수록, 상식 수준을 벗어난 반칙들이 빈번해질수록 탈락자들이 시험에서 얻는 것은, 교훈이나 지혜가 아니라 내상이었다. 선생님께 묻고 싶었다. 1000명 중 990명이 반드시 실패해야 한다면, 대다수는 의사나 노력과 상관없이 '실패'란 습관이 생겨버리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실패해도 행복할 수 있는지, 습관이 그렇게 막강하다면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선생님은 그 뒤의 이야기는 한 번도 해주지 않으셨다. 마치 그런 건 이야기할 가치도 없는 것처럼.


문득,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알알한 기분이 땅에 묻힌 수많은 내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