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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n 29. 2024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낀 암울한 기운

그날 아침 한 통의 부고를 받았다

*이 글에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날 아침 부고를 받았다. 약 12년 전에 그만둔 회사에서 6년 넘게 같이 일했던 선배가 먼 길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안부를 자주 나누던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배의 부고는 너무 가까운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졌다. 카카오톡으로 전해진 몇 문장을 보자마자 ’어?‘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뜰 만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안좋은 상상을 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몸이 피곤해서 일찍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지 못하셨다고 한다. 황망했다. 


그날 오후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언론 시사가 있었다. 이 영화는 어떤 화장실 청소부의 루틴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매일 아침 창문 밖의 나무를 보며 잠에서 깬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양치질을 하고, 가꾸는 식물들에 물을 뿌려준 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주차장 옆의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하나 뽑은 후 운전석에 앉는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오는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로 출근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원 벤치에 앉아 우유와 샌드위치를 먹는데, 이 공원에 있는 오래된 나무의 사진을 찍는다. 일이 끝난 후에는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술 한 잔을 마시며 야구 중계를 본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문고판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창문 밖의 나무를 보며 잠에서 깬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의 이런 루틴을 루틴답게 반복해서 보여준다. 종종 다른 변수들이 끼어들기는 하지만, 히라야마의 루틴은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거의 일주일의 루틴을 보여준 후 주말에는 주말의 루틴을 보여준다. 작업복을 세탁하고, 집 청소를 하고, 일주일 동안 찍었던 필름의 인화를 맡기고, 단골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른 후 단골 술집에 가서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린다. 이때 히라야마가 지키는 루틴의 대부분은 같은 앵글과 같은 사운드로 반복된다. 아침마다 눈에 보이는 창문 밖의 나무, 어떤 이웃이 동네를 청소하며 내는 빗자루 소리,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이는 나무의 모습 등등. 


약 7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히라야마의 방 창문에서 보이는 나무의 모습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뭔가 불안한 느낌, 암울한 기운 같은 게 있었다고 해야하나. 왠지 히라야마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이 영화의 리듬으로 볼 때, 모든 앵글과 사운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데 히라야마만 눈을 뜨지 않는 그런 장면을 상상한 것이다. 그날 아침에 겪은 황망함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잠들었는데, 아주 오랜 잠을 자게 된 사람의 모습. '퍼펙트 데이즈'를 보면서 내내 그런 상상을 했다. 


물론 히라야마는 오랜 잠에 빠지지 않는다. 평소와 같은 주말, 단골 술집에 갔다가 술집 주인과 어떤 남자의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이상행동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 동요된 마음은 정리된다. (그러니까 그녀를 사랑해서 그 술집에 자주 갔던 거겠지?) 이제 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이다. 영화는 또 같은 앵글과 사운드로 히라야마의 아침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이때도 설마? 했는데, 다행히 히라야마는 눈을 떴다. 그런데 문제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이어진다.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시퀀스다. 

영화는 이른 아침의 도쿄 시내를 가로지르는 히라야마의 얼굴을 꽤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의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에서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흘러 나온다. 음악을 듣는 히라야마의 얼굴 위로 햇살이 비친다. 히라야마는 미소를 짓다가 울먹인다. 울먹이다가 다시 웃는다. 웃다가 울먹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다. 그리고는 아침의 햇빛을 잔뜩 받은 도쿄의 시내의 전경이 보이며 영화가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또 암울한 기운을 느꼈다. 먼저 ’빛‘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의 얼굴과 도쿄의 전경을 비추는 빛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상당히 콘트라스트가 강한 빛인데, (뭐, 이런 빛이 도쿄의 하늘에서는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게 히라야마의 얼굴에 드리우는 순간, 그가 이 세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반복되는 그의 표정과 감정. 그가 웃다가 울먹이는 표정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노래 때문이다. “새로운 새벽이에요. 새로운 날이에요.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요.” ‘Feeling Good‘은 희망에 대한 노래라고 하지만, 나의 감정에서 그 가사는 새로운 삶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날 아침의 부고 때문에 생겨난 감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이 '퍼펙트 데이즈'의 리듬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영화를 연출한 빔 벤더스 감독은 분명 히라야마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루틴을 통해 일상의 행복을 차곡히 쌓는 삶의 감동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 행복이 아름다운 루틴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또 다른 세상에서도 같은 루틴으로 살려고 애쓰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히라야마는 그날 아침 눈을 뜨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자기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영화는 종종 그렇게 극장 밖의 이야기와 만나곤 한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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