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고 난 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다.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평행우주'란 새롭지 않은 설정을 가지고도 지난 20년 동안 쌓아온 추억과 애정을 폭발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랬다. 동시에 'IP'(Intellectual Property)의 가능성을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 사례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많은 사례가 있었다. 개별 서사를 융합시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나타난 '리부트'와 '프리퀄' 또한 하나의 IP가 가진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데 '노 웨이 홈'은 그 모든 사례와도 구별된다. 하나의 설정으로 무한대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정도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가 영화 밖 현실세계와도 넘나들 수 있다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어느 정도는 '꼰대'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느새 40년 넘게 살았고, 영화전문지에서 기자생활도 하면서 나름 오랫동안 영화에 대한 경험을 해왔고, 그렇게 축적된 생각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영화'는 '영화'일뿐이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은 영화 속 세계 안에서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디서 했다는 말을 좋아한다. "당신의 영화 속 세계에 누구도 침범하게 하지 말라." 이 말은 여러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 자신이 상상한 영화적 판타지를 굳이 현실적인 논리로 이해시키려고 하지 마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세상의 극찬을 받았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외계인과의 육체적인 사랑을 그리는 상황에서 이 설정을 영화 안과 밖 인물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온갖 시끄러운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말을 '노 웨이 홈'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이건 쓸데없는 설명이 끼어든 영화가 아니다. 아예 현실세계의 비즈니스 논리, 즉 소니와 마블 사이에 있었던 계약의 역사를 소환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영화는 그냥 영화일 수 없다.
어느 정도는 미리 예견된 일이었던 것도 같다. 직접 비교가 가능한 사례는 2009년에 개봉한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다. 이 영화에서도 '평행우주' 설정을 이용해 원조 스팍인 레너드 니모이를 출연시켰다. (그것과 '노 웨이 홈'은 다를 게 없는 사례인데, 어쩐지 머릿수가 더 많아서인지 '노 웨이 홈'은 더 극단적으로 나간 것처럼 보인다.) 이후에 이어진 '계약'의 영화들도 같은 맥락에서 통한다. 소니와 마블의 계약에 따라 스파이더맨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후 MCU에 등장할 수 있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마블의 계약에 따라 아이언맨은 '어벤저스:엔드게임'에서 그렇게 아이언맨 다운 결말을 맞이했다. 현실세계의 계약관계는 뉴스로 보도되고, 사람들은 그 계약에 따라 영화 속 세계를 이해한다. 이미 그렇게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영화들은 애써 넘나들지 않는 척이라도 했다. ‘노 웨이 홈’은 그런 척도 안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 웨이 홈'의 사례는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을 정말 많이 좋아해 온 팬들은 '노 웨이 홈'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에 기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에게 크게 이입하지 않는 중년의 꼰대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게 이래도 되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장난스러운 상상도 해봤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시리즈를 이용해 경찰 강철중과 검사 강철중이 함께 나오는 영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더 과거로 가면 '돌아이 1,2,3'의 전영록과 '돌아이 4'의 최재성이 뭉쳐서 '돌아아 5'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노 웨이 홈'에 대해서는 더 꼰대처럼 말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게 무슨 영화냐! 샌디에이코 코믹콘 이벤트 중계지!" 딱 여기까지. 더 넓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없는 나는 그냥 스필버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