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뛰는 공시생

공시생 잔혹사 - 5

by pajaroazul

공시생 잔혹사-5공시생 잔혹사-5

강사와 상담하다 보면 내 공부 기간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작년 8월에 졸업했다면서, 왜 공부 기간이 7개월밖에 안돼?"


나는 대학 내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빵집, 카페, 서류 정리, 학원, 번역, 단기 알바, 행사 보조... 고학년 때는 주로 고등학생 과외를 했다. 시간 대비 벌이가 괜찮았고, 몸속에 선생의 피가 흐르기는 하는지 아이들이 밉지 않았다. 대학생 치고는 꽤 괜찮은 선생이었다고 생각한다. 1년 이상 함께한 아이들, 알음알음 수업해달라는 학생이 꽤 다. 졸업학년 때는 공시에 들어갈 돈을 조금이라도 모아보려고 수업을 몇 탕씩 돌리곤 했다. 그 돈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작년에는 고3이 셋이었다. 잘 따라오는 데다 성적도 괜찮았다. 이 아이들까지는 책임지자는 사명감이 들었다. 고액은커녕 저액 과외라 불러야 할 판이었지만, 어지간한 목동 학원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 갔다. 일주일 총 6회 수업, 한 회마다 2시간씩. 이 친구는 빈칸이 약하니 별도 교재 만들어주고, 그 친구는 문법 수업을 더 해줘야 하고, 저 친구는 자소서가... 그러다 보니 내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코로나로 인해 수능이 12월 초로 미뤄져 11월 말에야 수업이 끝났다. 본격적인 '공시생 모드'는 그때부터였던 셈이다.


여기저기서 만나는 공시생들의 상당수가 일을 병행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 주말마다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 독서실 총무 등등. 길어지는 수험생활에, 기약할 수 없는 합격, 늘어만 가는 나이. 이 모든 것들이 공시생들을 일터로 내몬다. '공부에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데 어중간하게 하니 안되지.'부터 '적어도 부모 등골은 빼먹지 말아야지.'까지. 남의 일에는 가타부타하기가 쉽다. 그런데 공시생도 사람인지라, 100% 지원받으며 공부에 몰두하고 싶으면서도 부모 등골 뽑아먹는 후레자식이 되고 싶지 않다. 몇몇은 수중에 한 푼이 없어서,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위협받아서, 혹은 천천히 가라앉는 자신의 미래에 가족까지 묶어버릴 수가 없어서 한쪽 발을 걸친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누군가에겐 변명 같겠지만, 그들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만족지연을 조건반사로 외운 세대이기도 하고.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빨리 붙으면 된다는 생각 왜 안 하겠는가. 그런데 공시 바닥이 더 이상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몇천, 몇만 명의 응시생 중 전국 팔도가 울만큼 노력한 공시생만 골라낸다 해도, 선발인원이 그의 절반도 안된다. 자고로 운이란 노력 위에 묻어가는 것이었는데, 갈수록 주객이 전도되어간다. 뭣하러 노량진 바닥에서 5년씩 구르나, 정치인 앞에서 알짱대면 바로 1급 꽂아주던데.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수지 타산이 맞질 않는다. 하지만 이마저 관두면 갈 곳이 없다. 공부 좀 해보다 접고 사기업 들어갔던 동기 상당수가 2년을 못 넘긴다. 공시판에 재입성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래도 공기업·공무원이 낫겠어"라며 돌아오는 이들도 많다. 그들이 어떤 노력을 해서 취업했는지를 똑똑히 본 나로서는 속이 쓰릴뿐이다. 요즘 애들이 콧대가 높아서 사기업을 안 간다 혹은 버티지를 못한다고 (아직까지도!) 꾸짖던데, 그렇구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고등교육을 받은 세대가 콧대가 너무 높아서 200만 원 남짓 벌겠다고 청춘을 갈아 넣고 있는지는 몰랐다. 거참, 8차 교육과정이 잘못했네. 미적분 말고 산수나 똑바로 가르치지 그랬어.


돈이 전부는 아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도전을 고려하고 있는 이들, 힘들게 들어간 사무관 자리 두고 나가는 이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감히 추측컨대, 내 부모세대보다는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간에) 마음 아니었을까. 집단을 위해 개인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취미 생활 하나 즈음할 수 있는, 열정을 바친 회사에서 40대에 예고도 없이 해고당하지 않는 삶. 물론 공무원이 그에 대한 해답이 아니란 것 즈음이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럴게, 누구 말마따나 좋다는 교육은 다 받고 자란 세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