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험담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란 말이 있다. 맞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관계다. 한 사람의 진술만으로 전체 그림을 그리기란 불가능하다. 90%의 가족 이야기는, 또렷한 악당이 없는, 애증 관계의 인물들이 지지고 볶는 희극에 가깝다. 아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나로서는, 내리사랑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직접 가족을 꾸리지 않는 한, 시간만이 부모의 진심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동시에 많은 부모들이 본인이 아이었던 때 혹은 갓 태어난 자식을 처음 안았던 순간을 잊고 살아간다. 아이가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는 소원은, 시간이 흐르며 여러조건이 따라붙는다.
아버지는 초등교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여기셨다. 양쪽 집안에 선생들이 많기도 했고, 본인 커리어가 흔들리고 수입이 변변찮을 때 우직한 기둥이 되어준 것이 어머니의 직장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항상 그만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꼭 "강요는 아니야."란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강요 직전에 멈추시는 실력이 일품이셨지.) 누가 보면 홍보대사인 줄 알았을 거다. 내가 거부감을 내비치자 2순위로 공무원을 '제안'하셨다. 참고로 이 '제안'이란, 아버지가 좋게 평가하시는 직업을 자식들에게 영업하는 작업이다. 타 직군과의 비교를 통해 특정 직업을 올려치는 고도의 밑밥 깔기는 못해도 5년은 들여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동시에 '제안'은 경계설정이었다. 적어도 당신 집에 살 거면, 이 선 은 넘어가지 말아 달라는. 강요는 아니었지만, 지키는 게 피차 서로에게 덜 피곤한 규칙 같은 거였다.
하여간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자식이 대기업을 간다 한들 깔 거리를 찾아내실 위인이었다. 정년 보장이 되는가? 동료·상사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인가? 워라밸이 있는가?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가? 대출받기에 유리한가? 여성 비율이 높은 직군인가? 결혼 시장에서 취급이 어떠한가? 새로운 사람들을 얼마나 만나는가? 평범한 고려 사항들처럼 보이지만, 그 말 따라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할 일이 남아나질 않았다. 아버지의 매서운 비판(비아냥)을 피한 직업은 손에 꼽았다. 개인 병원 의사들은 장사해야 돼서, 외교관들은 돌아다니느라 집 사기 힘들어서, 변호사는 영업직이라서, 교수는 테뉴어 받기 전까진 보따리장수라 별로였다. 우리 삼 남매는 우스갯소리로 아버지를 답정너라고 놀리곤 했다.
딸자식 미래 걱정해서 까탈스럽게 구신 게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내가 문제였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부모 눈치를 대량으로 예약 주문해서 보는 소심한 인간이었다. 싫든 좋든 부모님 의견이 매우중요했다. 타고난 예민함으로 매시간 집안 분위기를 읽으며 평형을 맞추려고 하는 장녀였다. 손아래 동생들은 몽상가인 나와 달리 현실주의자인 부모님을 닮아있었다. 잘 따라가는 동생들을 두었으니 넌 해방 아니냐고? 적어도 내 머릿속에선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 첫째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네가 형제 중 가장 많이 투자받았다, 가족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이 첫째다, 등등. 하필 맏이가 가족의 검은 양(black sheep)이라니. 저 집 분위기도 안 봐도 훤하구먼, 쯧쯧.
이런 탓에 10대서부터 크게 싸웠다. 격동의 세월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자면, 내가 20대 후반이 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는 것? 결국 부모님과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이니까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뿐. 다툼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는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보다 내가 그들에게 맞추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꿈이니 예술이니 떠들고 다녀도, 불효자는 면하고픈 마음도 있었고. 졸업 뒤에 놓인 건 일자리가 아니라 코로나 시국, 학자금 빚 그리고 부모님의 은퇴였다. 나 또한 더 이상 본인이 잡스라거나 세상이 <라라 랜드>라고 믿는 아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